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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과 전망-최병고] 野 내란죄 철회는 '이재명 시간'에 맞춘 꼼수

최병고 서울취재본부 본부장
최병고 서울취재본부 본부장

국회 탄핵소추단이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유에서 '내란죄'를 철회했다. '이재명 사법 리스크 회피' 목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상식적인 국민 눈높이에서도 '꼼수'라는 지탄을 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제 마음대로 죄명을 넣었다가, 뺐다가 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윤 대통령을 '내란 우두머리'로 규정하고 10여 일 만에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도 모자라 집권 여당은 '내란 옹호당'으로, 국무위원들은 '내란 추종 세력'으로 프레임을 걸고 대대적인 여론전과 속도전을 펼쳤다. 그런데 헌재 심판을 시작하는 이제 와서, 윤 대통령 죄목 중 가장 무거운 내란죄를 다투지 않겠다고 한다. 황당하기 짝이 없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당의 행태를 그대로 보여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이미 내란 혐의로 탄핵소추된 한덕수 국무총리는 어떻게 되나.

야당이 주도한 국회는 지난달 14일 통과시킨 탄핵소추 의결서에서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통해 군대와 경찰을 동원, 무장 폭동하는 내란죄를 저질렀다'고 규정했다. 탄핵소추의 핵심 사유 중 하나를 내란죄로 규정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3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변론준비기일에서 국회 측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 사유 중 '형법상 내란죄'를 철회했다. 그러면서 "내란 혐의의 유무죄 판단은 형사 법정에서 입증될 것"이라며 "헌법재판이 형법 위반 여부에 매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헌법 위반에 대한 사실관계로 다투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이재명 시간'에 맞춘 시도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증인 신문 절차와 입증이 필요한 내란죄를 다퉜다가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높아질 수 있으니, '헌법 위반' 같은 추상적인 죄명을 앞세워 속전속결로 헌재의 탄핵 인용을 받아내겠다는 의도라고 생각된다.

내란 철회에 여권은 격앙됐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통과될 때는 내란죄를 전면에 내세우고, 헌법재판소에서 심판할 때는 내란죄를 뺀다면 탄핵 절차를 우습게 만드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여태 내란죄 프레임으로 죽일 놈이라고 선동하더니(…)"라며 "한 사람의 나라 농단으로 대한민국 국회와 사법 체계가 엉망진창이 돼 간다"고 꼬집었다.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탄핵소추 사유 변경이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물타기'라고 생각된다. 재판에서 일종의 공소 유지가 안 된 셈인데, 그렇다면 기소 절차를 다시 밟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지 않나.

국회가 탄핵소추 절차를 새로 밟아야 한다는 주장이 터져 나온다. 윤 대통령 법률자문인 석동현 변호사는 "탄핵 사유에서 내란죄 대목을 철회했으니 국회는 변경된 사유로 다시 탄핵 표결을 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내란죄를 뺀 새로운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전혀 다른 소추안"이라며 국회 의결을 새로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을 시도한 지난 3일 필자도 한남동 관저 앞 집회 현장에 탄핵 반대 시위대와 함께 있었다. 4일에는 민노총 등 탄핵 찬성 단체가 관저 앞으로 몰려와 맞불 집회를 펼쳤다. 나라가 안팎으로 위기인 상황에, 이 무슨 난리인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다수 국민들은 여론조사에서 이미 그에 대한 판단을 내렸다. 다만 헌재 결과가 나오고 또 다른 소란이 나지 않도록 절차를 제대로 밟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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