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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 대전환] 87년 체제 대통령제 수명 다해…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개헌'

극한으로 치닫는 진영갈등, 서로의 이해, 협의가 필요한 때
대통령제 4년 중임, 5년 단임, 나아가 의원내각제 등 다양한 개헌론 불지펴

1987년 제9차 개헌 국민투표를 통해 제6공화국이 시작됐다. 군사 권위주의 시대를 극복하고 대통령을 직접 국민이 선출하는 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에게서 모든 권력이 나온다는 헌법의 정신을 실현한 것이다. 이후 38년간 여러 차례 개헌 논의가 있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정치‧사회‧경제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권력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다.

15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27일 오후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과 국회 대립에서 삼권분립으로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후폭풍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87년 헌정 체제에서 대통령제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있다. 대통령 권력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이 반복됐고, 특히 민주적 정당성을 보유한 또 다른 헌법기관인 국회와의 마찰은 노골화됐다.

1987년 이후 국회에 발의된 탄핵소추안을 보면 ▷김영삼(1회) ▷김대중(6회) ▷노무현(4회) ▷이명박(1회) ▷박근혜(2회) ▷문재인(6회) 등 극히 제한됐다. 반면 윤석열 정부(2024년 말 기준)에선 29회로, 전체 탄핵 발의(49회)의 59.2%나 집중됐다. 이중 가결된 탄핵안 16회 중 13회가 윤석열 정부에서다.

극단적 대결은 대통령의 거부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 38년간 국회의 법률안을 대통령(권한대행 포함)이 거부한 경우는 모두 49회로, 이중 윤석열 정부가 67.3%(33회)나 된다. 역대 대통령들의 경우 ▷노태우(7회) ▷노무현(6회) ▷이명박(1회) ▷박근혜(2회) 등 거부권을 행사했다.

2006년 5월 20일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흉기에 의한 피습을 당한 모습. 매일신문DB
한덕수 국무총리가 27일 오후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견제와 균형의 삼권분립의 실효성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대통령제 내의 내각제적 요소를 해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대표적으로 ▷국무총리와 국무회의제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 ▷법률안 제출권 ▷대통령의 임시국회 소집 요구권 등이다.

대통령의 위상 변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현재 대통령은 제3공화국 헌법에서 규정한 '행정부 수반'이 아니라 유신헌법과 제5공화국 헌법의 '국가 원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삼권분립의 완성을 위해선 행정부 수반으로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연구원은 지난해 발간한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 역사와 행사 사유'를 통해 "대통령이 법률안거부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해 입법에 과도하게 관여하는 것은 국회를 제치고 실질적인 입법권자로 행위하는 것으로 헌법 구조상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타당한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으므로 국회와의 협치를 통해 신중하게 행사하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지난해 1월 2일 부산에서 신공항관련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매일신문DB
2006년 5월 20일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흉기에 의한 피습을 당한 모습. 매일신문DB

◆극한으로 치닫는 진영 갈등

지난 2006년 5월 20일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기습을 당했다. 서울시장 선거유세를 돕던 중 50대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얼굴을 다쳤다. 정치인 테러는 지난해 1월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사건으로 재연됐다. 이 대표는 괴한의 흉기에 목이 찔렸다.

두 사건은 진영 간 갈등이 극으로 치달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피해자들은 모두 야당 대표였다. 이외에도 이재명 대표 피습 23일 후에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괴한에게 둔기로 가격당했고, 앞서 2022년 3월에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피습을 당하기도 했다.

2004년 3월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 등과 함께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자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집회를 통해 탄핵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지난해 1월 2일 부산에서 신공항관련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매일신문DB

범인들은 특정 정당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고, 결국 왜곡된 정치 신념으로 인한 사건으로 종결됐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 지도자를 향한 팬심이 비뚤어지게 표출돼 상대를 공격하는 등 극단적인 갈등 양상을 보인다.

박진완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재 극단적이고 감정적인 정치대립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는 국가 전체의 이익을 외면하고 특정 정당과 지도자에게 의존하는 포퓰리즘에 따른 문제다"며 "이로 인해 국민의 대표성과 모두를 위한 정책은 왜곡되고 훼손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행정부와 입법부가 나뉜 '분점정부'가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 이후 진영 갈등을 낳고 있다. 취임 첫해 9월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국정운영에 전념한다는 명분이었지만, 당내 동교동계와의 갈등이 빌미가 됐다.

