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소연 기자의 한페이지] 3만 시간 봉사해 대통령표창 받은 백인계 봉사원…"비워야 채워진다는 신념으로 봉사하죠"

백인계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전국협의회 부회장, 대구지사 황금2동 봉사회 소속
중풍 걸린 어머니 간병 위해 간호대학 입학…대학 시절 전공 살려 응급처치 강사 활동도
"어려운 사람 보면 자식 생각하는 부모처럼 뭐든 해주고 싶다는 생각뿐"
2024 대한적십자사 창립 119주년 기념식서 최장 봉사 시간으로 대통령 표창 받아

백인계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전국협의회 부회장은 18년 동안 3만1천795시간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있다.그녀는 2024 대한적십자사 창립 119주년 기념식에서 최장 봉사 시간으로 대통령표창까지 수상했다. 한소연 기자
백인계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전국협의회 부회장은 18년 동안 3만1천795시간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있다.그녀는 2024 대한적십자사 창립 119주년 기념식에서 최장 봉사 시간으로 대통령표창까지 수상했다. 한소연 기자

벌새를 치료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활동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에브리 리틀 띵>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자원봉사자가 돈을 받지 않는 이유는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값을 매길 수 없어서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일에 3만1천795시간을 쏟은 사람이 있다. 2006년 적십자사에 입회해 18년 동안 봉사를 해온 백인계 봉사원이다. 그녀는 2024 대한적십자사 창립 119주년 기념식에서 최장 봉사 시간으로 대통령표창까지 수상했다.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황금2동 봉사회에 소속돼있고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전국협의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백인계 봉사원을 지난달 27일 대구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났다.

-오늘도 봉사활동을 하러 범물동에 오셨다. 무슨 봉사를 하셨나.

▶관내 장애인 분들을 위해 매일 석식을 만들고 배달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 100인분의 음식을 10명 좀 넘는 봉사원들이 1시부터 5시까지 만들고 배달까지 하는 활동이다. 근처 임대 아파트 위주로 배달하는데 나는 따로 아파트 거주 외 분들까지 한다. 빌라는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그게 좀 힘들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서 도움받아야 하는 분들에게 하나라도 더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봉사를 하고 있다.

-2006년 적십자사에 입회하셨다. 원래 무슨 일을 하셨나.

▶고향은 충청도다. 어릴 때 어머니가 중풍에 걸리셨다. 어머니를 간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간호대학에 입학했다. 원래 사람을 보살피기 위해 선택한 전공이라 당시 적십자사에서 응급처치 강사도 자원하는 등 봉사활동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간호장교도 되려고 했는데 결혼하게 되면서 포기했다. 이후에는 초등학교 양호교사로 23년을 재직했다.

백인계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전국협의회 부회장이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도시락 봉사를 하고 있다. 한소연 기자
백인계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전국협의회 부회장이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도시락 봉사를 하고 있다. 한소연 기자

-18년간 총 31,795시간을 봉사하면서 대통령 표창까지 받으셨다. 이렇게 긴 시간 봉사를 할 수 있던 원동력이 뭔가.

▶봉사를 더 오래, 많이 한 선배님들이 계시는데 운이 좋게 내가 받았다. 보람차다. 요즘에는 매일 석식을 만드는 봉사활동을 하는데 가끔 중식까지 만드는 일정이 있다. 그럴 땐 아침 일찍 9시 나와 봉사를 한다. 남편이 '당신은 봉사활동을 직장 다니는 것처럼 한다'고 나무랄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돈 버는 일이나 마찬가지죠'라고 답한다. 봉사를 하면 엔도르핀이 나와서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힘들지가 않다. 요즘 무릎 좀 아픈 거 빼고는 건강한데 안 아프게 해주니 돈 버는 일 아닌가.(웃음)

어려운 사람을 보면 뭘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내가 안 먹어도 자식들 입에 뭐 들어가는 건 하나도 안 아까워하는 부모처럼 말이다.

-적십자사에서 봉사한 것만 3만 시간이신데, 대학 시절 응급처치 강사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했던 것부터 따지면 경력이 더 많겠다.

▶맞다. 내가 적십자사에 입회한 것이 2006년이고 적십자사에서 봉사 시간을 세기 시작한 것도 근래의 일이다. 90년대에는 방문도우미 일을 했었다. 노인 분들 다섯 분씩 목욕탕에 데려가서 씻기고 했다. 사람 몸 씻기는 게 무척 힘든 일이긴 한데, 힘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다. 요령이 있다. 지금은 그때보다 요양보호사들이 많아져서 이제는 내가 따로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가끔 '나 좀 씻겨줘' 하면서 연락이 오는 분들이 있다. 난 또 거절을 잘 못한다.

-가슴을 울린, 기억나는 봉사가 있다면?

▶아무래도 초등학교 양호교사를 할 때가 기억이 많이 난다. 교사를 하면 아이들이 처한 환경을 더 속속 알게 된다. 몸이 유독 허하고 약한 아이들이 있다. 또 소년소녀가장인 아이들도 있다. 아픈 아이들이 학교 종 땡 치면 안 아픈 게 아니지 않나. 그러면 내 집에 데려와서 보살펴주고 그랬다. 최근 스승의날 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이가 대구 종로초등학교 양호 선생님을 찾고 있다는 사연을 신청해 라디오에 방송된 일이 있었다. 알고 보니 나더라. 그때도 참 보람찼었다.

