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했다. 탄핵소추된 대통령이 헌재 심판정에 직접 출석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법무부의 호송용 승합차를 타고 헌재에 도착한 윤 대통령은 수의 대신 빨간색 넥타이를 포함한 정장 차림이었다. 윤 대통령과 대리인단은 비상계엄의 정당성과 내란죄 불성립에 대한 주장을 이어갔다.
◆尹 "자유민주주의 신념으로 살아"
윤 대통령은 이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직접 출석, 비상계엄과 탄핵소추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이날 오후 1시 58분쯤 심판정에 입장한 윤 대통령은 방청석 기준 심판정 우측에 앉아 오후 2시쯤 입장한 재판관들을 대면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피청구인 본인 나오셨습니까"라고 묻자 윤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약간 숙인 후 착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후 '양해해주시면'이라며 문 권한대행에게 발언기회를 요청하고 "제가 오늘 처음 출석해서 간단하게만 말씀드리겠다"며 앉은 상태에서 재판관들을 바라보며 발언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여러 헌법 소송으로 업무가 과중한 데 제 탄핵 사건으로 고생을 하시게 돼서 재판관들께 송구스러운 마음"이라면서 "저는 철들고 난 이후로 지금까지, 특히 공직 생활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신념 하나를 확고히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도 헌법 수호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인 만큼 우리 재판관들께서 여러모로 잘 살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필요한 상황이 되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말씀드리도록 하겠다"며 발언을 마쳤다. 문 권한대행은 "말씀 잘 들었다"며 다음 절차로 넘어갔다.
◆"비상입법기구 설치 쪽지, 국회의원 끌어내란 지시 없었다"
이어진 심리에서 윤 대통령은 계엄 당시 국회를 대신할 비상입법기구 설치나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했다는 얘기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국가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라는 쪽지를 당시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줬는지 묻는 재판관 질문에 "준 적이 없다"며 "나중에 계엄을 해제한 후에 한참 있다가 언론을 통해 메모가 나왔다는 걸 봤다"고 말했다. 이어 "이걸(쪽지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밖에 없는데, 김 전 장관이 그때 구속돼 있어서 확인을 못했다"고 했다.
또 문 권한대행이 '(계엄) 해제 의결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적이 있냐'고 묻자, 윤 대통령은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尹 대리인단, 국회 탄핵소추단도 공방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대리인단과 국회의 탄핵소추단도 공방을 이어갔다.
윤 대통령 대리인단은 이날 변론에 앞서 보도자료를 통해 윤 대통령의 입장을 밝혔다. 비상계엄 선포 배경으로는 야당의 잇단 탄핵소추안 발의와 선거관리 시스템 부실 관리 등을 언급했다. 아울러 12·3 비상계엄 당시 선포한 포고령은 형식적인 것으로 실제 집행할 의사가 없었고 정치인 체포·사살 지시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 대리인단 소속 차기환 변호사는 "포고령 1호는 외형의 형식을 갖추기 위해 김용현 장관이 초안을 잡아 피청구인(윤 대통령)이 검토·수정한 것"이라며 "굳이 말하자면 포고령 1호는 국회의 불법적인 행동이 있으면 금지하고자 하는 것이지, 결코 국회의 해산을 명하거나 정상적인 국회 활동을 금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 국회에 군을 투입한 이유에 관해서는 "망국적 행태를 국민에게 알리고 시민이 몰리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고, '정치인·법조인 체포 지시 의혹'에 대해 "피청구인은 계엄 선포 당시 결코 법조인을 체포·구금하라고 지시한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국회 측 탄핵소추단은 윤 대통령이야 말로 사법시스템을 부정하는 등 법치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측 이광범 변호사는 "피청구인은 자신이 대통령인 나라의 사법 체계를 부인하고 요새화된 관저에 피신해 있다가 체포·구속되는 순간에도 영상과 자필 메시지로 지지자를 부추겼다"며 서부지법 난동 사태에 대해선 "피청구인이 반성하고 물러났더라면 목격하지 않아도 됐을 장면들"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대리인단 공동대표인 김이수 변호사도 "신속한 탄핵심판을 통한 대통령의 파면이 무너져가는 법치주의 회복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했다.
◆1시간 43분만에 종료, 이상민 전 장관 등 증인 채택
양측의 공방이 이어진 3차 변론은 1시간 43분만인 오후 3시 43분 종료됐으며,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대통령실 박춘섭 경제수석이 윤 대통령 탄핵심판 증인으로 추가 채택됐다. 헌재는 박 실장은 2월 6일 오후 3시 30분, 이 전 장관은 2월 11일 오전 10시 30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기로 했다.
오는 23일에는 예정대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진다. 같은 날 나올 예정이었던 조지호 경찰청장은 건강 문제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해 재소환을 보류하기로 했다.
이진우 육군 수도방위사령관과 여인형 국군 방첩사령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은 2월 4일,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관과 김현태 특전사 707특수임무단장은 2월 6일 각각 증인신문이 예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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