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의달의 트럼프시대 대응전략] "미국도 韓 협조 절실히 원해…'안미경미' 동지적 관계 구축을"

'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 트럼프TF 대응할 골든타임 서둘러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송의달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송의달 서울시립대 초빙교수

이달 20일 출범하는 트럼프 2기 정부는 20세기 들어 가장 강력한 미국 행정부로 꼽힌다. 작년 11월 5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카멀라 해리스 후보를 누르고 역대급 승리를 거둔 결과다.

7개 경합주에서 완승한 트럼프는 전국 투표 기준으로 20년 만에 민주당보다 많은 표를 얻었고 연방 상하원과 주지사, 주의회 선거에서도 이겼다. 연방대법원까지 6명 대 3명의 대법관 구성으로 공화당이 우세하다. 행정부와 입법·사법·지방정부까지 장악한 정권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미국 트럼프주의를 국가 비전으로 승인

프란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를 가리켜 "트럼프 2기는 새로운 종류의 미국 탄생을 알리는 변곡점"이라고 지적한다. 재임 중 두 차례 탄핵소추와 퇴임 후 4차례 형사 기소를 당한 트럼프를 미 국민이 대통령으로 다시 뽑은 것 자체가 트럼프주의(Trumpism)를 국가 비전으로 승인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당선 승리 연설에서 트럼프가 밝힌 대로, 트럼프 2기의 국정 목표는 미국의 황금시대 달성이다. 이를 위해 트럼프 측은 '아메리카 퍼스트'에 입각한 국내외 정책을 강력하고 속도감 있게 추진할 태세다.

국내적으로 트럼프 2기는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 워싱턴 등 기득권 세력의 연합체였던 민주당 정권과는 정반대 노선을 공언한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주의와 깨어 있음(wokism)에 사로잡힌 민주당이 미국의 근간인 기독교 정신과 법치·상무(尙武) 기풍을 무너뜨리고 가족과 교육현장까지 해체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트럼프 2기는 연방정부 축소 및 개혁과 연방수사국(FBI), 법무부(검찰) 등에 대한 수술도 벼르고 있다.

◆선의(善意)의 국제주의 폐기

한국 입장에선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 가까이 백악관을 지배해 온 '선의(善意)의 국제주의(benign internationalism)'가 폐기된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미국이 그동안 수행해 온 경제·통상 방면에서 산타클로스, 군사·안보 방면에서 세계의 경찰관 같은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트럼프 본인이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 차례 대선 출마에서 일관되게 "더 이상 미국이 세계의 호구(虎口·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만 하는 사람 또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중국의 배를 불려줄 수 없다"고 외쳤다. "독일·일본·한국처럼 잘사는 나라들의 방위를 미국이 더 이상 대신해줄 수 없다"고도 했다.

트럼프 측은 돈(국방비)을 더 많이 내면서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 운영에 동참하고 협조하는 나라만 동맹국으로 대우하며 친하게 지내겠다는 입장이다. 통상에서도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거래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관세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은 수입 상품에 대한 10~20%의 보편적 기본 관세 부과라는 대선 공약으로 이어졌다.

◆김정은과의 담판은 시간문제

트럼프 2기는 마디로 우리가 익숙해 있던 미국이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변심한 미국이다. 이 같은 변화는 미국을 지구상에서 유일한 동맹국으로 두고 있는 대한민국의 존립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도전이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환경이 뿌리째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최근까지도 "김정은과 사이가 좋다. 나는 그를 존중한다"는 발언을 여러 번 한 트럼프가 김정은과 다시 만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트럼프 측이 북한과의 협상에서 미국을 타격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억제에 초점을 맞추고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한다면 한국의 안보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트럼프 2기 정부에는 "주한미군의 주 임무를 중국 억제로 전환해야 하며 더 이상 한반도에 미군을 인질로 붙잡아 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의 논리대로 국방 정책이 추진되면, 임기 중에 주한미군의 감축 또는 제3국으로 전환 배치가 이뤄질 공산이 크다. 여기에다 트럼프 측은 1기 때 50억달러를 요구했다가 이루지 못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포함한 국방비 증액 청구서를 한국 정부에 내밀 것이다.

더욱이 트럼프의 일부 외교안보 참모들은 "가족끼리도 가끔 터프하게 하듯, 동맹국들에게 터프한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며 한국 등에 대한 노골적인 압박 방침을 밝히고 있다.

