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추위에도 활짝 피어나는 동백은 겨울과 봄을 이어주는 꽃으로 불린다. 이맘때 거제를 비롯한 남해안은 한창 '동백꽃 필 무렵'이다. 특히 거제 장승포항 남쪽의 지심도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동백 군락지 가운데 한 곳이다 거제의 섬과 해안 곳곳에서 동백이 피어나지만 지심도가 유일하게 동백섬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동백섬' 지심도로 떠나보자.
◆동백꽃 융단 깔린 섬
지심도는 거제도 본섬의 동쪽 끝 장승포항 앞바다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전체 면적은 33만8609㎡로 임야가 약 67%이고 밭이 약 26%이며 가장 높은 곳이 97m, 섬의 둘레는 약 3,5㎞의 작은 섬이다. 거제시 장승포항과 지세포항에서 왕복하는 도선을 타고 뱃길로 15분 남짓 가다 보면 지심도 선착장에 도착한다. 배편은 동백섬호와 제2동백섬호, 지세1호, 뉴오리온호가 운항한다.
지심도 선착장에 도착하면 다소 가파른 언덕길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이곳이 섬 안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로다. 너무 작은 섬이다 보니 길도 작고 차도 한 대 없다. 지심도에는 약 3.1㎞의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섬 한 바퀴를 도는데는 약 2시간 30분 걸린다. 지심도 산책길은 사방으로 푸른 바다가 배경을 이루고 해안의 기암괴석이 병풍을 쳐 가슴이 탁 트이게 한다. 높지 않은 산책로는 아기자기한 코스를 거쳐 섬을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다.
먼저 지그재그형 길을 지나면 거미줄처럼 연결된 황톳길 산책로를 만나게 된다. 연인의 길로 불리는 길이다. 이 산책길은 걷는 곳곳이 동백나무 터널로 이루어져 있어 과연 연인의 길이라 할 만하다.푸른 동백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빛나는 남해의 쪽빛 바다는 좀 전 떠나왔던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을 잊게 한다.
경사가 완만한 포장도로를 3분여 오르면 국방과학연구소 사거리에 다다른다. 여기서 정면으로 폭신한 숲길에 접어들면 태평양 전쟁 때 일본군에 의해 만들어진 군사 시설인 포진지와 탄약고를 만날 수 있다. 탄약고 안에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포대 설치 상황과 지심도 주민들의 생활 사진이 전시돼 있다. 털머위가 지천인 숲길을 다시 거슬러 나와 동백터널을 지나면 넓은 활주로가 시야를 열어준다.
활주로를 지나면 지심도 둘레길의 최고 백미인 동백터널을 지난다. 하늘도 바다도 보이지 않는 동백나무 숲에는 햇빛 한 점 들지 않는다. 좌측에 대숲을 끼고 부드러운 흙길을 지나면 일본군 서치라이트 보관소를 지나고 친환경 야자수 매트길이 이어진다.
발전소 아래 길로 접어들어 좁은 산길을 따라가다 보면 마끝이라 불리는 곳에 도착한다. 마끝은 마파람이 부는 끝자락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마끝에 서면 기암절벽과 탁 트인 경치가 큰 감동을 준다. 바로 보이는 거제 미조라와 서이말 등대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아픈 역사 숨어 있는 섬
지심도는 남녘 바다 한가운데 한가로이 떠 있는 작은 섬이지만 속살을 파헤쳐 보면 아픈 역사가 숨어 있는 섬이다.
1936년 일제는 한반도와 일본 대마도 사이 길목에 자리 잡은 지심도를 일본 해군의 전진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주민들을 내쫓았다. 지심도에 지하 벙커와 탄약고·포대·서치라이트 등을 설치하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 1개 중대 100여명을 배치했다. 지심도는 광복 후에도 여전히 요새로 활용되다가 2017년이 되어서야 소유권이 거제시로 반환됐다.
1936년 일본이 군사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섬 주민을 강제 이주시킨 지 81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아직도 지심도에는 당시 지은 5곳의 포진지와 1곳의 탄약고가 남아있다. 포진지는 모두 원형으로 동일한 형태를 갖고 있다. 직경 18m의 방호벽을 만들고 그 안에 직경 4m의 포대를 만들었다. 방호벽의 높이는 1.5m 정도로 어른 가슴 정도다.
