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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풍-이용호] 정치권, 정치력(政治力)을 발휘하라

이용호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용호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용호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2·3 계엄' 사태가 일어난 지 44일째이다. 순조롭게 해결될 것처럼 보였던 계엄 사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한남동 거리, 광화문 광장, 국회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 국가는 쪼개지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경호처와 공수처 간 공권력 충돌은 국가기관 스스로가 국가 질서를 붕괴(崩壞)시키고 있는 꼴이다. 무정부 상태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극한의 대치(對峙) 정국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은 분명하다. 대통령은 '힘에 기초한 통치'를 선포함으로써 이 사태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그 결과 직무가 정지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안타깝지만 12·3 계엄 사태를 없었던 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로 인해 파생된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적법 절차에 따라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를 교훈 삼아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동시에 대한민국을 일등 국가로 나아가도록 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그나마 차선의 묘책이다. 정치권을 비롯한 공직사회와 국민 개개인 등 대한민국의 모든 주체가 일등 국가라는 목표하에 하나로 뭉쳐야 한다. 적어도 지금은 개인과 당파(黨派)의 이익이 국가의 안정이라는 명분보다 우선할 수 없는 때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 당장 정치권은 정치력(政治力)을 발휘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보호되고,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에 근심을 덜 수 있고, 나아가 국민 개개인이 자신만의 꿈을 꿀 수 있도록 이끄는 힘, 그것이 바로 정치력이다.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발휘되는 정치력은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권위를 동시에 부여받을 것이다.

만약 여당이 갈팡질팡하면서 권력을 잃기 싫어 버티려고만 한다면, 야당이 대권 조급증에 빠져 눈앞에 놓인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지금의 사태를 활용한다면, 그들은 역사와 국가의 이름으로 반드시 재평가될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라는 교훈이 새삼스레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국가의 안정과 미래를 위해, 죽을 각오로 정치권이 정치력을 발휘할 때이다.

헌법재판소도 스스로 권위를 쌓도록 노력해야 한다. 대통령 직무 정지라는 불안정과 혼란을 신속히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탄핵 심판에서 '내란죄 부분'을 배제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만약 그렇게 하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정당성을 잃을 개연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 등 양측의 이의 제기를 충분히 살피면서 탄핵 심판 절차가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국민도 거시적 관점에서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안정과 미래를 위해 민주적 절차에 따라 평화적으로 정치 일정이 진행될 수 있도록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 한 국가의 정치는 그 국민의 수준을 나타낸다고 했다. 12·3 계엄 사태를 계기로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함을 세계에 알릴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엄동설한 매서운 한파 속에서, 시장(市場)의 백발의 노점 상인은 오늘도 얼음장 같은 찬물에서 맨손으로 시래기를 건져 내 팔고 있다. 그 누가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이 할머니의 손을 따뜻하게 어루만질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정치권이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나서야 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이용호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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