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준식의 '꿈과 품'] 이 또한 지나가리라

김준식 제이에스 소아청소년과 원장, 계명의대 명예교수

김준식 제이에스소아청소년과 원장, 계명의대 명예교수
김준식 제이에스소아청소년과 원장, 계명의대 명예교수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명언들이 있지만, 나에게 늘 조심하며 때로는 용기 있게 살아가게 하는 문장은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는 의미의 'Et hoc transibit'이라는 라틴어이다. 2024년은 유난히도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은 한 해였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

12월에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와 이로 인한 정치권의 혼란과 경제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신인도가 떨어지고 정치적 후진국으로 낙인찍히는 참담함 가운데서, 무안국제공항의 항공기 사고로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고, 모든 국민이 놀라고 우울감에 빠져 있다.

해마다 1월 1일 천을산에서 열리던 해맞이 행사도 취소되어, 평소 자주 등반하던 유건산 전망대에서 해돋이를 보기 위하여 새벽 산행에 나섰다.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욱수골 주차장에는 많은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야간 등산로 안내등이 설치된 등산로를 따라 많은 시민들이 험한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주위는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안내등의 불빛을 따라 많은 시민들이 친구와 함께, 가족과 함께, 혹은 반려견을 데리고 산행을 하였다. 안내등의 번호가 45번쯤에 휴식처가 있고 70번부터는 편평한 길이 이어지다가 90번이 되면 유건산 전망대에 이르게 된다. 산길이 비교적 험하여 나는 헤드램프를 착용하고 등반하였는데, 야간 등반로 안내등이 일출 시간이 되면 자동으로 꺼지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위는 아직도 깜깜한데 갑자기 안내등이 소등되면서 등반을 하던 시민들이 휴대폰의 손전등을 이용하여 불편하게 산을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여명(黎明)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정치나 사회 상황이나 북한과의 긴장 상태에서도 동일하게 새벽녘이 가장 어둡고 암울한 시간임을 반추하면서 2025년의 희망을 가슴에 품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해돋이를 기다리는 유건산 전망대를 지나 만보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상의 바위산에 홀로 서 모든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소나무에서 일출의 장엄한 모습을 사진에 담으면서 늘 해맑은 웃음으로 다가오는 어린아이들이 생각나, 이들과 함께하는 2025년은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렀다.

어린아이들을 진찰하기 전에 차가운 청진기를 호호 불어가면서 따뜻하게 하는 모습에 아이들은 안심을 하고 부모들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예방접종을 직접 하면서 떼를 쓰거나 접종 후 울고 있는 아이에게 칭찬 스티커를 주면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 달래기도 한다.

경련을 하였거나 발달이 지연되어 고민하며 멀리서 달려온 환아를 진료하고 부모를 안심시키며 적절한 조치를 하고, 때로는 3차 의료기관으로 추천하여 보낼 때 눈물을 흘리며 안도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대학병원에 근무하면서 느끼지 못하였던 소소한 보람을 찾게 된다.

이러한 환자나 보호자와 소통하는 훈련들이 표준화 모의 환자를 이용한 객관적 구조화된 진료 실기시험(OSCE: Objective Structured Clinical Examination)을 통해 의과대학 학생들이 환자의 눈높이에서 의사소통을 하고 전문직으로서의 윤리적 태도와 책임감을 가지도록 하고 있으며, 실제 의사국가고시에서 이 시험을 통과해야 의사가 될 수 있고, 이러한 교육이 현재 의과대학에서 시행되고 있다.

2024년의 마지막 날, 수성아트피아에서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이 연주되어 많은 감흥을 주었다.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송가'에 나오는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광채여,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리라"는 가사처럼, 비록 전쟁과 국가 이기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어도, 지금의 우리나라처럼 정쟁과 분열과 갈등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사람들은 환희 속에서 하나가 되고 모든 이들이 형제자매처럼 어울리며 행복을 나누는 합창이 어우러질 것이다.

이어갈 후대 세대에서는 꿈과 소망을 가질 수 있는 2025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속으로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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