◆경제·안보 변곡점 냉정한 주고받기

미국을 상대로 돈을 많이 벌어가는 국가를 싫어하는 트럼프의 성격을 고려할 때, 앞으로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도 줄어들 전망이다. 2016년에 258억달러였던 우리의 대미 무역흑자는 트럼프 1기 집권 3년 차인 2019년엔 114억달러로 반토막 밑으로 급감했었다. 현지 분위기를 반영해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는 한국을 무역에선 적대자, 안보에선 무임승차국으로 본다. 앞으로 4년 동안 한국은 트럼프 정책의 조준점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2기 미국에 대한 성공적인 대응 여부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에 직결되는 중대 사안이다. 우리의 트럼프 대응은 미국의 실상과 트럼프 및 트럼피즘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많은 한국인들은 아직도 미국을 1990년대와 같은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로 인식한다. 그러나 미국은 36조달러의 국가부채를 짊어지고 이자 비용으로만 올해 1조달러 넘게 지출하는 '지쳐가는 거인'이다.

미국 국민들이 여러 흠결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 트럼피즘을 선택한 이유를 우리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짚어봐야 한다. 한국의 언론과 많은 지식인들은 트럼프를 비정상적인 인물로 단정한 미국 주류 언론매체 보도를 맹신하며 '희망적 사고'에 입각해 미국 대선을 잘못 읽고 오판했다. 이런 잘못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는 '협상가 대통령'을 자임하는 트럼프를 상대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아내는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 자세이다. 올해 한국 정부가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1조4천28억원)을 5천만 명 인구로 나누면 1인당 4천원짜리 커피 7잔(약 2만8천원) 값 정도다. 트럼프 본인이 작년 봄까지 125차례 강조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는 적정 수준으로 과감하게 올려주고 우리는 그 반대 급부를 챙기는 데 집중하는 게 현명하다.

◆미국도 한국 절실히 필요

분명한 것은 트럼프 2기 정부 역시 한국의 협조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진영의 싱크탱크인 '아메리카퍼스트정책연구소(AFPI)'는 작년 5월 "아메리카 퍼스트는 아시아에서 미국 혼자만으로 달성할 수 없다"며 협력 대상국으로 한국을 꼽았다. 작년 11월 대선 승리 직후 윤석열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트럼프는 한국 조선산업과의 협력 방안을 먼저 제기했다.

세 번째로 한국의 지정학·전략적 카드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다. 한국은 중국이 설정해 놓은 3개의 도련선(島鏈線) 중 중국 영토에 가장 가까운 제1도련선 안에 들어 있는 유일한 주권 국가이다. 미군의 해외 주둔 기지 중 최신 시설에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평택기지는 중국의 심장부를 최단거리에서 겨누는 비수(匕首) 같은 존재다.

트럼프 정부를 포함한 현재의 미국 조야는 미국에 도전하는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위협 국가로 중국을 지목하고 중국을 패퇴시겠다는 결의와 공감대로 뭉쳐 있다. 이들은 미·중 관계가 '관리 가능한 경쟁'을 벗어나 '전면적 대결' 단계로 진입했다고 본다.

이 같은 세계정치 역학 구도에서 한국은 트럼프 2기를 '재앙'이나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되는 전략적 공간을 만드는 용기와 지략을 발휘해야 한다. 그것은 미국의 세계 패권을 흔들며 미국 약화를 겨냥한 은밀한 공작을 펼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노력에 한국이 동참하고 능동적으로 협조하는 일이다.

미국이 원하는 조선업 분야에서 협력은 물론 한국은 남중국해에서 실시되는 '항행의 자유 작전' 참가와 관련 국가들과의 정례 군사훈련 실시, 대만 해협 유사시 군사적 지원 약속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을 돕는 각종 기여를 지렛대로 우리는 미국을 상대로 한국에 대한 특별 대우와 긴밀한 협력 강화를 요구해 관철시켜야 한다.

◆안보 경제 모두 '안미경미'(安美經美)

한국은 인공지능(AI)·양자컴퓨터·바이오·반도체·원자력 등 차세대 첨단산업 글로벌 공급망에서 린치핀(linchpin)이 되는 아이템들을 발굴해 미국과 공동개발·협력함으로써 5~10년 동안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먹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양국의 신뢰가 더 쌓인다면, 한국의 독자 핵무장 추진과 핵잠수함 보유,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도 가능할 것이다.

급속도로 진행되는 중국의 경제·군사력 증강 움직임은 한국의 국가이익과 정면충돌한다. 한국은 최근 10년간 2차전지·디스플레이·휴대폰·조선·자동차·철강 등 8개 핵심 산업 중 7개에서 중국에 밀려났다. 트럼프의 대중국 압박·억제는 한국에 숨 쉴 공간을 열어 주는 호재이자 자유민주 국제진영 안에서 한국이 제조업 최강국으로 도약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양해로 시작된 '안미경중'(安美經中) 노선은 1992년 한중 수교 후 30년 만에 효력을 다했다. 이제는 '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이라는 '안미경미'(安美經美)로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자유·인권·민주 증진이라는 대한민국의 세계사적 존재 의의 실천에 나서야 한다.

안타깝게도 최근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등으로 한국은 트럼프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 기업, 전문가들로 '트럼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가동해야 한다. 그래야 트럼프 2기 출범 직후 밀려올 충격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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