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1일부터 80일 간, 과천 추사박물관에서는 의미 있는 전시가 열렸다. 추사사업 2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으로 마련된 '영남을 찾아간 추사'. 그간 산발적으로 추사 김정희의 몇 개 작품만을 소개해온 전시들은 있었지만, 영남 지역에 산재한 추사 작품을 한 데 모은 기획전시는 처음이기에 많은 미술품 연구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사실 이 전시가 기획된 데는 후범 전일주 박사(영남금석문탁본회장)의 노력이 상당했다. 그는 수년간 대구에 남은 조선시대 송덕비와 바위글씨·표지석, 충효비, 기념비·시비 등의 자료를 모아 '대구금석문총서'를 발간해온, 자타공인 대구 금석문 전문가다.
최근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아무도 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꼭 할 필요가 있었던 전시"라며 "대구에서도 꼭 '영남을 찾아간 추사' 전시가 이어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영남에 남은 추사의 흔적을 모은 첫 전시, 열게 된 계기는.
▶그간 연구해 온, 영남 지역에 산재한 추사의 작품을 한 데 모아 소개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추사박물관에 직접 전시를 제안했다. 박물관에서도 추사사업 2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으로 큰 전시장을 내줬는데, 그만큼 필요성과 중요성에 공감한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전시 준비에 3개월 가량의 시간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능인고 한문교사 퇴직 후 본격적으로 전시 준비에 매달렸다. 박물관 측에 내가 모든 작품을 섭외하고 해석하겠다고 했기에 더욱 바빴다. 대부분의 작품이 새롭게 접한 것들인 데다 특이한 형태의 서체도 많아 일일이 읽고 해석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전시인만큼, 개막 이후 많은 이들이 흥미롭게 감상평을 남겨 뿌듯했다. 특히 ▷추사의 금석문 연구와 영남(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 ▷경북 일원의 추사 금석문(진복규 포항고전연구소 소속) ▷대구 지역의 추사 금석문(전일주 영남금석문탁본회장) ▷추사 김정희의 서풍을 확장한 석재 서병오(이인숙 미술사 연구자)를 주제로 진행한 학술강연회도 반응이 좋았다.
- 영남과 추사의 관계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도 많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추사의 친아버지 김노경이 1816년부터 2년여 간 경상감영에서 경상도관찰사로 재임했던 시기, 아버지를 따라온 추사와 그의 형제들이 영남 지역에 많은 글을 남긴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 남아 있는 작품이 매우 드물어 자료적 가치가 높은 '추사 삼형제 서첩'이 대표적이다. 김정희·김명희·김상희 형제가 여러 서체로 시 등을 쓴 서첩이다.
대구에서는 화원 남평문씨 세거지에 걸린 '쾌활(快活)' 등의 편액이 잘 알려져있는데, 이외에도 추사는 당시 경주와 포항, 영천 등지를 답사하며 분옥정, 옥산서원, 은해사 편액 등을 상당수 남겼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영남 지역 가문과 불교와의 교류도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주 성산 이씨 동계고택(교리댁)의 '근도', '핵예' 편액이 추사의 글씨인데, 이는 성주 출신의 응와 이원조 선생이 제주 목사 재임 때, 제주로 귀양 간 추사와 인연을 맺으며 받았다고 한다. 여러모로 영남 지역의 인물들과 많은 인연을 맺고 글을 남겼다.
- 전시 작품 중 주요 작품이나 기억에 남는 작품은.
▶추사가 1818년 비단에 금니로 쓴, 가로 5m에 이르는 '해인사 대적광전 중건상량문'은 그의 초기 작품 중 대표작으로 꼽힌다. 1817년 합천 해인사 대화재로 대부분이 소실됐고, 경상도 관찰사로 재임 중이던 아버지 김노경이 중창에 1만냥을 희사하며 상량문을 추사에게 짓도록 명했다고 전해진다. 젊은 시절부터 가문을 통해 불교와의 지속적인 인연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다.
영천 은해사 '불광' 편액 역시 1847년 은해사 화재 이후 중창 불사를 마무리할 때, 혼허 지조스님의 부탁으로 추사가 쓴 글씨다. 졸박하면서도 강건한 힘이 들어있어, 절필작 '판전(板殿)'과 쌍벽을 이룰만하다고 평가된다.
- 앞으로의 연구 계획은.
▶지금까지 '대구금석문총서' 4권을 냈고, 마지막으로 팔공산의 바위 글씨 및 비석·표지석을 정리한 5권을 내려 한다. 대구는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금석문 연구 성과물이 많이 부족하다. 남아있는 것들이 더 잊혀지고 훼손되기 전에 위치와 유래를 정리하고, 그에 담긴 내용을 연구해야 할 이유다.
또한 기회가 된다면 대구에서도 '영남을 찾아간 추사' 전시가 열렸으면 한다. 한 번 했으니 다시 작품을 모으는 것이 어렵지 않다. 특히 대구 출신의 대표적인 서예가 석재 서병오 선생이 추사의 서풍 확장을 통해 조선 서예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평가 받는 만큼, 대구에서 전시가 열린다면 상당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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