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재목의 철학이야기] 2030이 온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계엄 사태 후 정치에 무관심했던 2030이 아스팔트에 나서기 시작했다. 다수 권력의 횡포가 보여주는 줄탄핵과 사회 시스템의 붕괴라는 몰상식성에 경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멀쩡했던 나라가 내란과 무정부 상태라 할 만큼 혼란에 빠진 게 무엇 때문인지, 그들에겐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나라가 없으면 나의 미래도 없다" "이런 상황에 공부해서 뭣 하나"라며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채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계엄'이 청춘들을 '계몽'했다. 그래서 그들은 계엄령을 계몽령이라 말하기도 한단다. 방에서 카톡이나 하고 유튜브나 보며 웅크리고 있을 2030. 세상에 내뱉고 싶은 말이 있어 차디찬 거리로 뛰쳐나왔다. 공정과 상식이 살아 있는 사회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좋다. 어디로 향하든 그들의 양심과 양식에 맡겨 볼 일이다.

요즘 '카톡 검열'이란 말마저 나온다. 그럴 만한 다급한 이유가 있겠으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카톡 계엄령'이니 '폰틀막'이란 조롱이 쏟아진다. 2030의 코털을 건드리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검열, 감시인가. 이 나라가 당신들의 천국인가. 더구나 쏟아지는 입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2030은 법의 횡포, 그 내막을 묻기 시작했다.

"법은 타락했다.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정반대의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 탐욕을 억제하고 불공정을 벌해야 할 법이 탐욕과 불공정의 도구가 돼 버렸다." 19세기 프랑스의 자유주의 사상가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말과도 상통한다. 오래된 지혜는 세상을 다루는 데 조심스러워야 함을 지적한다. "천하는 신성한 기물이라 함부로 할 수 없다." "억지로 하려고 하면 실패하고, 억지로 거머쥐려 하면 잃어버리고 만다."

우리 청년들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불안하다. 취업도 안 되고, 결혼도 어렵다. 게다가 자신들을 품어줄 나라마저 흔들리니 '이건 아니다' 싶은 것이다. 청년들은 경제력이 부실하니 대개 부모에게 얹혀 산다. 잘 알려진 대로 노·고령화된 부모를 '마처세대'라 한다. 부모를 부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처'음 세대를 줄인 말이다. 2030을 바라보는 '마처세대'의 속내는 애처롭고 안타깝다. 그저 평범한 무탈한 일상적 풍경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어 한다.

"오직 한 가지 참된 마음은/ 자기가 눈감고 이미 없을 세상에/ 비치어질 햇빛과/ 피어나는 꽃송이와/ 개구리 우는 밤의 어스름달과/ 그리고 모든 사람의/ 살아 있을 모습을 그려보는 일이다." 김동리는 '자화상'에서 자신이 죽은 이후의 삶을 그려 보았다. 하지만 이런 자유로운 풍경은 공짜로 오지 않는다. 평범한 삶의 자유란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던 2030이 자각한 현실은 권력욕으로 가득 찬 환멸의 정치판이다. 이제 그들은 '불의'에도 눈 돌려 저항하고자 한다. 그래서 구호하며 노래하고 발언하는 것이다. 작가 유시민의 눈에는 "자기들끼리 마약 나눠 먹고 밤새 춤추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렇게 히죽댈 사안만은 아니다. 그 자신이 규정한 '뇌가 썩어가는 60대 이후'의 지성만이 지성이 아니다. 2030도 모두 당당한 그 나름의 생각이 있다.

가수 나훈아가 은퇴 투어 마지막 공연에서 "오른쪽도 잘한 거 없지만 왼쪽은 잘했냐?"는 정치인들 비판에 사람들은 공감했다. 일부 비판도 있었다. 그리고 영호남의 이념 성향을 두고, "한쪽은 벌겋고, 한쪽은 퍼렇고 미친 짓"이라는 소신 발언에도 모두 통쾌해했다. 갈라치기, 편 가르기에 염증이 나기 때문이다. 이런 솔직한 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는 지금 '계엄을 강행한 윤석열인가?' '범죄 혐의자 형사 피고인 이재명인가?'를 두고 처절하게 싸우고 있다. 아울러 누가 내란을 일으켰는지 죽기 살기로 따지고 있다. 그 밑바닥엔 한미일 노선인가, 북중러 노선인가라는 국가 체제를 둘러싼 '프레임 전쟁'이 진행 중이다.

더구나 여기엔 입법, 사법의 불공정 카르텔과 연루된 부정선거 의혹마저 불거져 있다. 이 문제는 우리 민주주의의 존망이 걸린 심각한 사안이다. 좋든 싫든 2030도 이런 예민한 현실 문제에 뛰어들었다. 온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는 저열한 떨거지 정치에 그들은 분노하나, 아직은 역부족이고 불감당이다.

2030이여, 바라건대 좌도 우도, 야당도 여당도 일단 다 잊어라. 거기 볼만한 건 별로 없다. 그 양쪽을 절충하여 어떤 하나를 택하겠다는 안이함도 버려라. 폐허 위에서 새 길을 찾는 각오로 냉정히 나섰으면 한다. "둘은 하나로 말미암아 생겨나니, 어떤 하나라는 선입견도 간직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 정치가 드러낸 극단의 민낯은 정말 가증스럽고 답이 없다. 그럴수록 극우, 극좌 이런 양극단을 벗어나, 자유롭게 사유해 갔으면 한다. 공정과 상식이 살아 있는 사회가 관건이다. 그런 바탕 위에 스스로 살아야 할 '나라'를 고민하고, 추구해야 할 '이념'을 생각하면 된다.

권력의 광기로 가득 찬 세상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우리는 정처 없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 답답한 시대다. 이때, 찬 바람 부는 아스팔트 위로 불공정과 몰상식에 저항하는 2030이 온다. 대견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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