매일신문

[야고부-조향래] 권력무상(權力無常)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광해군은 결코 무능한 군주가 아니었다. 임진왜란으로 파탄(破綻) 지경에 이른 경제 회복과 함께 대륙의 명청(明淸) 교체기에 실리 외교를 추진하며 부국강병을 모색한 왕이었다. 그러나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계모인 인목대비를 몰아내고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이는 폐모살제(廢母殺弟)가 빌미가 되어 인조반정으로 옥좌에서 쫓겨났다.

18년간의 귀양살이는 더 불가사의하다. 세자 내외가 자결을 하고 왕비가 비명에 간 뒤에도 혼자 남았다. 제주도로 유배돼 계집종의 학대와 별장의 패악질까지 겪는 모진 세월을 묵묵히 견뎌 냈다. 지평선에 눈이 멀고 파도에 귀가 먹으며 심신이 풍화(風化)가 되도록 죽음보다 못한 삶을 이어간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청(淸)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는 3세에 제위(帝位)에 올랐지만, 아버지의 섭정(攝政)을 받으며 황제로 있었던 시절은 3년에 불과했다. 신해혁명으로 물러난 후에 만주국 황제가 되었지만, 포로로 붙잡혀 10년간 수용소에 갇혀 지냈다. 자유의 몸이 된 것은 53세가 되어서였다. 56세에 간호사인 아내를 맞아 식물원과 기계 수리 상점에서 일하며 평범한 삶을 누렸다. 그리고 여생의 끝자락을 마친 곳은 지게 위에 얹은 5원짜리 관 속이었다.

우리 현대사에서도 권력자의 최후는 대부분 참담(慘憺)했다. 4·19혁명으로 쫓겨난 이승만 초대 대통령, 궁정동 안가(安家)의 총성으로 쓰러진 박정희 전 대통령, 내란과 내란 목적 살인죄로 감옥살이를 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검찰 수사 중 자살로 생을 마감한 노무현 전 대통령, 부패 혐의로 감옥에 갔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국정 농단으로 탄핵을 당하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

숱한 구설수에 휩싸여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와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윤석열 대통령 내외 그리고 미래의 권력을 자처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내외의 여생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권력자들의 극단적인 여정이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소박한 삶보다 나을 게 무엇인가. 평범하게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심신이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종횡무진(縱橫無盡) 권력의 불꽃 속으로 뛰어드는 게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인가. 격동의 한 해가 또 막을 내리고 있다.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joen04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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