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모현철] 'For a Better Tomorrow'(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편집국 부국장 겸 경제부장
편집국 부국장 겸 경제부장

"조선이란 나라는 수백 년간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 온 나라이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다.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하얼빈'에서 극 중 이토 히로부미가 자신을 암살하려는 작전에 대해 전해 듣고 중얼거리는 대사다. 영화 대사처럼 나라가 국난을 맞았을 때마다 안중근 의사 같은 민초(民草)들은 분연히 나섰다.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에서도 우리 민족은 밟고 또 밟아도 살아나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민초들은 결국 해방을 이뤄냈고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도 동시에 성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외환위기 때도 국민들이 일어났다. 금 모으기 운동에 351만 명이 참여해 227t(톤)을 모았다. 이 금을 수출해 21억달러를 마련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상환 자금으로 썼다. 일부 대기업과 금융자본, 정치권력이 초래한 외환위기를 국민들의 힘으로 극복한 세계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2025년도 국난이라고 부를 만하다. 내수 침체와 탄핵 정국으로 1%대 저성장이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트럼프 리스크'에 경제 버팀목인 수출에 이상기류가 흐른다. 국민 기업 삼성전자에는 경고음이 계속 울리고 있다. 인공지능(AI) 선도 경쟁에서 대만과 비교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수출에 차질이 빚어진다면 기댈 곳은 국내 경제이지만 고금리·고물가·고환율로 내수 업종은 붕괴 위기다. 대표적 내수 업종인 건설업계는 심각한 상황이다. 미분양 아파트는 계속 쌓이고 있다. 지방 건설사들은 바람 앞의 등불이고, 흉흉한 소문까지 나돈다. 철강산업과 2차전지 업계의 앞날도 먹구름이 가득하다.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은 절규하고 있다. 정부가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소비 심리를 끌어올리기 위해 오는 27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비상 상황인데도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반도체 특별법'을 비롯한 경제 분야 주요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첨단산업이 동력을 잃고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이 반도체, AI 등 첨단기술산업에 파격적 지원을 하면서 패권 경쟁을 벌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최대 IT(정보기술) 박람회 'CES 2025'에서 국내 주요 기업들이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모습은 안타깝다.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은 '정치 불안'과 '트럼프 리스크'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미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트럼피즘(트럼프주의)'이다. 미국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한국을 향한 통상 압박을 본격화할 것이다. 관세율 인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게 뻔하다. 그러나 트럼프를 상대해야 할 대한민국 대통령은 부재(不在)하다.

그렇다고 위기 앞에서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정치 리더십이 실종됐다면 기업이라도 앞장서 경제 회복에 올인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술 혁신(革新)이 가장 중요하다. 영화 '하얼빈'의 해외 포스터 제목은 'For a Better Tomorrow'이다.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간다'는 뜻이다. 안중근 의사도 한 번의 거사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냥 앞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한국 경제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정치권과 기업,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한다. 민초들이 가진 저력을 다시 한번 더 전 세계에 보여줄 때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