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시대 제나라의 제후 영공에게는 융자라는 애첩이 있었다. 그녀는 사내의 치장을 즐겨하였고, 이를 본 제영공은 매우 기뻐하였다. 이에 질세라 궁중의 다른 여인들도 남장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곧 제나라의 많은 여인들이 남장을 한 채 거리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보다 못한 제영공은 남장을 법으로 금하였으나 아무리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여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이에 신하들에게 대책을 물으니, 안영이라는 신하가 제영공에게 고하기를 "남장 여인의 일은 오로지 주공의 잘못에서 기인하고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지금 남장 여인에 대해 안에서는 허용하시고, 밖에서는 금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비유하자면 소의 머리를 가게 문 앞에 내걸고 안에서는 말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면서 소의 머리가 양(실제로는 염소를 의미)의 머리로, 말고기는 양과 비슷한 식감이지만 저렴한 개고기로 바뀌어 우리가 알고 있는 '양두구육'이라는 사자성어가 된다.
지난 9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중대본 회의에서 국민과 의료계를 향해 "정부는 착실히 의료개혁을 추진해 나가는 가운데 국민과 의료계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겠다"라고 언급한 것은 그야말로 양두구육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의료개혁이라는 매우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양고기를 걸고 우리 모두를 유혹하고 있다. 고기를 처음 먹어보는 사람은 맛을 보아도 무슨 고기인지 모를 수 있지만, 우리는 실제로 판매하는 고기를 보기만 해도 양고기인지 개고기인지 바로 알 수 있다. 의료전문가로서 정부가 제시한 의료개혁의 길을 따라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보도된 차관의 말은 화합은커녕 오히려 국민과 의료계가 서로를 반목하게 만들었다. 과연 박민수 차관은 진정으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였는가? 현재 의료체계의 아픈 곳에 대한 정부의 진단 자체가 틀렸는데, 용하다는 약을 아무리 써봐야 옳게 들을 리 없다. 본인만 옳다는 고집을 부려 잘못된 치료에 시간만 흘려보내다가는 환자의 병세만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속담은 누구라도 잘 알 것이다. 환자의 상태가 더는 손 쓰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기 전에 조금이라도 빨리 잘못된 진단과 처방을 인정하고, 여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면밀하고 꼼꼼한 진단을 통해 새로운 처방을 내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국민의 건강을 좌지우지하는 중차대한 정책을 결정짓는 데 있어 이를 의료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꾸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진심을 호도하지 말라. 현재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의료개혁은 불투명한 과정을 통해 독단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의료개혁이 아닌 의료개악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당연히 원점재검토이다.
그렇다면 양두구육 고사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제영공은 안영의 충고를 받아들여 궁궐 내에서부터 남장을 금지하였으며, 오래지 않아 여인의 남장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바로 오늘이 잘못을 되돌리기에 가장 빠른 시간이다. 정부는 제영공과 같이 지난날의 과오를 인정하고 하루빨리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기를 강력하게 촉구한다.
이진우 대구시의사회 홍보이사(리앤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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