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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황영은] 궁사의 위로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새해라고 누구나 희망찰 수는 없다. 산꼭대기나 바다 앞에서 신년의 태양을 바라보며 한 해를 계획하고 소원을 비는 마음조차 버거울 만큼 삶이 고된 사람에게, 해돋이는 그저 낭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승진에서 누락이거나 먼 곳으로 발령 난 직장, 미래가 보장되는지 의문이지만 안 볼 수도 없는 대학 시험, 몇 날 몇 달 동안 영혼을 갈아 넣어 준비한 공모전에서 실패의 쓴맛을 본 자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1월 1일 공식 발표되는 신춘문예에 투고했던 작가 지망생은, 지난 12월 중순부터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이불 속에서 킥을 날리며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다. 혹여 신문사에서 온 당선 통보 전화를 받지 못할까 봐 휴대폰을 끼고 다니며 02나 타지역번호로 발신되는 숫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도 할 것이다. 그러다 크리스마스쯤부터 떨어졌다는 사실을 체감하며 자괴감에 자신을 또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어야 한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시 노트북 앞에 앉을 테지만 당장은 열패감에서 헤어 나올 길이 없다.

대학 시절, 시인인 교수께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글 쓰는 자의 운명은 못 박힌 수레바퀴와 같다고. 당시엔 그저 문우들과 문학 언저리에서 술을 마시며 노는 일이 좋아서 뜻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살아갈수록 그 말의 이미지가 선연해지면서 마치 나 스스로 못 박힌 수레바퀴가 된 기분이다.

바퀴는 굴러가는 운명을 타고났다. 굴러가지 않으면 바퀴가 아니듯 작가에게 쓰는 행위란 운명과도 같다. 그런데 그 바퀴에 못 하나가 떡하니 박혀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큰 대못으로. 한 바퀴 구를 때마다 아파서 죽을 것 같다. 확 뽑아버리고 굴러가면 될 일인데 작가는 그럴 수 없다. 아야, 아야, 고통에 몸서리치면서도 안간힘으로 바퀴를 굴려 간다.

필자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신춘문예든, 직장이든, 시험이든 실패를 맛본 사람에게 궁사가 돼라는 당부이다. 궁사는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든 말든 곧바로 다음 화살을 뽑는다. 그건 온몸에 육화된 생존본능이다. 멈칫했다가는 생명이 위태로울 뿐만 아니라 여태 공들여 쌓아 올렸던 것까지 와르르 무너질지도 모르니까.

과거 당선의 기쁨을 미리 누려서 하는 말이 아니다. 짜릿한 그 찰나는 카메라 셔터음처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또다시 마주하는 건 무엇을, 어떻게 쓰지, 라는 지각과 맨틀 사이 그 어디쯤 표류한 막막함이다.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할 시간뿐이다. 그 길이 얼마나 처절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직도 진행형인 바퀴를 굴리고 있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이어질지도 모를 시간이지만 괜찮다고, 새로운 화살을 뽑으라고 어깨를 툭툭 건드려주겠다. 절대로 못을 뽑아내지 않을 거라는 다짐이자, 똑같은 화살통을 메고 살아가는 궁사의 작은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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