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소연 기자의 한페이지] 기자로서 1막이 끝나고 추리소설가로서 인생 2막 연 김세화 작가, "죽기 전에 소설 쓰고 싶다는 바람, 은퇴 후 이뤄"

30여 년간 대구MBC서 기자로 일해…'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 등 다수 취재
은퇴 전부터 소설가 길 준비 시작, 6년 간 장편 세 편·단편 여덟 편 발표
2019년 등단 후 2024 한국추리문학상서 《타오》로 대상…"전 부문 수상은 유일"
대구 역사를 모티프로 한 추리소설 집필 중…"죽기 전까지 소설 쓰고 싶어"

지난 3일 대구 수성구에서 퇴직을 2년 앞둔 2019년 추리소설 〈붉은 벽〉으로
지난 3일 대구 수성구에서 퇴직을 2년 앞둔 2019년 추리소설 〈붉은 벽〉으로 '계간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세화(63) 작가를 만났다. 한소연 기자

삶의 방향을 바꾸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한국의 중장년층은 정년을 앞둔 때에 이 용기의 칼날을 휘둘러야 하는 것이 중대한 숙제이기도 하다.

30여 년간 대구MBC 기자로서 꾸려온 1막이 내리고 추리 소설가로서 인생 두 번째 페이지를 당차게 연 사람이 있다. 퇴직을 2년 앞둔 2019년 추리소설 〈붉은 벽〉으로 '계간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세화(63) 작가다.

6년 동안 발표한 그의 추리 소설들에는 개구리소년 사건, 대현동 이슬람사원 건축 문제 등 대구의 이야기가 모티프로 담겨있다. 지난 3일 대구 수성구 김 작가의 집필 공간인 서재에서 그를 만났다.

-대구MBC에 재직하며 방송기자로 일했다고 들었다. 소설가로 전향하기 전 인생 1막 이야기가 궁금하다.

▶경북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석사까지 수료한 후 독일로 건너가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그런데 유학비가 마땅치 않았다. 취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다. 일반적인 회사는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대구MBC 채용 공고가 떴다. 시험 항목이 국어, 상식, 영어, 논술시험이었는데 철학 석사까지 공부했으니 국어, 영어, 논술은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겠더라. 나에게 유리한 채용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언론고시'라고 불릴 정도로 언론사 입사 경쟁률이 셌다. 나는 두 달 공부하고 합격했다.

-이후 정치경제부장, 사회부장, 보도국장까지 거쳤다. 기억에 남는 취재도 있었을 것 같은데.

▶최초 보도했던 1995년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당시 사회부 사건팀 팀장으로 있었을 때였는데 공교롭게 그날 당직을 서게 되면서 사고 소식을 맨 처음으로 접했다. MBC 본사에서 특종상까지 받았다.

개구리 소년 사건도 생각난다. 당시 달서 경찰서를 출입하는 사회부 기자였다. 실종 신고가 접수된 때가 1991년 4월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실종 한 달, 두 달, 1년이 지나도 찾지를 못해서 연속적으로 보도를 했었다. 2002년 와룡산에서 실종자 유골이 발견됐을 때는 보도제작부에 있었는데 2주 연속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대구에서 일어난 큰 사건이니만큼 당시 기자였던 나에게도 인상적인 역사다.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을 모티프로 한 추리소설도 쓰셨다고 들었다. 기자 생활을 하며 접했던 사건사고들이 추리소설을 써내는 데 영향을 미쳤겠다.

▶2021년 장편 《기억의 저편》이 개구리 소년을 모티프로 쓴 추리 소설이다. 인간의 기억은 편집된다는 것, 사람은 저마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꼬집는 내용이다.

내 소설에는 기자나 경찰들이 많이 등장한다. 《기억의 저편》 속에서 사건을 풀어가는 주인공 직업 역시 방송 기자다. 사회부에 있으면서 시체도 많이 봤다. 사건 자체에 대해 깊게 파고들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경찰의 업무나 전반적인 생활까지도 속속 배우게 된다. 그런 경험들이 있으니 더 사실적으로 기술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추리 소설가가 된 인생 2막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퇴직을 5~6년 앞둔 시점에 '퇴직한 이후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실은 기자는 퇴직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전문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업으로 뛰어든 기자들은 사업을 해본 경험이 없으니 다 망하더라. 정치 쪽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을 다 따져봐도 나와는 적성이 안 맞을뿐더러 마음도 안 생겼다.

