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설날의 추억

뻥이오∼이름 적힌 깡통 순서대로 강정 되고 유과 되네
손주 자식 이야기에 웃 음 꽃
고령 대가야시장 뻥튀기집 단연 최고…'칠곡기계'에선 소음방지 튀밥기 개발
조청 만나면 강정, 기름에 튀겨낸 유과…봉화 닭실·고령 개실마을 한과도 꿀맛
옻골마을 태양떡국·조랭이떡국 유명

증기기관차의 굴뚝처럼 새하얀 김을 쏟아내고 있는 추억의 튀밥기. 설밑 정서를 가장 훈훈하게 보여주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대가야전통시장에 가면 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증기기관차의 굴뚝처럼 새하얀 김을 쏟아내고 있는 추억의 튀밥기. 설밑 정서를 가장 훈훈하게 보여주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대가야전통시장에 가면 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튀밥기.
튀밥기.
두부처럼 균일하게 썰어내야 하는 강정 써는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과 고된 노동이 동반된다.
두부처럼 균일하게 썰어내야 하는 강정 써는 작업은 고도의 집중력과 고된 노동이 동반된다.
균일하게 썰린 강정.
균일하게 썰린 강정.
사출구를 통해 나온 떡방앗간 가래떡. 꾸덕하게 굳으면 먹기 좋게 타원형으로 썰어 떡국을 해 먹는다.
사출구를 통해 나온 떡방앗간 가래떡. 꾸덕하게 굳으면 먹기 좋게 타원형으로 썰어 떡국을 해 먹는다.

섣달 그믐밤. 어머니는 부엌에 촛불을 밝히시었다. 며칠간 장만해둔 설날 제수 위에도 희붐한 불빛이 떨어졌다. 식구들은 쉬 잠을 못 이룬다. 부모는 친척 맞을 생각으로 자식들은 내일 입을 설빔을 다시 한번 만져본다. 차갑고 검푸른 하늘, 하지만 멀리서 새해를 향한 태양이 까치울음의 기세로 걸어오고 있었다. 늘 배고팠던 시절, 그래서 더 설렘 가득함으로 다가섰던 지난 시절의 설날. 지금은 너무나 빛이 바래버렸다. 그냥 푸짐한 연휴페스티벌 같은….

◆까치설

윤극영(1903∼1988)이 작사한 '설날'(1924)을 흥얼거려 본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까치설? 요즘 MZ세대들은 이 설을 알까. 가장 힘을 얻는 설은 '작은 설'이라는 뜻을 가진 '아찬설‧아치설'. 이게 까치설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럼 날짐승 까치와는 연관이 없다. 무속·민속 연구 권위자였던 고 서정범 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아찬설을 주장했다. 추석이 '한가위'라고 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큰 설은 '한설‧한첫날', 작은 설은 '아찬설, 아치'로 불렸는데 '아치'라는 말이 '까치'로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도 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승려와 내통해 왕을 죽이려고 했으나 왕이 까치와 쥐‧돼지‧용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했다. 셋은 모두 십이지에 드는 동물이라 공을 인정받았으나 까치만은 제외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왕이 설 전날을 까치의 날로 정해 까치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하여튼, 그렇다는 말이다.

재야사학계가 자랑스럽게 미는 세계문화 동이족 기원설에 따르면 빙하기에서 살아남은 북반구 고위도 고대인들은 동지를 한해의 축으로 봤단다. 북위 66도 선에선 동지에 해가 지고 나면 사흘 동안 해가 뜨지 않다가 12월 25일쯤 해가 다시 떠오른다. 이때를 새해로 봤다. 이 즈음을 까치설로 봤을 수도 있다.

◆신정과 구정

우리의 가슴에는 설날이 두 개가 있다. 신정과 구정이다. 이렇게 된 절차가 참 흥미롭다. 고종 황제가 을미개혁(1896년)으로 오늘날 '양력'이라고 부르는 '그레고리력'을 도입하고 '건양'(建陽)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설날에 대한 혼선이 생기기 시작했다. 1895년 11월 중순까지 음력을 사용하던 대한제국이 한 달 반을 건너뛰어 새로운 새해를 선포한 것. 세계 표준으로 알려지고 있던 달력을 받아들여서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시도였다. 덕분에 전통적인 음력설은 '옛날의 설날'이라는 뜻의 '구정'(舊正)으로 밀려나 버렸다. 해방 이후에는 정부가 이중과세에 의한 불필요한 낭비를 막겠다고 음력 설날의 성묘와 세배를 금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 정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정부도 도도한 국민 정서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985년부터 음력 설날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민속의 날'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1989년부터는 음력 설날의 이름을 '설날'로 변경하고 연휴 기간도 3일로 연장했다. 되레 1월 1일은 하루를 쉬는 '신정'(新正)으로 격하된 상황이다.

◆별별 떡국 담론

추석은 송편, 설날에는 떡국과 강정이 대표 음식이다. 그럼 떡국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길쭉한 가래떡, 그걸 썰면 동전 모양이다.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무병장수하고 부귀가 함께 했으면 하는 민초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전국에 별별 떡국이 다 있다. 언론에서 가장 흥미롭게 생각하는 건 '태양떡국'과 '조랭이떡국'.

태양떡국은 대구시 동구 둔산동 옻골마을 경주최씨 백불암 최흥원 종가에서 태어났다. 거기서는 가래떡을 썰 때 태양처럼 동그랗게 썬다. 그래서 태양떡국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방앗간 기계가 없었던 윗대 어른들은 일일이 수작업으로 가래떡 모양을 만들었다. 현대로 넘어오면서도 절대 방앗간에서 미리 떡을 썰어오지 않고 직접 썬다.

