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80년 분단 역사의 징검다리, 거센 물살 앞에 서다

정진호 포스텍 교수

정진호 포스텍 교수
정진호 포스텍 교수

새해 벽두를 준비하며 〈매일신문〉에서 고정 칼럼을 써 달라는 요청이 왔다. 다분히 진보적인 색채의 칼럼들을 신문지상에 써 왔던 내 이력을 알 터인데, 대구경북(TK) 지역의 대표적인 보수지 〈매일신문〉에서 칼럼 요청을 해 온 것이 뜻밖이었다.

작년 말 몰아닥친 비상 사태는 영남 지역에 가장 큰 타격을 입혔다. 영남에서 가장 큰 힘을 실어 대통령으로 세운 자가 계엄으로 국가적 재난을 가져오고 내란 수괴로 탄핵소추를 당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로 인해 영남 지역의 〈매일신문〉도 뒤를 돌아보며 새로운 각오로 새로운 지평, 새로운 내일을 열어 가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글을 쓸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2025년은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을사늑약 120주년과 해방 후 강제 분단의 비극이 한반도에 드리워진 지 80년이 되는 해이다. 20세기를 피로 물들였던 제국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 전쟁 피해를 가장 극심하게 겪었던 우리 민족, 외세에 의한 분단으로 비통하게 갈라지고 동족상잔의 아픔까지 겪으면서 남북한은 씻을 수 없는 이념 트라우마의 희생양이 되었다. 세습 독재와 군사 독재로 적대적 공생관계 속에서 상시 비상계엄 상태와 같은 휴전 상황을 살아 냈다.

그 엄혹한 세월 속에서 남북한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남한이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내어 세계 열강과 견주는 선진 강국으로 올라서는 동안 북한은 고난의 행군 속에서 자주와 주체를 내세우며 세계를 놀라게 하는 핵 강국으로 올라섰다.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비상계엄이라는 과거의 악몽을 사전에서 지워 냈다고 생각했던 21세기의 겨울 어느 날, 우리는 계엄과 내란이라는 거센 물살을 또다시 직면하며 경악했다.

한때 눈떠 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K-팝(pop)과 K-문화로 세계가 부러워하고 배우려 하던 그 나라가 하루아침에 군사계엄과 내란이 일어난 후진 국가가 되어 버렸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라는 자가 자신의 정권 야욕에 사로잡혀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강제로 끌어내려는 모습을 지구촌이 생방송으로 지켜본 것이다.

그것을 시민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온몸으로 총구를 막아 내고 담장을 넘어 집결한 국회의원들이 민주적 절차로 계엄을 해제하고 탄핵 절차를 밟는 모습에 세계는 연거푸 놀랐다.

대통령의 체포영장 거부로 심각한 내란은 진행 중이다. 80년 분단 역사 속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으로 갈라져 보수와 진보로 피 터지게 싸운 결과물, 그 보고서를 전 세계에 송출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호는 선장의 부재 속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와 파고 속에 갇혀 버렸다.

지난 2년 반 온 나라가 사욕을 취하려는 법 기술자들에 의해 참극과 재난으로 시끄러웠다. 억울한 젊은 죽음들이 줄을 잇고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법치 파괴가 자행되고, 무당의 국정 농단을 추궁하는 탄핵의 목소리가 나라를 뒤흔들었다. 역사 왜곡으로 친일 매국의 시대가 다시 도래한 듯 일출(日出)로 한반도를 밝히고 지키는 동해의 중심 독도마저 위태로워졌다. 나라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식솔과 패거리만을 챙기는 자들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국가적 대란이 과연 무도한 권력자들만의 문제였는가? 정권에 반대하는 자들은 입을 틀어막고 압수수색으로 위협하여 두렵게 떨게 만들며, 그 권력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찬양하고 정권의 파수꾼과 나팔수가 된 보수 교회와 보수 언론이 이 나라를 무너뜨리고 있었던 공동 정범들이 아니었던가? 그들에 의해 선출된 이기적 권력이 지금 독립운동가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세우고 지켜 온 이 나라를 백척간두로 밀어 넣었다.

고심 끝에 칼럼의 이름을 매일내일(每日來日)로 정했다. 매일매일 우리가 건너뛰고 내딛는 세월의 징검다리는 내일을 향한 발걸음이다. 우리 발밑에는 역사의 거센 물살이 회오리처럼 지나가고 있다. 그 물살을 헤치며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작금의 상황, 삐끗 발을 헛딛는 순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는 심연으로 빠져들고 그동안 쌓아 올린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과연 누가, 무엇이 이 두려움을 가져왔는가? 이제 내가 걸어온 뒤를 돌아보며 내 앞의 징검다리를 점검해야겠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며 어떤 역사의 디딤돌을 놓을 것인가? 매일(每日)은 내일(來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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