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한 달 만에 대통령 탄핵심판의 닻이 올랐다. 국가적 불행 속에 탄핵 정국의 예측 가능성을 회복한 것은 민주주의의 힘이다.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는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서 예측 가능성을 담보한다. 만약 이런 국헌 문란이 권위주의 체제에서 발생했다면 미궁을 헤매거나 더 큰 정변으로 악화될 수 있다.
재스민 혁명으로 촉발된 아랍의 민주화는 권위주의로 회귀하며 막을 내렸다. 동남아 민주주의의 희망 미얀마도 민주화의 봄에서 더욱 억압적인 군부 권위주의로 퇴보했다. 그래서 권위주의로 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성과 정상화된 미래의 예측 가능성은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이다.
그러나 여전히 탄핵 정국의 불안정성이 지속되고 있다. 그 원인은 헌정주의의 위기와 적대적 공생관계의 지속 때문이다. 먼저 헌정주의의 위기는 세 방향에서 닥치고 있다. 첫째, 대통령 탄핵심판 9인 체제가 완성되지 못한 것은 큰 결함이다. 자칫 헌법재판관 한둘의 의사로 탄핵 여부가 갈린다면 헌정사에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은 정략적으로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 추천을 거부했다. 그러다 탄핵 정국에서 헌법재판관 임명을 밀어붙이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 수반의 비상계엄과 내란죄를 다루는 중차대한 시국에 헌법재판관 임명을 미루는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 마땅히 성원을 채워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탄핵심판을 이끌어야 한다.
둘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소추한 기준의 정당성 논란이다.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 간의 정족수 기준이 다른 가운데, 국회의장이 자의적으로 탄핵소추를 선언한 것은 나쁜 선례를 남겼다. 국회의장은 의회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입법부 행위의 완결성을 기하여 탄핵소추 기준을 엄정하게 확립해야 한다.
그러나 닥치고 탄핵부터 하고 보자는 반의회주의적 행태로 권한쟁의심판을 야기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절차를 무시하고 반헌법적 폭거를 일으켰지만 이를 추궁하는 집단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더욱 민감해야 한다. 특히 중대 사안일수록 절차의 무결성을 지향해야 한다. 민주당은 최상목 대행도 탄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어떤 기준과 절차로 의회민주주의를 지킬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셋째, 탄핵소추 의결서에서 내란죄를 삭제한 것은 탄핵심판의 역사적 의미와 정당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한 작태다. 누가 국회 법사위원장에게 이런 권한을 부여했는가. 민주당은 대통령에 이어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내란 공범으로 탄핵소추하고 그 동조자로 국민의힘 원내대표까지 고발한 상태다. 따라서 내란죄의 법적 실체적 판단을 도출하는 것은 탄핵심판의 핵심이다.
더욱이 국회 탄핵소추인단은 재판부의 권유를 받아들여 내란죄를 삭제했다고 변명하고 헌법재판소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한다. 이 절체절명의 시국에 야합을 의심케 하는 이 진실 놀음의 실체는 반드시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만약 대통령 탄핵이 각하될 경우 누가 책임질 것인가. 중요한 것은 탄핵소추의 동일성 원칙을 지켜 탄핵심판의 완결성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런 헌정주의의 위기는 윤석열과 이재명 그리고 국민의힘과 민주당 간의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발원한다. 양 세력은 내부의 이견을 허용하지 않고 파시즘적 경향을 띤다는 점에서 서로 닮았다. 이들의 맹목적 지지층도 자신이 섬기는 우상의 흠결은 철저히 외면한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이 저급한 양극화 구도에서 윤석열의 탄핵은 이재명의 높은 집권 가능성을 뜻한다. 따라서 이들은 탄핵 정국의 상수로 군림하며 시간을 끌면서 법치와 헌정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의 기개를 잃고 수사에 저항하고 있다. 이 대표의 치졸한 재판 지연 술책도 익히 알려진 바다.
적대적 공생자들의 사리사욕에 이 나라의 운명이 좌우되지 않도록 사법의 정의가 우뚝 서야 한다. 법치는 절차적 정의의 마지막 보루다. 사법부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과 이 대표 재판 기한을 철저히 준수하여 국정 난맥을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사법부를 기만하는 행태를 엄중히 바로잡아야 한다.
이것이 탄핵 정국의 절차적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다. 그래서 조희대 대법원장의 신년사는 사법의 정의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는 국민의 열망에 부합한다.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를 뿌리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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