조랭이떡국은 고려 망국의 한이 스며 들어가 있다. 고려 왕조가 끝난 이후 개경 사람들은 대나무 칼로 둥근 떡의 중간 부분을 문질러 잘록하게 만들어 조롱박 모양의 떡을 끓여 먹었다. 이 떡국과 돼지고기를 푹 삶아 만든 수육을 칼로 난도질해서 먹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떡국과 수육은 조선 태조 이성계를 저주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다. 위화도 회군을 통해 수많은 개경 사람들을 죽인 이성계의 목을 조른다는 의미도 담겨있다. 조랭이떡국과 함께 먹는 돼지수육은 '성계육', 즉 '이성계의 고기'라 불리며 돼지띠에 태어난 이성계에게 복수한다는 의미다.

◆차사와 기제사

차례(茶禮)와 기제사(忌祭祀)를 동일하게 보는 이들도 적잖다. 차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차는 '메우다‧채우다'라는 뜻이고 례는 '비우다'란 뜻으로 '채움과 비움을 정산한다'는 의미다. 차례의 또 다른 뜻은 '차로 예를 행한다'는 뜻도 있다. 신라와 고려 때 만해도 차의 위상이 절대적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상당수 명문 반가에서도 차를 제상에 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 술과 차를 동시에 올리는 진설 위치는 어떻게 되는가. 조상신을 기준으로 봤을 때 왼쪽에 차, 오른쪽에 술을 놓아야 한다. 차가 술보다 위상이 높기 때문이다.

◆추억의 뻥튀기집을 찾아서

설날 별미는 단연 강정이다. 일단 쌀, 콩, 옥수수, 땅콩 등을 튀겨주는 뻥튀기집을 찾아야 된다. 대구 인근에서는 단연 고령 대가야시장이 제일이다. 몇 년 전 나는 여기서 성산뻥튀기 부부를 만나 괜찮은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단대목이 되면 오전 6시에 서둘러 문을 연다. 10분 간격으로 주물로 제작된 튀밥기 잠금장치를 쇠막대로 풀어준다. 그럼 튀밥기 안팎 온도차에 의해 '뻥'하는 소리와 함께 속에 들어 있던 쌀 등이 튀밥으로 크게 부푼다. 튀밥기 속을 기름 걸레로 닦고 대기 중인 다음 곡물을 튀밥기 안에 넣는다. 새치기는 언감생심, 그래서 깡통 안에 주인 이름이 적힌 종이쪽지를 꽂아놓았다.

뻥튀기용 곡물은 반드시 햇살에 말려야 튀밥이 제대로 부풀게 된다. 온돌에서 말리면 수분이 제대로 갈무리되지 않아 튀밥이 눌어붙거나 타버려 못 먹게 된다.

손자와 자식 이야기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못하는 어르신들, 여기서는 택호(宅號)로 통성명된다. 친정 고향이 택호가 된다. 칠곡에서 시집오면 칠곡댁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 며느리와 달리 층층시하에서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며 이름을 망각하고 살아온 기념비적인 억척여성들에게는 아직도 이름이 거북하다.

고온의 튀밥기. 예전에는 연탄과 장작불로 가열했는데 이젠 가스로 바뀌었다. 여기선 튀밥기가 난로 구실을 한다. 증기기차 화통소리급 뻥 소리가 작렬하면 순간 실내는 습식 사우나를 방불케 한다. 현재 경북권 튀밥기는 2대 65년 전통을 자랑하는 칠곡군 지천면 신리공단 내 '칠곡기계'가 소음방지 튀밥기까지 독점적으로 개발해 화제가 됐다.

◆강정과 유과

튀밥은 조청과 물엿 등을 만나면서 첫단계는 강정으로 태어난다. 다음으로 기름에 튀겨낸 기름과자의 일종인 '유과'(油菓)가 있다. 유과는 고려 공민왕 시절 몽골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모양인데 원나라에서는 '고려병'(高麗餠)으로 불렸다.

강정과 달리 유과는 공정 과정이 까다롭다. 먼저 고운 찹쌀을 일일이 손으로 골라내 가루로 빻아서 반죽한다. 그걸 평평하게 펴서 알맞은 크기로 자른 다음에는 뜨거운 방에 펼쳐서 말리린다. 그게 꾸덕꾸덕해지면 뜨거운 기름에 튀기거나 지져낸다. 그런 다음에는 일단 기름기가 빠지도록 한 뒤 조청을 묻히고 찹살 고물을 고슬고슬하게 묻혀 만든다. 산자는 '과즐'로 불리며 정사각형이다.

경북에서는 내림음식을 시장에 내놓아 화제가 된 마을이 봉화의 '닭실마을', 그리고 고령 '개실마을' 한과가 알아준다. 닭실 한과의 시작은 5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동권씨 집성촌으로 조선 중종 때 명재상이던 충재 권벌(1478~1548) 은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삭탈관직당하고 유배길에 오르지만 끝내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뜬다. 하지만 충재 선생이 돌아가신 후 복권되고 불천지위(不遷之位)에 오르게 된다. 그후 선생의 제사를 모시면서 갖은 정성을 들여 만든 제수용품 중의 대표적인 것이 '닭실 종갓집 한과'다. 1990년대초 주위의 권유로 시중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이 마을에서는 크기가 넓은 건 '입과', 손가락만한 것은 '잔과'라 한다. 산자는 일명 '과즐'로도 불린다.

wind30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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