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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조유진]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

조유진 신세계갤러리 대구점 큐레이터

조유진 신세계갤러리 대구점 큐레이터
조유진 신세계갤러리 대구점 큐레이터

여행을 가면 꼭 그 여행지에서의 유명한 미술관을 찾아갔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보았던 클로드 모네의 수련 파노라마와 로뎅 미술관에서의 지옥문 조각상, 비엔나 레오폴드 미술관에서의 에곤 실레 회화들, 벨베데레 궁전에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암스테르담에서 만났던 고흐의 명화들. 여러 걸작들을 마주했던 그 순간, 시대를 초월한 정적을 경험했다. 나를 둘러싼 공간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이었다. 상투적이지만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감동이었다. 작품과의 교감 속에서 서서히 작가의 뿌리 깊은 고뇌와 열정이 캔버스 화면 밖으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일상을 돌아온 지금도 그 순간들을 떠올릴 때마다 울컥 감동이 밀려온다. 그리고 '이런 감동을 전달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물음을 반복해서 떠올린다.

물론, 필자와는 달리 유례없는 미술의 유산들에서조차 어떠한 감흥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미술은 주관적이기에 어떤 이는 깊은 위로를 받기도, 어떤 이는 슬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이는 무감각하기도 하다. 보는 이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다양한 해석의 여지로 가득하다는 것 또한 미술의 매력이다. 하지만, 그 자체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무용한 존재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유산들은 일종의 기록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역사의 목격자이자 행위자이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다.

명작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로 감상자를 이끌어 동행한다. 어떤 동행은 친숙할 수도 있고, 어떤 동행은 더없이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다. 작품과의 동행이 생경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곳과 감상자를 연결하는 고리의 부재 때문일 것이다. 전시기획자는 이러한 고리와 이정표를 잘 마련하여 이해를 돕는 조력자다. 걸작이 지닌 가치를 다면적으로 아울러 고민하고 이를 전달함으로써 감상자와 작품의 소통을 돕고 영감을 일깨워야 한다.

걸작은 미술이라는 형식으로 기록된 역사이며, 예술가의 고투이다. 그들을 일으켜 세운 꿈과 사랑, 상실, 희망과 절망, 격려의 언어다. 이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승화의 기록을 살펴보는 일일 것이다. 시대를 살아낸 예술가의 고뇌와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인간의 생(生)과 맞닿아있다. 결국 미술은 아름다움을 위한 사색과 동시에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모색한다. 타인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만나는 시간들. 이러한 경험들은 차곡차곡 밀도 있게 쌓여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의 확장을 가져온다. 그리고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한 단계 성장시켜 일상의 풍요를 돕는다. 이것이 우리가 미술 주변을 서성거리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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