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음악 한 소절, 그림 한 점, 책 한 권이 여행자를 이끌 때가 있다. 내겐 소설가 최인호의 '잃어버린 왕국(1985년, 전 5권)'이 그러했다. 소설은 삼국시대와 구한말이 교차되며 신라와 백제 그리고 당(唐)과 왜(倭)가 뒤엉킨 각축과, 덴무(天武)와 덴지(天智) 형제 왕 사이에서 고뇌하는 여류 가인(歌人) 누카타노 오키미(額田王)의 운명이 내 젊은 영혼에 불을 당겼던 것이다.
검은 활자들은 경계를 허물고 부여의 백강(白江, 금강 하류)에서 의자왕의 패잔병처럼 걸어 나와 나라(奈良) 아마카시 언덕의 풀꽃들로 흔들리다가 폭풍처럼 만주 벌판으로 내달렸다. 그렇게 상상으로 펼쳐낸 공간은 웅장하여서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아득하게 그곳엘 꼭 가봐야겠단 열망이 씨앗으로 그때 마음에 심겼다.
◆아스카(飛鳥), 호류지(法隆寺)와 만요슈(萬葉集)
그 여행이 성사된 것은 해외여행이 자율화되고도 이십여 년이나 흐른 뒤였다. 새 세기 들어 일로든 여행으로든 외국을 자주 다닐 수 있게 된 필자는 틈만 나면 간사이(関西)로 떠났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이 주일, 혼자 그 곳들을 배회했다.
투박한 고훈시대(일본에서 3세기 말부터 8세기 초까지의 시기)를 벗어난 아스카시대와 나라시대의 엷은 장막들은 훈향(熏香)을 쐰 비단 옷자락처럼 투명했고, 왜(倭)의 패권을 다투던 백제계 도래인들과 현재까지 일본 최고 절세미인으로 알려진 누카타노가 그 역사의 장막 한가운데로 드나들었다.
아스카(飛鳥)는 고즈넉했다. 7세기, 신도(神道, 민족신앙)가 만연한 왜(倭)에 한반도에서 불교가 전래되었다. 불교에 반감을 가진 보수세력 모노노베 등 경쟁 씨족을 제압한 백제계 소가씨(蘇我氏)가 5대에 걸친 왕실 외척이 되어 정치적 실세를 떨쳤다. 천자문과 논어를 가져온 왕인박사, 불교를 강력 후원한 섭정 쇼토쿠 태자와 함께 오사카의 사천왕사, 아스카사, 현존 세계 최고(最古)인 호류지(法隆寺) 등 많은 사찰을 건립했다.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린 벽화로 잘 알려진 호류지는 금당과 5층 목탑이 있는 서원(西院)과 동원(東院)으로 나뉘어 있는데 백제식 가람 배치인 사천왕사와는 또다른 형식이었다. 절은 거대한 만큼 다소 위압적이어서 신발을 벗고 들어간 금당 복도를 한참 서성거리다가 가람을 크게 한 바퀴 걷는 걸로 마무리했다.
금당 관세음보살의 벽화는 1949년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되어 모사한 것을 복원한 것이라 한다. 누런 가루물감이 묻어나는 담징의 그림을 하나 사들고 총총 발걸음을 옮겼다. 아, 승승장구하며 이 절을 세우는데 일조했을 소가씨 일족을 또다른 백제계 후지와라 가문과 함께 쓰러뜨린 이가 당시 태자였던 덴지(天智)다. 그러면 누카타노도 다카마쓰고분, 석무대, 귤사 등을 거쳐 이 길을 거닐었을 것이다.
'니키타쓰(熱田津)에서/ 배 띄우려/ 달을 기다리니/ 드디어/ 밀물도 차오르고/ 파도도 잔잔해졌네/ 지금은 출항하기에 좋은 때/ 자/ 어서 배 저어 가자' 661년 시코쿠 항구에서 의자왕의 누이 또는 부인으로 알려진 제명여왕이 와카(和歌)를 짓고, 누카타노는 나당 연합군에게 망해버린 백제를 위해 백강전투를 치르러 출정하는 군함 뱃머리에 서서 하늘을 향해 축원했다.
왕자 덴무의 비(妃)였다가 그의 형인 덴지의 후궁이 되었지만 백제왕족의 피가 흐르던 그녀는 천재 시인이자 나라의 신녀(神女)로 추앙받고 있었다. 덴지는 오래 살지 못했고 다시 왕으로 즉위한 덴무에게 돌아간 그녀는 기록은 없지만 그다지 행복한 삶을 누리진 못한 것 같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 만요슈(萬葉集, 399년-759년 사이 작품 4,516가 수록)에는 그녀의 개성이 뚜렷한 뛰어난 작품이 많이 남아있다. 위의 제명여왕 와카도 그녀 작품이란 설이 있다. 비슷한 시기 성행한 우리 향가가 현재 14수만 전해지고 있는 것에 비교가 되는 대목이다.
현재 향가학자 김영회 교수에 의하면 한자의 뜻과 소리를 가차한 향찰로 쓰여진 우리 향가가 먼저 등장한 뒤 마찬가지 한자 발음을 취한 만요가나가 뒤이은 것으로 보아 만요슈에 실린 시가들은 향가에서 비롯되었다는 학설이 정설로 자리잡고 있다.
