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생자 카톡 친구 목록 필요해"…'디지털 유산' VS 잊힐 권리 재점화

6일 기준 연락처 목록 확인된 휴대폰 48대 불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 "휴대폰 파손에 부고 소식 전할 방법 없어"
전문가 "해외 사례처럼 디지털유산 상속자 사전 지정 필요"

제주항공 참사 발생 나흘째인 지난 1일 무안국제공항 청사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추모 손편지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항공 참사 발생 나흘째인 지난 1일 무안국제공항 청사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추모 손편지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의 유족들이 고인의 지인과의 연락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하면서 이른바 '디지털 유산 상속' 제도 도입의 필요성이 다시 수면위에 떠올랐다. 디지털 재산을 규율하기 위한 논의는 수년째 이어졌지만 '사후 프라이버시 침해'를 이유로 사회적 합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고 관련 제도를 법제화한 해외 사례도 나오면서 국내에서도 세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 유산 승계 제도화해야"

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 통신이용제도과에 따르면 과기부는 카카오톡과 네이버에 저장된 고인의 지인 연락처와 휴대전화와 연동된 클라우드 등에 저장된 개인정보를 유족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 관련 기업과 검토 중이다. 지난 3일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이 휴대폰 파손 등의 이유로 부고를 전할 방법이 없다며 과기부에 정보 제공을 요청한 데 따른 조치다.

이날 유가족은 무안국제공항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부모가 돌아가시고 자녀만 남은 경우가 많아 고인의 지인들께 연락할 길이 없어 곤란해하고 있다"며 "카카오톡 등에 남은 지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건의드린다"고 요청했다.

실제 사고 당시 폭발 여파로 희생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휴대전화·태블릿PC·노트북 등 전자기기 온전치 못한 유류품이 대다수고, USIM칩·SD카드 등 저장매체를 복원해 일부나마 연락처 목록이 확인된 전자기기는 6일 기준 48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어 관계 기관과의 협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지난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의 유가족 역시 희생 장병의 미니홈피 자료를 당시 싸이월드를 운영하던 SK커뮤니케이션즈 측에 요구했으나 관련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요청이 거절됐다.

이처럼 가족, 지인 등의 급작스런 사망, 실종 등의 경우에 이를 처리하는 법적 제도가 없는 실정에 대비해 디지털 유산 승계가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지난 2003년 발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유가족 역시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윤석기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참사 당시 승객 신원 확인이 곧바로 되지 않아 총 138명이 실종자 신고됐다"며 "이런 경우 유가족들도 마지막 통신기록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귀금속이나 부동산이 유품의 개념이었지만 IT 산업이 발달한 지금은 휴대폰 안에도 친인척과 관련된 정보, 즉 또 다른 유품들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는?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처럼 디지털유산 상속자를 사전에 지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해외 플랫폼 기업인 애플은 사망 이전 지정된 유산 관리자가 계정 주인 사망 후 해당 계정의 메시지, 데이터 등에 접근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도 이용자가 사망시 계정 관리권을 어떻게 처분할지 결정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에서 디지털 유산 상속을 법제화 사례도 있다. 미국의 경우 50개 주 중 47개가 넘는 주에서 '수탁자 디지털 자산 접근에 관한 개정 통일법(RUFADAA)'을 채택해 이용자가 동의한 경우에는 유산관리자나 수탁자가 해당 전자통신에 접근할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에 대해 김명주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디지털 유산 상속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입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현 단계에서는 플랫폼 기업 별로 전체 이용자들의 동의를 얻어 약관을 개정해 이용자가 디지털 유산에 대한 유산 관리자를 지정하는 방법 등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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