그러다 죽기 전에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의욕이 일었다. 학창 시절부터 소설책을 즐겨 읽는 편이었다. 소설가를 동경했다. 철학과에 진학한 이유도 소설을 잘 쓰려면 깊이 있는 사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다만 기자 생활을 하면서 문학적인 글쓰기와 담을 쌓고 지낸 터라 정통적인 문학은 힘들 것 같았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기도 했고 전공과 직업 덕에 논리적인 추론 등에는 자신 있었다. 소설을 안 쓰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아서 추리 소설을 써보기로 한 거다.

-소설을 쓰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나는 방송 리포트를 하는 방송 기자였다. 같은 기자라도 글을 쓰는 신문 기자와 정말 다르다. 아무리 긴 글을 써도 그래봤자 1분 30초짜리다. 30여 년 동안 긴 호흡이 필수인 소설 문장과 아주 멀어진 상태였다는 거다.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퇴직 3년 전쯤부터 소설 창작 학교 같은 데를 다니면서 소설 쓰는 법을 배우고 익혔다.

지난 3일 대구 수성구에서 퇴직을 2년 앞둔 2019년 추리소설 〈붉은 벽〉으로
지난 3일 대구 수성구에서 퇴직을 2년 앞둔 2019년 추리소설 〈붉은 벽〉으로 '계간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세화(63) 작가를 만났다. 한소연 기자

-2019년 9월 단편 <붉은 벽>이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그동안 다양한 장단편을 내셨다.

▶장편 세 편, 단편 여덟 편 정도 냈다. 신인상을 시작으로 2021년에는 《기억의 저편》으로 한국추리문학상 신예상, 2022년에는 <그날, 무대 위에서>로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지난해인 2024년에는 《타오》로 한국추리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전 부문에서 상을 받은 것은 유일하다고 들었다.

▶추리 문학계 흐름과 내가 지향하는 지점이 잘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추리 소설도 시류가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셜록이나 아가사 크리스티 같은 전형적인 추리 소설은 한편으론 기득권 사회를 수호하는 장치들이 많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항상 귀족 가문이나 그들의 파티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탐정'이라는 엘리트적인 인물을 앞에 세워 실마리를 찾고 풀어내지 않나.

요즘은 디텍티브 스토리라는 것이 추리 소설의 주요한 흐름이다. 전형적인 추리 소설 장치를 어느 정도 따르면서도 현실적인 소재와 배경들을 설정하는 거다. 내 소설은 본격 추리 소설이라기보다 추리의 형식을 띤 사회적 소설이다. 이러한 흐름이 좋은 평가를 얻은 데 덕을 봤다.

-문학계 흐름이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대상까지 수상하셨는데 겸손이 지나치신 거 아닌가. 대상을 받으신 《타오》는 종교 갈등에 대한 이야기다.

▶다문화 유입에 따른 문화적, 종교적 갈등과 그들의 인권 침해는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다. 이 문제는 양극화, 노동, 인구 등 경제 문제와도 밀접하다. 무엇을 《타오》의 최초 모티프로 삼을 것인가, 고민하다가 한국 사회에 유입된 다양한 요소 가운데 한 사람의 유학생을 선택했다.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종교 갈등이고 이 갈등 내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소설은 지역과 다문화 간 갈등을 고발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그 주변 사람들, 예컨대 그 불평등 구조를 인식하고 미안해하고 비판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하는 이웃들에게서 평등 의식, 약자의 희망을 끄집어내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

-대구 북구 대현동 일대에서 일어난 이슬람 사원 건축 문제도 연상된다. 이러한 모티프를 차용한 이유가 있나.

▶30여 년 동안 기자로 살면서 절감한 것은 어떠한 피해는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 약자는 약자가 될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강한 자들의 욕망이 뭉쳐 약자를 더 약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소설 《타오》 속 피해자의 죽음을 추리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추리에 가깝다.

범인을 잡는 과정이 곧 피해자가 왜 약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약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지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이 내 소설의 특징이다.

-집필 중인 소설도 궁금하다.

▶소재가 머릿속에 아주 많다. 당장 써야 할 것이 장편 두 편이다. 지금 집필 중인 것은 큰 틀에서는 역사 추리 소설을 쓰고 있다. 근대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 현재와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 중이다. 2026년 발표를 목표로 두고 있다.

-작가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죽기 전까지 장편 추리소설 열 권 이상, 단편 추리 소설집 두 권 이상을 발표하는 것이 목표다. 살면서 문제라고 느꼈던 현실적 문제를 소설의 형식을 빌려 최대한 사실적으로 기록해두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특히 대구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그냥 읽고 넘기는 게 아니라 모티프로 활용하며 소설로서 기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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