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국학진흥원, '꿈 매매문서' 발굴… 조선시대 길몽 거래의 비밀

친척들의 보증… 꿈 거래 구체적 내용 담겨
삼국·고려시대에도 이어진 꿈 매매의 전통

한국국학진흥원이 공개한 1814년 대구에 살던 박기상의 꿈 매매 문서. 해당 자료는 순천박씨 충정공파 운경정사 기탁자료이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한국국학진흥원이 공개한 1814년 대구에 살던 박기상의 꿈 매매 문서. 해당 자료는 순천박씨 충정공파 운경정사 기탁자료이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한국국학진흥원이 65만여 점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정리하던 중, 조선시대 길몽을 사고팔며 작성된 '꿈 매매문서' 2점을 발굴했다고 12일 밝혔다.

이 희귀한 문서는 꿈을 단순한 해몽의 차원을 넘어 운명을 바꾸는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던 당시 사람들의 믿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1814년 2월 대구에 살던 박기상은 청룡과 황룡이 하늘로 솟구치는 꿈을 꿨다. 그는 이 길몽이 특별한 행운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고, 사흘 뒤 과거시험을 보러 떠나는 친척 박용혁에게 꿈을 팔았다. 당시 작성된 문서에는 박기상의 꿈 값으로 1천냥을 책정하고, 박용혁이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오르면 대금을 지불하기로 약속한 내용이 담겨 있다.

계약서는 양측의 날인과 친척 두 명의 증인 서명까지 포함해 꿈 거래의 신뢰를 나타냈다. 단순한 꿈이 아니라 희망과 성공을 사고파는 과정이었다.

이후 1840년 경북 봉화에서는 하녀 신씨가 꿈에서 두 마리 용이 서로 얽혀 있는 장면을 보고 이를 집주인의 친척 동생 강만에게 삼색실을 대가로 팔았다. 당시 작성된 문서에는 신씨와 남편 박충금의 날인이 함께 담겼다.

한국국학진흥원이 공개한 1840년대 하녀 신씨가 집주인의 사촌에게 자신의 꿈을 판매하는 꿈 매매 문서의 모습. 해당 자료는 진주강씨 법전문중 도은공파 기탁자료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한국국학진흥원이 공개한 1840년대 하녀 신씨가 집주인의 사촌에게 자신의 꿈을 판매하는 꿈 매매 문서의 모습. 해당 자료는 진주강씨 법전문중 도은공파 기탁자료다. 한국국학진흥원 제공

꿈 매매의 전통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도 이어져 왔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문희매몽'에서는 김유신의 누이 보희가 서악에서 소변이 장안에 가득 찼다는 꿈을 꿨고, 동생 문희가 비단 치마 한 벌을 주고 그 꿈을 샀다. 결국 문희는 김춘추(태종무열왕)의 왕비가 되는 운명을 맞았다.

고려사에 기록된 '진의매몽'에서는 보육의 둘째 딸 진의가 언니의 꿈 이야기를 듣고 비단 치마로 그 꿈을 사들였고 정화왕후가 돼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

이처럼 꿈은 단순한 상상을 넘어 행운과 운명의 상징으로 여겨져 해몽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오래된 전통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용꿈, 돼지꿈, 태몽 등은 오늘날에도 희망과 행운을 예고하는 메시지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정종섭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은 "길몽을 사고파는 관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기록으로 남긴 사례는 매우 드물다"며 "이번에 발굴된 문서는 한국인의 독특한 전통과 믿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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