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는 한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대변하는 살아 있는 유산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북 안동의 병산서원은 조선 시대 서원의 정수를 보여 주는 건축물로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한국의 철학과 전통을 간직한 소중한 자산으로 통한다.
이처럼 중요한 문화유산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훼손되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넘어 우리 사회의 책임 의식을 되묻게 한다.
지난달 30일, 한 방송사 드라마 촬영 팀이 병산서원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만대루 기둥에 못을 박아 소품을 설치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병산서원은 지난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 중 한 곳으로 그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평소 만대루에는 일반인의 출입도 제한되는 곳이다.
그런데 촬영 팀이 소품 설치를 위해 기둥에 못질을 한 것은 문화재의 원형을 훼손한 중대한 사안으로 많은 시민과 전문가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방송사 측은 공식 사과문을 내고 "기존 못 자국이 있던 곳에 못을 넣어 압력을 가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문화재 훼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로 비치고 있다.
한 건축가는 SNS를 통해 "세계문화유산 병산서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촬영 팀과 관리 당국의 책임을 강하게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문화재 관리 체계의 허점도 여실히 드러냈다.
촬영 허가를 내준 안동시는 허가 조건에 '문화재 훼손 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고지했지만, 현장에서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점에서 관리 소홀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촬영 팀이 만대루 기둥에 못질하고 소품을 병산서원 곳곳에 쌓아둔 것 자체가 철저히 보호받아야 할 문화재의 관리 실태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 주는 사례다.
이번 병산서원 훼손 사건뿐 아니라 지역에서 문화재 훼손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지난 2012년에도 안동 하회마을 부용대에서 열린 공연 중 불꽃놀이로 인해 인근 산림 약 40㎡가 소실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방송국 제작사는 과태료 처분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유사 사건이 계속 발생하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부족했음을 보여 준다.
문화재 훼손이 반복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문화재를 보호해야 할 관리 당국의 소극적인 대응과 촬영 팀의 낮은 책임 의식이 근본적 원인이다.
문화재는 우리 모두의 자산이다. 이를 보호하는 것은 단지 관리 당국의 몫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촬영 허가 절차를 강화하고, 문화재 활용에 대한 규정을 세분화하며 촬영 팀과 제작사에 대한 문화재 보존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현장에서의 감독 체계를 강화하고, 촬영 시 문화재에 물리적 훼손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사전 점검과 보완책이 필요하다.
안동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병산서원의 원상복구를 위해 문화재 전문가들과 협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사후 약방문에 그치지 않으려면, 문화재 보호의 중요성을 재차 인식하고 실질적인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단지 국가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인류 공동의 유산이다. 이번 병산서원 훼손 사건은 우리가 문화재 보호에 얼마나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상기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문화재를 지키는 일은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문화유산은 우리의 자산이자 후손에게 물려줄 가장 소중한 유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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