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은 4개 군에 걸쳐 있는 큰 산이라 금강사군 이라했고 흔히들 내금강, 외금강, 해금강으로 나눈다. 겸재 정선 당시 금강산은 주로 내금강을 가리켰다. 내금강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로 정양사 헐성루와 근처의 천일대가 꼽혔으나 이 그림처럼 금강산이 보이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정선은 드넓은 내금강의 요체를 바위산인 골산(骨山)과 흙산인 토산(土山)의 이중주로 파악하고 이를 한눈에 조망하는 밀집형의 드라마틱한 구도로 완성했다. 금강전도는 정선이 내금강을 하나의 틀로 형상화해 낸 가상의 금강경(金剛境)이다.
정선의 금강전도가 대부분 채색화인 것은 많은 사람들이 직접 가본 생생한 실경이라 수묵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금강내산'은 수묵화다. 그 이유는 지금은 선면화만 남았지만 원래의 부채가 보통과 다른 대단한 공예품이었기 때문이다. '금강내산'은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180도로 펼쳐진 반원형 부채꼴이고, 크기도 가로가 80㎝나 된다. 요즘 전주 합죽선은 대개 54㎝다. 이런 특징 때문인지 필묵미와 여백미가 특별하다.
정선의 금강전도는 보통은 흙산을 왼쪽으로 아래에, 바위산을 오른쪽으로 위에 두어 흙산이 바위산을 감싸는 좌우 대비 속에서 유기적으로 통합되는 구도를 취한다. 그러면서 탐승의 주요 거점과 명소를 표시 나게 그려 그림을 보면 유람의 여정이 한눈에 상상된다. 그런데 '금강내산'은 오른쪽 아래 장안사와 무지개다리, 왼쪽의 흙산 중턱 정양사 등 거점 사찰이 자세하지 않고 삼불암, 명경대 등 명소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림지도 풍의 설명적 경관 묘사 대신 필촉을 중첩시킨 필획 자체의 아름다움과 짙고 옅은 먹빛이 빚어내는 필묵 표현에 집중했다. 흙산의 잔잔한 미점(米點)과 바위산의 뾰족한 봉우리를 그어 내린 강약의 붓질 사이로 스민 묵운(墨韻)이 깊은 울림을 준다.
여백이 많고 배치도 인상적이다. 아래쪽 반원 주변에 경물을 집중시키고 위쪽 반원의 둥근 테두리 아래를 넓게 비워 반원형 도넛 형태인 화폭을 독특하게 활용했다. 이 부채를 좌르륵 펴는 순간 방사형으로 뻗는 부챗살을 따라 둥근 여백 아래에서 일만이천봉이 꽃송이처럼 솟아오르는 광경은 황홀했을 것이다.
겸재 선생은 금강산을 많이 그렸고 잘 그렸다. 그림지도의 전통을 소화한 위에 직접 체험한 금강산의 기기묘묘한 경치를 자신만의 구도로 요약하고, 칼칼한 선과 부드러운 점으로 바위산과 흙산이 어우러진 금강전도의 영원한 전형을 남겼다. 이후의 화가들은 정선을 모범으로 삼아 각자의 개성을 가미하며 금강전도를 변주했다. 금강산이 한 눈에 들어와 다녀온 사람이든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든 모두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만이천봉이 한 손안에 들어가는 부채그림은 최고로 인기였을 듯.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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