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대의 창-김노주] 을사년이 을씨년스럽지 않기를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노주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어떻게 사느냐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누구나 바라는 것은 행복이다. 하지만 러셀이 '행복의 정복'에서 말했듯이 행복 그 자체는 추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가령 '지금부터 행복해야지'라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인생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생은 정(靜)적인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過程), 즉 프로세스다.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변해 가듯 우리네 인생도 변해 간다. 변하는 것을 고정된 것이 아닌 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제대로 보는 것이다.

인생이 프로세스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첫째, 현재를 즐겨야 한다. 현재가 괴롭다면 그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재가 힘들더라도 그 처지를 즐겨야 하는 이유와 방법은 무한대로 많으며 그 처지를 비관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도 무한대로 많다. 되도록 밝은 쪽을 보는 것이 삶의 지혜다. 다윗과 솔로몬 왕의 반지 이야기에 나오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도 영욕(榮辱)이 한순간임을 잘 나타내고 있다.

둘째,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매일매일을 새롭게 맞이하는 것이다. 새롭게는 '변화된'이라는 뜻이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듯 같은 것을 두 번 만날 수 없다. 어제 본 꽃, 어제 만난 사람이 오늘도 같다고 보는가? 모든 것은 변화된 새것이니, 새것을 보는데 어찌 기쁘고 반갑지 않을 수 있는가? 눈앞에 있는 것도 내일이면 변해 버릴 텐데 어찌 관심과 사랑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렇듯 매일을 새롭게 맞이하면 권태는 사라지고 마음엔 기쁨이 충만할 것이다.

셋째,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 물질적 수입은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어제보다 더 많은 정신적 경험을 쌓지 않았는가? 보이지 않는 정신적 자산을 헤아리지 못하면 생이 서글퍼진다. 물질만 보지 말고 정신적 성숙도 중시한다면 오늘은 분명 어제보다 나은 날일 것이다.

이렇게 어제보다 자신을 좀 더 상승시키는 것, 이것을 니체 철학으로 표현하면 '위버멘쉬'(Übermensch)가 되는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 된다. 위버멘쉬는 자신의 힘 또는 능력을 최대한 고양시키고 인간 존재의 의미를 충실하게 구현하며 주인의식을 갖추고 당당하게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위버멘쉬라는 이상(理想)에 다가가도록 매일 노력하는 삶이 건강한 삶이다. 50대, 60대, 심지어 40대 중에서도 내 전성기는 지나갔다거나 다 살았다고 말하는 걸 종종 본다. '아, 생을 잘못 보고 계시는군요'라고 속으로 되뇐다. 위버멘쉬를 추구하는 삶에서 전성기는 죽기 직전이다.

그런데 이처럼 생이 프로세스이고 끊임없이 변한다면, 그래서 사랑, 우정, 신의(信義) 같은 사회 내의 기본 미덕도 변하고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인간이 판을 치는 황량한 세상이 되면 어떡하나? 정신적 자산을 중시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사회의 미덕을 중시할 수밖에 없고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행복지수도 높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회 내의 집단지성이 만들어낸 기본 덕목은 잘 유지될 것이다.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이해조의 '빈상설'(1907)에 '을사년시러워'라는 표현이 나온다. 을사사화, 을사늑약 같은 변고가 을사년에 일어났으니 좋지 않은 뜻으로 '을사년시러워'라는 표현이 회자(膾炙)된 증거다. 그런데 이 표현이 권영민이 엮은 현대어본(2008)에는 '을씨년스러워'로 바뀌어 있다. '을사년시러워'가 변해 '을씨년스러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을사년은 을씨년스럽지 않아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모든 것이 일류지만 정치는 삼류다. 잘못 선포된 비상계엄 후폭풍에 신속하게 대처해야 할 국회가 양극단의 이념에 치우친 사람들에 기대어 벼랑 끝 전술을 쓰며 당쟁(黨爭)만 일삼고 있다. 정부와 사정기관이 국회 눈치를 보며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사이 사회 각 분야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눈밭 속에서 꽃을 피우듯 온갖 역경을 이겨내 온 민족이 아닌가? 이 위기를 기회로 삼자. 썩은 삼류 정치를 쇄신할 때다. 정부와 사정기관은 일을 공정하고 적확(的確)하게 처리하고 시민들은 제자리를 지켜 '을씨년스럽지' 않고 도리어 국운(國運)이 상승하고 개개인의 행복이 느는 해로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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