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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4쌤의 리얼스쿨] 외로움의 후폭풍을 견딜 자는 누구일까

외로움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외로움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의 전후 세대는 극심한 궁핍, 역동적인 사회의 변동, 이에 따른 급속한 가치관의 변화를 모두 겪었다. 이들이 겪은 고난의 깊이와 이를 극복한 성취의 높이 간의 거리를 측정한다면 마리아나 해구와 에베레스트 정상 간의 거리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지금의 70대 무렵의 어르신들이 가진 긍지는 대단하다. 전쟁을 극복하고 산업화를 일구어 본 적이 있나? 대학 등록금 때문에 빚지고 살아봤나? 결혼하고 애 낳는 거 해봤나? 안 해 봤으면 모르지. 이 정서를 아주 강하게 풍기는 세대다. 이렇게 '너희는 모른다'의 정서를 가진 이들이 모여, 역사를 모르고 나라를 모르는 젊은이들을 한탄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그들이 그토록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모인다. 다양한 세대가 다양하고 기발한 깃발을 앞세워 자리를 잡는다. 아이돌 응원봉을 들고 여러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K팝을 틀고 있다. 인근 상업지구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선결제를 하고, 어떻게 하면 따뜻하게 참여할 수 있을지 머리를 맞댄 결과를 SNS에 올린다.

두 그룹의 의견 차이는 원인이 너무나 분명하나, 나는 다른 차이점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극명한 차이의 근본은 '누가 더 외로운가'이다.

◆덜 외로운 학생들의 모습

어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학교는 굉장히 외로운 곳이다. 학교에서 무엇이 외롭냐고, 친구들과 편하게 노는 곳 아니냐고, 부디 학부모님들은 예전의 학교를 비교해 의문을 가지지 마시기를 바란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현재 여러분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는 여러분이 다니는 회사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경쟁이 치열하고, 좀처럼 속을 드러내지 못하며, 드러냈다가는 소문이 좋지 않은 곳이다.

외로운 치타들, 악어들, 강아지들, 고양이들이 살아가는 학교에서 드물게 전두엽이 잘 생성된 '사람 청소년'이 존재하는 경우를 본다. 이들은 자신의 장점과 가치를 잘 인식하고, 타인의 평가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평소보다 과한 농담을 하더라도 '그러려니' 넘어가고, 급우('친구'와 '급우'는 엄연히 다른 존재다)들이 까칠하게 굴어도 '오늘 기분이 안 좋거니' 여기며 수업에 참여한다. 게다가 '사람 청소년'들은 본인의 심리적 안정감을 유지하면서 교사를 지지한다. 혼자 있어도 행복하고 함께 있으면 즐거운 이들은 왜 안정적일까?

◆전두엽의 촘촘한 그물망을 구성하라

'사람 청소년'을 오래도록 지켜본 결과 한 가지 유의미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물망'이다. '사람 청소년'은 주변 사람들과의 친밀도가 높다. 일단 부모님이 이들에 대해 긍정적이다. 9등급이라도, 몸이 허약해도, 부모님이 긍정적으로 받아주신다.

"어, 그래 너 9등급이지." (뒤에 이어지는 잔소리 없음)

"맞아, 우리 ○○이가 지금 체력이 좀 약하지." (과거의 이력을 들추지 않음)

많은 학부모님들이 '긍정'에 대해서 '희망'이라고 오해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긍정은 반드시 현재에 초점을 둔다는 점에서 미래에 초점을 두는 희망과는 다르고, 주저앉아 돌아서 버리는 '회피'와도 다르다.

긍정적인 사람은 미루지 않고 당면한 문제를 의논한다. '아유, 9등급이면 떨어질 걱정은 없네. 조금 오르면 좋고'라든가, '몸이 약하면 실내에서 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아'라는 식으로, 접근성이 높은 대안을 제시한다. 이것은 전두엽이 잘 기능하는 인간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모이면 빛을 발한다. 서로의 필요를 잘 알고, 공감하며, 채워줄 줄 안다. 말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고 화목하다. 굳이 과거를 들먹여 얼굴을 붉히거나, 미래를 논하며 한숨을 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간혹 원가족이 없는 '사람 청소년'이 있는데, 이들 역시 긍정적 사고가 충만한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있어서 전두엽의 기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피드백을 많이 받는 경향이 있다.

◆외로운 청소년이 외로운 어른이 된다

그렇지 않고 미래에 초점을 두거나 회피를 하는 가족과 주변인을 둔 청소년들은 현재에 충실하기 힘들고, 도피의 성향을 띄게 된다. 무리한 지원으로 '수시 광탈'하는 학생들, 반별 장기자랑에 참여를 못 하는 학생들, 급우의 약점을 캐내어 SNS에 올리고 '빛삭'(바로 삭제)하는 학생들, 체육대회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책만 보는 학생들. 모두 가정에서 이야기할 대상이 없는 학생들일 가능성이 높다.

혹시 본인이 이런 마음으로 자녀와 대화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자.

'요즘 공부가 뭐 어렵다고 최저 등급을 못 맞추나. 공부 안 해 봤으니 모르지.'

'공고 나와봐라. 세상이 사람 취급하는 줄 아나. 안 겪어봤으니 모르지.'

'친구가 뭐 그렇게 좋다고 부모 말을 안 듣나. 친구가 밥 먹여주나.'

전두엽의 문이 닫히고 변연계의 직행열차를 타는 말들이다. 생존, 오로지 생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해 본 경험이 없는 학생들은 학교에서도 생존만을 생각해야 하기에 외롭다. 그런 말을 나눠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더 외로운가? 남의 일을 가지고 큰소리치는 사람이다. 누가 덜 외로운가? 내 고민을 조용하게 따뜻하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 중에서 누가 예기치 않은 인생의 폭풍을 견뎌낼 수 있을까? 오늘도 학교에는 정치의 편향을 지적하는 민원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크나큰 협박의 외침을 들으며 그들 내면의 외로움, 단절, 그 폭풍의 위력을 읽는다. 큰소리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폭풍을 말이다.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 연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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