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누군가의 손길 속에서 소중히 자라던 식물들이 있다. 정원의 화려함을 위해, 집안을 환하게 밝히기 위해 선택된 그들은 언젠가부터 잊히고, 버려졌다. 처음엔 원예용으로 들여왔으나, 이제는 잡초라 불리며 야생으로 내몰린 식물들. 그리고 한때는 따뜻한 화분 속에서 자랐으나, 곁을 떠나 유기된 채 자연 속에서 새 삶을 이어가는 식물들."(작가노트 중)
최근희 작가는 이처럼 잊히고 버려진 식물들에 주목한다. 그들이 가진 기억을 들여다보고 그 안의 상처와 외로움, 그리고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모습까지 담아낸다.
작가는 "버려진 그들의 모습에는 어딘가 쓸쓸한 흔적이 남아 있다. 길가에서, 폐허 속에서, 아무도 돌보지 않는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모습은 당당해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외로움이 서려 있다"며 "한때는 사랑 받고 가꿔졌으나, 지금의 찢어진 꽃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자 외로움이 남긴 상흔"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더 이상 손길을 기다리지 않는다. 스스로 생존을 선택하며 새로운 땅에 적응하고, 그 속에서 홀로 꽃을 피운다. 그들의 생존은 강인함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단지 순응이라기보다 비울 곳 없는 절박함이다"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작가는 더 이상 이름으로 기억되지 않는 존재, 즉 잡초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공간에서 생명력을 이어가며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식물들의 모습을 통해 한때 소중했던 것들과 지나간 관계를 반추하며, 잊힌 것들에 대한 회상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포착한 식물들의 모습은 오는 24일부터 남구 이천동 아트스페이스 루모스에서 열리는 개인전 '꽃의 이름을 잊다(Forgetting the names of flowers)'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사진콘텐츠연구소와 아트스페이스루모스에서 주최·주관하는 첫 번째 지역 작가 시리즈다.
아트스페이스 루모스 관계자는 "작가는 인간과 자연, 그리고 관계의 유한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아내고자 했다"며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기억의 소멸과 생명력의 지속성, 그리고 잊히면서도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해 새롭게 성찰하길 바란다"고 했다.
전시는 2월 26일까지. 매주 일, 월요일과 설 연휴는 휴관한다. 053-766-3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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