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와 입구 사이〉
달리는 탑골行 전철에서 이젠 내려야 할 때
물 위 동동 떠다니는 하얀 껍질들이
소복하게 모여드는 탑골 공원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쉼터
길에서 뾰족한 시간에 쫓기느라
숨 가쁘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도
귓가에 들여앉힐 여유조차 없이 동동거렸지
빠르게 빠져나가는 햇살 가두느라
가파른 논두렁 밭두렁 사이를 맨발로 누볐지
새끼들에게 속살까지 남김없이 파 먹힌 우렁이처럼
빈껍데기만 남아 동동 떠다니는 저들
온몸 진이 다 빠진 채, 지하철 출구 무리 지어 빠져나가
또 다른 어둠의 입구로 빨려드는 껍데기들
내 몸뚱어리 살도 다 파 먹혀
소리 없이 물 위로 떠 오를 일만 남았으니
시려올 대로 시려오는 나의 뼈마디
우두둑우두둑 내려앉는다
<시작 노트 >
동네 골목 끝 안쪽, 노인정이 있어 집 앞을 오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자주 본다. 지나가시다가 힘이 들면 걸음을 멈추고 대문 앞으로 난 계단에 앉아 쉬기도 하신다. 못다 한 至難(지난)한 삶의 여정을 하늘 여백에 마저 풀어놓기라도 하시는지 양손으로 지팡이 곧추세우고 입 꾹 다문 채 망연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신다. 도시에서도, 시골에서도 허리 휘도록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켜 짝지어 떠나보내고 나면 결국, 모두 빈 껍질로 물 위 동동 떠다니는 논우렁이로 남는 것 아닐까. 나 또한 그러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가을 끝자락에 닿고 나서야 알았으니 추수 끝난 들판처럼 가슴 안쪽이 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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