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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현장-박상구] '대경선 개통' 경사에 열차는 쥐꼬리…시민들은 불편

박상구 사회부 기자
박상구 사회부 기자

'큰 잔치에 손님을 많이 불러 놓고는 차린 음식이 너무 부실하다.'

도시철도나 기차를 유독 좋아하는 세 살 아들에게 새 기차가 나왔다고 하고 함께 대구권 광역철도(이하 대경선) 대구역에 갔다가 든 생각이다.

비교적 승객이 적은 평일 점심시간대에 방문했음에도 열차를 타기 위해 몰린 승객에 비해 열차의 규모와 배차 간격 모두 수요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라 보였다. 좌석에 앉기는커녕 몸을 지탱할 손잡이나 기둥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지난달은 대구경북 교통 역사에서 꽤 의미 있는 지점이었다. 대경선과 함께 대구권 광역 환승제가 확대 적용됐고 대구도시철도 1호선 하양역까지 연장 개통하면서 한 달 새 대구경북의 대중교통 외연이 크게 확대돼서다.

특히 비수도권 최초의 광역철도인 대경선에 대한 지역민의 기대감은 유독 컸다. 그동안 비교적 열악했던 경북 서부권과 대구 간 교통편을 '교통카드를 찍고' 오갈 수 있게 되면서 이곳의 직장인과 대학생 등 수요를 대경선이 흡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야말로 지역 입장에서는 '큰 잔치' 같은 일이었다.

실제로 지난달 14일 대경선이 개통하자 지역민 반응은 뜨거웠다. 시외버스나 기차를 타기 번거로워 움츠렸던 숨은 교통수요도 역사로 향하면서 대경선 열차는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했다.

대경선 혼잡은 실제로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달 22일에는 한 고령 승객이 열차 혼잡에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하며 잠시 쓰러지기도 했다. 온라인상에는 대경선과 같은 규모의 '꼬마 열차' 형태로 운행돼 혼잡 논란을 빚은 김포골드라인이 연상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경선 열차 규모와 배차 간격은 뜨거운 지역민 반응을 감당하기에는 한참 작고 길다. 현재 대경선 열차는 2량 1편성으로 최대 수용 인원이 296명에 불과하다. 최대 수용 인원은 좌석에 앉은 78명과 입석 218명을 합친 수치다. 6량으로 편성돼 있는 대구도시철도 1, 2호선 열차의 3분의 1 규모다.

배차 간격도 너무 길다. 현재 대경선 배차 간격은 출퇴근 시간대 약 19.2분, 평상시 25.4분이다. 출퇴근 시간 5분대의 대구도시철도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약 20분의 배차 간격까지 감안하면 편도 기준 한 시간에 수송할 수 있는 승객 수는 900명이 채 안 되는 셈이다.

개선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대책을 묻는 질문에 대구시와 코레일 등 관계 기관은 힘들다는 답변만 내놨다. 이미 승강장이 2량 열차를 기준으로 설계돼 열차 확장이 어렵고 일반철도와 선로를 공유하는 상황에서 배차 간격을 줄이기도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관계 기관이 이 같은 대경선 상황을 대수롭잖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교통수요조차 대경선 설계 당시 대구시 수요 예측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어서다.

당초 대구시는 하루 평균 대경선 승객이 4만7천 명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대경선 승객은 하루 평균 3만 명으로 대구시 수요 예측의 60%를 겨우 넘는 상태다.

결국 대경선 열차에 같이 탄 아들은 무섭다며 목마를 태워 달라고 했다. 위험하고 신발이 다른 사람 몸에 닿을 수 있으니 안 된다고 했더니 집에 가겠다고 떼를 썼다. 아이와의 '기차 여행'은 대구역에서 동대구역까지 한 정거장 만에 끝났다.

한 번에 300명도 타지 못하는 열차를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면서 기존 수요 예측대로 하루 4만7천 명이 탄다면 대경선이 '지옥철'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큰 잔치에 가서 얼마 되지 않는 음식에 몰려든 손님이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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