포진지 남쪽과 북쪽으로는 계단이 이어져 있다. 지하 벙커와 해안 관측소 등 군사시설 외에도 헌병대 분주소, 발전소 소장 사택 등이 적산 가옥으로 남아있다. 망루 쪽에는 일제강점기 욱일기를 달았다는 국기게양대가 있는데, 새로 철제 게양대를 세워서 2015년 8월 15일부터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아직도 남아있는 일제의 군사시설들은 지심도의 슬픈 역사와 이 땅의 아픔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동백꽃 만발한 섬
찬바람이 매서운 이맘때 지심도는 동백 천지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12월 초부터 피기 시작해 봄기운이 무르익는 4월 하순까지 이어진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과 같다고 해서 지심도로 불리지만,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섬에 동백나무 숲이 많다고 '동백섬'이라고 불렀다. 지심도는 숲의 60%를 동백나무가 차지하고 있다. 굵기가 팔뚝만 한 것부터 한 아름이 넘는 것까지 다양한 크기의 동백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특히 지심도 북쪽에는 어른 두 사람이 팔을 벌려야 겨우 껴안을 수 있는 100여년이 훌쩍 넘는 동백나무가 많다. 전국에서 몇 안된다는 흰 동백꽃도 이곳에서 핀다. 흰 동백꽃은 날씨가 맞고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행운의 꽃이다.
동백나무는 한낮에도 세상이 컴컴할 정도로 숲을 이루는데, 동백꽃 피는 이맘 때면 무수히 떨어진 동백꽃으로 마치 레드카펫을 걷는 듯하다.
지심도는 동백꽃만 보고 훌쩍 더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섬이다. 지심도의 자연환경은 생태적으로 우수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심도는 멀리서 보면 섬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숲으로 보일 만큼 각종 나무들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을 정도로 원시림이 잘 보존된 곳이다.
섬 전역에 걸쳐 후박나무, 소나무, 동백나무, 팔손이, 풍란 등 지심도에서 자라는 수목만 40여 종에 이른다. 개가시나무를 비롯한 희귀 식물과 팔색조, 솔개, 흑비둘기 등 멸종위기종들이 다수 서식한다. 동백 숲길을 걷다 보면 동박새나 직박구리의 노랫소리도 들을 수 있다.
◆지심도 관광명소로 부활
일제에 의해 쫓겨났던 주민들은 해방 이후 지심도로 다시 돌아와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지심도에는 해녀 20여명이 미역, 홍합, 전복 등을 건져 올리며 살았다고 한다. 섬에는 한 때 초등학교 분교가 있었으며 1980년대에는 재학생이 30여명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섬에서의 삶이란 척박한 것이어서 해녀와 주민들은 하나둘씩 섬을 떠났다.
한적하던 지심도가 다시 분주해진 것은 관광 훈풍을 타고서다. 지심도가 관광객들에게 특히 알려진 것은 2009년 5월 KBS 프로그램 '1박2일'에 소개되면서부터다.전국 각지에서 오염되지 않은 섬을 찾는 발길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갯바위 낚시에 좋은 장소로 알려지면서 관광객은 물론 강태공까지 많이 찾아오는 관광지로 변했다.
현재 지심도는 한 해 약 10만명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됐다. 주민들은 하나 둘 집을 고쳐 민박집을 하거나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해 현재는 15가구가 민박을 하고 있다. 고기를 잡거나 섬의 비탈에서 밭을 일궈 농사를 짓는 일은 부업일 뿐이다.민박은 인터넷으로도 예약이 가능하다.
거제시는 지심도를 관광명소로 만들 계획이다.사업비 183억원을 들여 산마루 테마정원과 동백숲 들놀이터, 지심생태모험장, 웰컴센터 등 관광객을 위한 공간을 편의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산마루 테마정원은 아직도 남아있는 경비행장 활주로를 활용해 야생화단지를 조성하고 포토존, 그늘막 쉼터 등을 만들어 지심도만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계획이다. 지심분교 자리에는 캠핑의자와 캠핑테이블을 조성해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동백숲 들놀이터를 조성하고, 국방과학연구소를 리모델링해 자연생태 체험관과 숙소를 꾸미고 주변 부지에는 동백 체험 미로숲 등을 조성해 지심도의 자연과 역사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한국지방신문협회 경남신문 김성호 기자 ks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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