급기야 이듬해 3월 민주당은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 등과 함께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다. 대통령과 국회의 마찰이 극에 달한 것이다. 이후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여소야대의 상황을 돌파하고자 내각제적 권력분점의 내용을 담은 대연정을 제안했다. 또 4년 연임 대통령제로 개헌하자고 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는 "김영삼과 김대중 등 2000년대 이전과 이후 대통령들의 리더십은 무게감에서 차이가 난다. 모두를 아우르는 리더십이 없이 승자독식 제도에서 위임받은 권한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또 반대 진영과 협력하려는 노력 없이 적대시하는 정치문화는 이제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1989년 당시 김대중 평민당(가운데), 김영삼 민주당(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서울 가든호텔에서 회동을 갖고 특위정국 마무리 등 새해 정국운용에 대해 논의를 나누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연합뉴스
2004년 3월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 등과 함께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하자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집회를 통해 탄핵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매일신문 DB

◆권력 개편 방향은…4년 중임 or 분권형

이로 인해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필요성과 논의는 꾸준히 진행돼왔다. 특히 5년 단임제를 대신한 4년 중임제 개헌론이 제기됐다. 4년 중임제는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르고, 재선을 통해 장기적인 정부 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정권에 대해 중간평가를 내릴 수 있어 유권자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진다. 다만 8년 집권으로 대통령 권한이 더 비대해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 집권 때에 현재 5년 단임제처럼 레임덕이 반복될 우려도 있다.

서보건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은 "5년 단임제는 선거마다 국론과 여론이 분열된다. 팽팽한 대립 관계가 있는 곳에선 정권의 연속성이 짧아진다. 그래서 중간평가를 받고 더 긴 호흡으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4년 중임제가 더 필요하다"며 "다만 여야와 좌우 대립이 치열한 현재 상황에선 너무 잦은 정권교체라는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기에, 근본적인 권력구조를 바꿀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안으로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정부제)도 제시된다. 관련해 국회는 2009년과 2017년 각각 자문위원회와 특별위원회를 구성, 개헌 논의는 이어왔다.

자문위원회는 제1안으로 이원정부제를 내세웠다. 대통령은 현행 그대로 5년 단임으로 하되, 국무총리는 국회(하원)에서 재적 과반으로 선출하자는 것이다. 총리에게 국정 전반의 통할권과 내각 구성권, 국군통수권, 긴급재정경제명령권 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총리에게 국회해산 요청권을, 국회(하원)에는 내각 불신임권을 각각 인정해 견제와 균형을 맞추자는 제안이다.

특별위원회도 분권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 4년 중임과 책임총리, 책임장관제 등 내각제적 요소의 강화를 제시했다. 국회에서 추천‧선출하는 총리가 집행기능 일부분을 담당하는 분권형 정부제다.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대통령과 총리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선우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7년 체제의 대통령제는 사실상 수명을 다했다고 본다. 이원정부제를 통해 인사권, 예산권 등이 몰려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국회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각제적 요소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권력구조를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회의 책임을 높일 내각제

헌법‧정치학자들은 장기적으로 의원내각제를 지향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가 선호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2022년 기준 OECD 38개국 중 대통령제는 한국을 포함해 7개국뿐이다. 이중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칠레, 멕시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튀르키예) 중 대부분은 권위주의 정권이나 내란, 쿠데타 등 사회적 분열과 내부 갈등을 겪었다. 이에 비해 내각제는 26개국(독일, 영국, 일본, 호주, 캐나다, 이탈리아 등)에 달한다. 나머지는 이원정부제 4개국과 집단지도제 1개국이다.

1989년 당시 김대중 평민당(가운데), 김영삼 민주당(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서울 가든호텔에서 회동을 갖고 특위정국 마무리 등 새해 정국운용에 대해 논의를 나누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연합뉴스

앞서 내각제 논의가 있었다. 1990년 노태우 정부에서의 3당 합당, 1997년 김대중과 김종필의 연합 모두 내각제를 매개로 했다. 하지만 권력을 잡은 뒤에는 개헌에 대한 의지가 떨어지는 등 개헌 추진은 1987년 이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유럽국가들은 내각제를 통해 권한 배분과 의원 중심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다변화된 현대 사회에 유연한 정책 실행이 가능해서다. 대표적으로 영국과 독일이 손꼽힌다. 영국은 왕권이 있긴 하지만 의회의 권리장전으로 현재는 왕권은 축소되고 의회가 내각 대부분을 담당한다. 선거를 통해 다수를 차지한 정당에서 총리를 선출하고, 총리는 내각을 구성‧운영한다.

독일은 분권형 내각제로 실질적 행정권은 연방정부가 갖고 국가 원수는 외교와 의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의회는 불신임 권한을 행사할 때 차기 총리 등 대안을 마련한 상태에서 진행하는 '건설적 불신임권'을 갖는다. 정부의 의회해산권 역시 제한을 두는 등 견제 기능을 강화한 내각제다.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한 우윤근 단국대 석좌교수는 "87년 체제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큰 획을 그었다. 하지만 40년 가까이 흘러오며 이제는 변화가 필요할 때다. 세계적으로도 멕시코, 콜롬비아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의원내각제로 향하고 있다. 동서와 남북 등 갈등이 많은 우리나라는 다수결보다는 합의제로 가는 내각제가 더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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