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강민구] 벼랑 끝에 선 사람들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우리나라는 현재 느닷없는 비상계엄령 선포가 초래한 내홍(內訌)을 겪고 있는데, 그 와중에 벼랑에 선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벼랑'은 우리말이고 한자어로 농단(壟斷)이라고 하는데, 전국시대의 유가(儒家) 사상가인 맹자(孟子)가 처음 만들어 낸 말이다. 그는 상인(商人)에게 세금이 부과된 시원(始原)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옛날에 저자에서는 물물교환하는 자들이 자기에게 남는 물건을 자기에게 없는 물건과 맞바꾸었다. 그러하기에 시장을 맡은 관리는 세금을 거두지 않고 분쟁만 다스릴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천장부(賤丈夫), 즉 천박한 사내가 나타나 기필코 농단을 찾아 올라가 이쪽저쪽 아래를 내려다보고 시장의 이익을 싹쓸이하자, 사람들이 모두 그를 천박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 천장부에게 세금을 징수하였으니, 장사꾼에게 세금을 징수한 것은 이 천장부로부터 비롯되었다."

이것은 당시 어떤 귀족이 충족하지 못한 권력욕을 자식에게 대물림하여 결국 이루고야 만 추악한 욕망을 비판하기 위해 만든 비유적 이야기이다. 맹자는 사람들이 부귀를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이라고 인정하였으나, 농단이라는 천박한 방법으로 부귀를 독점하는 사람은 강력하게 비판하였던 것이다.

혼란한 정국이 전개되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정치인들이 속속 복귀하여 이러저러한 정치 논평을 내고 있다. 직함 앞에 '전(前)'이라는 관형사가 붙은 인사들이 불쑥불쑥 내뱉는 말이야 그러려니 하고 흘려듣게 마련이지만,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이 현재의 혼란한 상황을 무주공산(無主空山)으로 여기고 무시로 쏟아내는 말은 국민의 피로도를 높일 뿐이다. 그들은 구국의 일념을 지닌 정치적 지도자라고 자칭(自稱)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들이 벼랑 끝에서 이쪽저쪽을 내려다보면서 이익을 취하려는 천장부의 행태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 한 부류의 벼랑에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앞서 말한 부류가 스스로 벼랑에 올라갔다면, 이들은 어쩔 수 없이 벼랑으로 내몰렸다. 지난달 27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12월 기업경기조사 결과 및 경제심리지수'에 따르면 12월 전 산업 기업심리지수는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9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 27일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금융 위기인 2009년 3월 16일 이후 최고치라고 하며, 코스피 역시 2008년 이후 16년 만에 6개월 연속 하락세라고 한다. 지난 40년간 코스피가 6개월 연속 하락한 것은 1997년 외환 위기,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2008년 금융 위기 등 세 차례에 불과하며, 환율이 1천450원을 넘긴 것도 변동 환율제가 도입된 이후 외환 위기, 금융 위기 두 차례에 불과하니, 이는 현재 국내 금융 시장이 역대 최악 수준에 준하는 위기 상황임을 의미한다.

특히 자영업자의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 비상계엄령 선포 사태가 기름을 부었다. 소상공인연합회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소상공인 경기 전망 긴급 실태 조사'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응답 시점까지 사업체의 매출 변동에 대해 응답자의 88.4%가 "매출이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그 무엇보다 최근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은 양주에서 일가족 4명이, 창원에서 일가족 3명이 생활고를 비관하여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다. 새해에는 부디 농단에 올라가지도 말고 벼랑에 세우지도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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