◆나라(奈良), 도다이지(東大寺), 쇼소인(正倉院)
소설가 최인호는 '잃어버린 왕국' 서두에 리비우스를 인용했다. '진리의 빛은 자주 차단되지만 결코 꺼지는 일은 없다.' 소설 1권에서 일본 군부는 1880년, 만주의 풀밭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광개토왕비를 발견해 왜구대궤성(倭寇大潰城, 왜구가 고구려군과 신라군에게 궤멸되다.)을 왜만왜궤성(倭滿倭潰城, 왜가 신라성을 가득 채우고 성을 무너뜨렸다.)으로 위조하고 그 사실을 아는 조선족과 참여한 간첩 장교들까지 모두 죽여 버린다.
2권에서 일본의 역사 왜곡은 칠지도(七支刀, 백제왕이 왜의 제후에게 하사한 철제 가지 모양 칼)에 새겨진 명문 위조와 고사기(古事記)의 저자 태안만려(太安萬侶)가 백제 도래인이라는 것이 밝혀짐으로 의심은 증폭된다.
칠지도 모형은 나라박물관에 있었다. 소가씨 이후 막강한 권력을 가진 후지와라 가문의 딸인 고묘왕후는 친정의 후광으로 일본의 측천무후같은 존재가 되었다. 도다이지(東大寺)를 세우고 대불을 조성한 남편 쇼무 일왕의 유품과 보물을 쇼소인(正倉院, 절의 창고)에 보관하고 자신의 딸을 일왕으로 즉위시켰다. 당시 왜에는 그들 외에도 왕인 박사의 후손 후미씨, 신라 진하승의 후손 지배계층 토목의 대가 하타씨 등 '도래인(渡來人)' 백제계 킹 메이커들이 많았다.
매년 10월 하순부터 2주일 남짓 동아시아 고대사의 비밀 창고로 불리는 쇼소인전은 해마다 70점 정도 공개한다. 가끔 신라와 백제의 미술품, 공예품, 문서가 전시되기도 한다. 그곳에 소장된 모든 보물을 전부 보려면 꼬박 120년 정도 걸린다. 올 봄 나라박물관에서 실제 칠지도를 공개한다니 마음이 두근거린다.
가끔 아직 찾아내지 못한 우리 고대 역사서나 향가집 삼대목(三代目) 등이 일본의 박물관이나 신사에 은밀하게 감춰져 있다가 불쑥 발견되는 상상도 해본다.
◆우지(宇治), 뵤도인(平等院), 겐지박물관
나라박물관 인근에는 후지와라 가문의 신사,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가 있다. 수천 개가 넘는 입구의 석등이 킹 메이커들이 포진한 최고 귀족가문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게 어마어마했으나 신사 한 켠 그 가문의 상징이어서 심었을 등나무가 내겐 참 인상 깊었다.
후지와라 가문은 덴지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덴무(왕이 되어 '일본' 국호 사용)를 구해주는 행운과 정치적 수완으로 딸들을 왕비로 외손을 왕으로 세웠다. 가문은 도읍의 왕성 아스카쿄가 710년 나라의 헤이조쿄를 거쳐 784년 교토 헤이안쿄로 옮겨 가마쿠라막부가 세워지는 1185년까지 300여 년 동안 승승장구했다.
일본 이천엔 지폐에 그려진 봉황이 보물로 지정되고 십엔 동전에 건물이 새겨진 교토 우지(宇治)의 뵤도인(平等院)은 998년 가문의 최전성기를 누린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별장이었다. 서열상 권력의 중심에서 먼 위치였지만 엄청난 행운과 뛰어난 자질로 후지와라가문의 수장이 된 운 좋은 사나이다. '이 세상을 나의 세상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와카처럼 그는 세상의 온갖 영화를 다 누렸는데 첫째 딸은 이치조 일왕에게, 둘째 딸은 산조 일왕에게, 셋째 딸은 고이치조 일왕에게, 넷째 딸은 고슈사쿠 일왕에게 시집보내 네 일왕의 장인으로 섭정까지 역임했다.그의 부귀영화는 이렇듯 너무나 화려하고 놀라운 것이어서 일본이 세계에 자랑해 마지않는 천 년된 귀족소설 '겐지 모노가타리(原氏物語)'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첫째 딸을 시집보내면서 당대의 수필가 세쇼나곤(淸少納言)을 궁녀로 데려온 또 다른 왕후를 견제하기 위해 소설가 무라사키 시키부(紫武部)를 딸려 보냈고 소설은 미치나가의 분신이랄 수 있는 이상적인 귀족 히카루 겐지(光源氏)를 중심으로 많은 여성과의 다양한 사랑과 영화가 몽환적이다. 우지 강가에는 무라사키 시키부의 하얀 동상과 몇 년 전 현대식으로 새로 개관한 겐지 모노가타리박물관이 있다.
소설의 마지막 와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쇠락과 죽음처럼 쓸쓸하다. '마음 속 연인을 잃고 깊은 생각에 잠겼네./ 비애 속에 보낸 지난 세월/ 나도 모르게 오늘이 왔네./ 나의 모든 것을 끝내려 하네.' 내게 역사와 소설을 따라 가는 여행의 묘미를 일깨워 준 고(故) 최인호 선생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시인 박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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