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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정두나] 늦장·불통 대응에 두 번 우는 유가족

정두나 기자
정두나 기자

지난달 29일 오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탑승객 대부분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체 후미에서 발견된 생존자 2명을 제외하고는, 기적 같은 이야기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희생자 유가족들이 갈 데는 단 한 곳, 전남 무안국제공항이었다. 사고 수습 상황을 재빨리 파악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편안한 곳으로 데려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날 현장에 도착해 보니, 유가족의 바람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이 넓은 국제공항에 관계자가 한 명도 없어요? 말이 안 되잖아요." 관계 당국이 브리핑을 하고 떠난 자리에 남겨진 마이크를 쥔 남자가 외쳤다. 언제쯤 가족을 만나 볼 수 있는지 묻고 싶어도, 소통 창구가 전혀 없어 답답했기 때문이다. 관계자는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잠시 유가족 앞에 서서 발표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니 유가족의 울음 섞인 외침에도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후 유가족을 찾아온 소방 당국은 신원이 추가로 확인된 희생자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뒤쪽에 앉은 유가족에게는 마이크의 '삐' 하는 소음만 들렸다. 전광판에 이름을 띄워 달라거나, 조금만 더 크게 읽어 달라는 고함이 여기저기서 들렸지만 소방 당국은 묵묵히 이름을 부를 뿐이었다. 이후 소방 당국이 신원 확인자 명단을 벽에 붙이고 떠나자, 작은 종이 한 장에 300여 명이 달라붙어 이름을 확인해야만 했다.

가족의 신원이 확인됐다는 소식을 듣고 지시에 따라 이동한 공항 관리동에서도 혼란은 계속됐다. 이제야 가족을 볼 수 있다는 소식에 유가족들은 직원을 따라갔지만, '지금은 볼 수 없다'며 말을 번복하면서 갈 길을 잃었다. 가족들은 관리동 이곳저곳을 한 시간 동안 떠돌다가, 결국엔 "분명히 신원이 확인됐다고 해 왔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이냐. 1분 1초가 아깝다. 대체 우리 가족은 어디 있느냐"고 외치며 무너져 내렸다.

지휘소가 부재한 상황에서 유가족들은 스스로 살길을 찾았다. 누군가 A4용지에 희생자의 이름, 탑승 좌석, 유가족의 연락처를 비뚤비뚤 적었다. 이들은 자신의 정보를 적으면 다음 사람에게 종이와 펜을 넘겼다. 만약 자신의 가족을 찾는다면, 이쪽으로 연락해 달라며 손수 연락망을 만든 것.

시간은 흘러 참사가 발생한 지 9시간이나 지났다. 그제야 정식으로 유가족 명단을 수합하겠으니, 창구를 방문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사고 수습 담당자들이 상주하고 있는 지휘소는 이튿날이 밝아온 뒤에야 유가족 곁에 세워졌다.

유가족이 소통 창구를 찾지 못하고 무너졌던 그 순간, 정부는 어디 있었나. 그 답은 참사가 발생한 날 저녁에 알 수 있었다.

전남도청과 소방 당국, 국토교통부 등으로 구성된 관계 당국은 오후 7시 20분 유가족 앞에 섰다. 이들이 수습 상황을 보고하고, 향후 계획을 알려 준다고 해 유가족은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이들이 내놓은 보고는 이미 전파를 탄 내용이었다. 정부는 유가족들이 있는 현장이 아닌, TV 속을 우선했다.

유가족의 바람은 크지 않았다. 수습 상황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알려 주는 브리핑을 30분마다 열어 주고, 신원 확인이 되면 가족이 알 수 있도록 연락처를 남기게 해 달라고 빌었다. 정부는 이 기본적인 것조차 해 주지 않아 유가족을 두 번 울렸다.

지겹다.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되풀이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변하지 않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유가족이 눈물을 흘려야만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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