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윤 대통령까지 '부정선거 의혹' 제기, 그냥 넘길 일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체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8천800여 자 분량의 윤 대통령 육필(肉筆) 대국민 담화문이 SNS에 올라왔다. 담화문은 최근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소회(所懷)와 국정 성과, 안보 위기, 경제 상황 등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윤 대통령이 '부정선거' 문제를 강하게 지적했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15일까지 5차례 대국민 담화와 한 차례 편지를 공개했다. '부정선거'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달 전 담화 때는 선거 관리가 엉터리라며 선관위에 대한 수사 필요를 강조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담화에서는 '부정선거'를 9차례 언급하며 강하게 지적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너무나 많다'며 '선관위의 엉터리 시스템도 다 드러났다'고 했다. '주권 도둑질 행위'라는 표현도 썼다. '이 상황이 바로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라고도 했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非常戒嚴)을 선포한 이유 중 하나가 '부정선거 의혹을 밝히기 위함'이라는 의미다.

지난해 12월 말 MBC가 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성인 남녀 1003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휴대전화 가상번호 100% 무작위 추출·전화면접·응답률 16.2%)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층 65%가 '지난 총선에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층은 11%가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응답했다. 비슷한 시기 천지일보가 코리아정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전국 1000명 대상.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포인트·무선전화 RDD 100%·전화ARS·응답률 2.7%)에서도 국민의힘 지지층 67.1%가 '부정선거가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상당수 국민이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믿고 있는 상황에서, 전직 국무총리(황교안)와 전직 국회의원(민경욱·김두관)에 이어 현직 대통령까지 '부정선거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 모두를 '부정선거 맹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라고만 치부(置簿)할 일이 아니다.

국가정보원과 선관위,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지난해 7~9월 실시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개표 관리 시스템 보안점검 결과, 외부 세력이 얼마든지 침투할 수 있는 상태임이 드러났다. 가상 해커들이 선관위 전산망 침투를 시도한 결과 투표 시스템, 개표 시스템, 선관위 내부망 등이 해킹에 매우 취약(脆弱)했다. '사전 투표한 인원'을 '투표하지 않은 사람'으로 표시하거나 '사전 투표하지 않은 인원'을 '투표한 사람'으로 표시할 수 있고, 존재하지 않는 유권자도 정상적인 유권자로 등록할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전 투표 용지에 날인(捺印)하는 청인(廳印·선관위 도장), 사인(私印·투표관리관 도장) 파일 역시 훔칠 수 있었다. 주요 시스템 비밀번호는 너무나 단순했다.

국민들 사이에서 부정선거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선관위 시스템의 허술함이 드러난 만큼 감사원, 국정원, 선관위 등은 이 의혹을 신속하고 명백하게 해소(解消)해야 한다. 단순히 "부정선거는 없었다", 개표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 "일부 개표 과정의 오류 또는 우연"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지난해 국정원 등이 점검한 대상은 선관위가 보유한 전체 장비 6천400여 대 가운데 약 5%인 317대에 불과했다. 선관위가 "선관위는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감찰은 부당하다"며 "정치적으로 예민할 수 있는 자료 유출 위험이 높다"고 전반적인 감찰을 거부하는 것은 국민 의혹과 불신만 키울 뿐이다. 국가 기관과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점검 조직이 선관위 전체 장비를 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국민주권(國民主權)에 관한 문제다.

국민들 사이에서 '선거에 부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작금(昨今)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정치적 혼란과 갈등에는 '선거 불신'이 깔려 있다. 이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와 법치는 불가능하다. 선거 관리 부실 정황(情況)이 현저함에도 수사해서 밝히지 않는다면 정상 국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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