-반대로 봉사를 하면서 힘들거나 아쉬웠던 순간도 있나.

▶힘들지 않다. 더 많이 못 도와준 것이 아쉽다. 남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봉사를 하다 보면 외려 내가 얻는 게 더 많다. 이건 봉사하시는 분들이 다들 느낄 거다. 다만 봉사활동이라는 것이 무보수로 하는 일인데 종종 돈 받고 하는 줄로 오해하는 분들이 계신다. 그런 점은 아쉽다.

백인계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전국협의회 부회장을 지난달 27일 대구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났다. 그녀는 2024 대한적십자사 창립 119주년 기념식에서 최장 봉사 시간으로 대통령표창까지 수상했다. 한소연 기자
백인계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전국협의회 부회장을 지난달 27일 대구 범물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났다. 그녀는 2024 대한적십자사 창립 119주년 기념식에서 최장 봉사 시간으로 대통령표창까지 수상했다. 한소연 기자

-적십자사의 개인으로 1억을 기부한 기부자 모임인 '레드크로스아너스클럽'도 가입돼 있으시던데.

▶내 신념 중 하나가 '비워야 채워진다'는 거다. 기부하면 실제로 돈이 들어온다. 묘하다. 며칠 전에도 어디에 기부를 했는데 얼마 뒤에 보험사로부터 보험 만기 됐다고 돈 찾아가라는 연락을 받았다.(웃음) 돈은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없지 않나. 유일하게 가져갈 수 있는 게 공덕이다. 사는 동안 내가 쌓아온 공덕만 가져갈 수 있다.

-요즘 관심을 두고 하는 기부가 있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 주고 후원해 주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한 달에 주기적으로 나가는 후원금이 있다. 공부도 시켜주고 등록금도 내주고 싶다. 또 나는 장기기증까지 신청한 사람이다. 그래서 아프면 안 된다. 젊은 시절부터 봉사활동을 너무 다녀서 지금은 무릎이 좀 아프긴 하지만 건강 관리를 잘해서 건강한 장기를 기증해야 하기 때문에 건강관리도 열심히 한다.

-2020년 2월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구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 국내 최다 확진자가 있던 동산병원에 자진하여 기부 물품을 배분하고 급식 봉사 등을 하셨다고 들었다. 감염이 걱정되거나 하시진 않았나.

▶감염이 두려워 전부 다 가기를 꺼렸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나는 간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병원에 들어간다고 다 걸리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예방 수칙만 잘 지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리고 '예방 수칙만 잘 지키면 괜찮다'는 생각에 바로 동산병원으로 달려갔다. 좀 누그러졌을 때 다른 단체에 넘겨줬다.

-대구뿐 아니라 강원도, 경기도, 충청도, 울산 등 전국 팔도 다양한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셨는데.

▶재밌지 않나.(웃음) 타지로 봉사를 떠날 때는 마치 여행 가는 기분이 든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도 강원도 폭설 피해 지역 복구 봉사 때도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하려면 즐겁게 해야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을 내가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이왕 하는 거 즐겁게 한다는 마음을 늘 가진다.

백인계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전국협의회 부회장이 지난달 27일 봉사원들과 도시락 봉사를 했다. 한소연 기자
백인계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전국협의회 부회장이 지난달 27일 봉사원들과 도시락 봉사를 했다. 한소연 기자

-겨울은 혹독하다. 취약계층은 혹독한 겨울을 더 혹독하게 날 수밖에 없다. 이웃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면 누굴까.

▶노인 복지보다는 자라나는 꿈나무와 장애인들에게 진정한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차상위계층에 진정 어려운 사람이 많다. 집은 가지고 있는데 너무 노후화된 집을 가지고 있고, 그게 소득에 잡혀서 실질적인 도움은 받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다. 지자체가 그런 사람들을 발굴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잘못된 복지 중 하나가 노인 무상급식이다. '밥 공짜로 먹으니까 몸 움직이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한다. 반면 진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아까 말했듯 차상위계층에 잡혀 실질적인 도움은 받지 못한다. 우리 같은 지역단위 봉사자들이 행정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손길을 주지만 현장에 있다 보면 아쉬운 것들이 보인다.

-우리가 봉사나 나눔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

▶봉사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분들을 복지기관에서 발굴할 필요가 있다. 또 봉사나 나눔은 남는 시간에, 남는 돈으로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돕는 게 당연한 거다.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을 위해 내어놓는 것이 당연한 거다.

사회가 좋아지려면 나만 깨끗해서는 안 된다. 내 주변 사람들도 같이 깨끗해져야 점차 맑은 사회가 된다. 마찬가지로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된다. 좋은 걸 배우게 되는 거다. 뭔가를 '준다'는 마음이 아니라 '얻는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2024년도 다 지나고 곧 새해다. 올해를 돌아보면 어땠는지, 새해는 어떤 마음으로 맞이하실지 궁금하다.

▶올 한 해 후회 없는 삶을 산 것 같다. 원 없이 봉사했다. 새해에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원 없이 봉사를 하고 싶다. '빠삐용'이 내 새해 다짐이다. (도와주는 일에) 빠지지 말고, 삐지지 말고, 용서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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