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잘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는 지금 탄핵 재판을 받고 있으며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다. 물론 법 형식으로만 보면 윤 대통령의 유죄 여부는 수사와 재판을 받아 봐야 할 일이나 현직 대통령의 구속이니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이 근거 없는 거라 하기는 어렵다 하겠다.
그의 잘못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이 헌법과 법률을 어겼다는 것이다. 비상계엄을 내려야 할 상황이었는가? 비상계엄을 하려면 필요한 절차가 있는데 그걸 제대로 밟았는가? 모두 문제가 있다는 혐의다. 그동안 대통령에 대한 수사권이 공수처에 있는가? 체포 영장 관할 법원이 적절한가? 구속 사유가 되는가? 절차마다 문제를 제기하고 호소했으나 법원은 그것을 모두 기각했다. 그가 내란죄를 범했는가는 형사 법정에서 다툴 것이고, 헌법이 정한 탄핵 사유가 있는가 판단은 헌법재판소가 내릴 것이다.
지금부터는 '사법부의 시간'이다. 윤 대통령 구속 결정에 그의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하여 기물을 부수고 심지어 그 결정을 한 판사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는 섬뜩한 일이 벌어졌다는데, 이는 민주공화국의 헌정 질서를 뿌리째 흔드는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상황에 대한 각자의 판단이 다를 수 있지만 다들 법정에서 진행되는 상황을 지켜볼 일이다.
곧 국민의 관심사는 윤 대통령 '개인'으로부터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라는 '구조'의 문제로 옮겨 갈 것이다. 대통령이 한둘도 아니고 줄을 이어 감옥에 가고, 탄핵을 당하는 일이 왜 되풀이해서 생기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윤 대통령의 실패도 그의 성정이나 가치관과 같은 개인적 요인과 함께 지금의 그를 낳은 구조적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쪽으로 눈길이 갈 것으로 보인다.
거듭되는 대통령의 실패는 우리 헌정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체제 통합과 유지를 이루며 미래를 준비하는 최고의 규범인 헌법이 낡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윤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은 그것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있다. 하여, 헌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다시 공론의 장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 모두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국민의힘 쪽은 윤 대통령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민주당 쪽은 윤 대통령을 분명히 단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마뜩하지 않게 받아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잘못은 두 눈으로 본 일이고 이런 일이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도 부인할 수 없으니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의 볼멘소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헌법 개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현행 헌정 체제는 이른바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1987년 6월 항쟁의 산물이다. 군부독재 타도와 대통령 직선제를 외친 국민의 소망을 담은 시스템이다. 이 체제로 우리는 한 세대 이상의 세월을 보냈다. 가장 오래 유지되고 있는 체제이다. 그런데 이 질서가 낡아서 이곳저곳에 비가 새고 바람이 들이치고 있다.
지붕이나 조금 고치고 말 정도가 아니라 서까래, 용마루, 추녀, 처마, 대청, 주춧돌, 대들보까지 새로 놓아야 할 일이다. 새로운 헌법에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가치도 담아야 한다. 우리에게 이미 다가온 미래를 준비할 규범도 넣어야 한다. 대전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기후 위기, 디지털 전환 등 우리가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할 이정표를 실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체제를 이끌어 갈 권력 구조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편저편을 넘어 한목소리로 나오는 것은 거듭되는 불행의 씨앗이라 할 초집중적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자는 대목이다.
어떤 내용을 담을지는 공론이 필요한 일이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 자신의 앞길을 위해서도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민의힘은 죽음의 계곡을 건너기 위해서, 민주당은 더 책임 있는 정치세력으로 평가받기 위해서 헌법 개정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다루어야 한다. 정치공학적 카드가 아니라 진심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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