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는 혁명적인 문명의 도약이었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암울한 시대적 산물이기도 했다. 효율적인 식민지 경영을 위한 군사적 확장과 산업적 수탈의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철도는 자원과 사람을 싣고 떠나간 상실과 이별의 냉혹한 운송수단이었다. 시대의 반영인 대중가요에도 만남의 입구보다는 이별의 출구로, 웃음보다는 눈물이 더 흥건히 배어 있었던 까닭이다.
숱한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타국으로 이동한 것도, 젊은 청년들이 지원병이란 미명으로 전쟁터로 끌려간 것도, 꽃다운 처녀들이 위안부로 붙잡혀 떠난 것도 철도역이 시발이었다. 그렇게 일제강점기의 철도는 희망의 청사진보다는 절망의 실루엣이 드리워져 있었다. 광복 후 6·25전쟁기의 철도는 피란민의 눈물이, 1960년대 이후 산업화 시대에는 이촌향도의 시린 감성이 스며 있었다.
남인수가 부른 '이별의 부산정거장' 선율이 그나마 경쾌한 것은 휴전과 함께 피란살이의 마침표를 찍고 서울로 돌아가는 열차의 설렘과 기대의 정서를 대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란살이의 애환과 이별의 정한도 여운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부산역 철도에는 보슬비가 내리고 기적도 목메어 우는 것이다. 손인호의 노래 '비 내리는 호남선'은 호남선 철도에 어려 있는 눈물과 탄식을 그렸다.
1960, 70년대의 경부선과 호남선 등 간선철도는 일제강점기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고 우리나라 산업화의 대동맥으로 역동적인 기능을 발휘했다. 이처럼 발전과 도약의 출입구였던 철도는 상실의 서정도 지니고 있었다. 철도는 한국 현대사의 성장과 함께 아픔도 머금고 달렸던 것이다. 그것은 근대화에서 얻는 새로운 삶의 기대와 함께 이촌향도가 낳은 농촌의 공동화와 도시의 망향가였다.
나훈아의 '고향역'은 산업화 시대의 숨 가쁜 호흡 속에 고향을 떠나 도시로 나간 사람들의 동경과 상실의 정념을 노래한 철도가이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은 추억 속의 공간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녹슬은 기찻길'은 참혹한 전쟁을 겪고도 여전한 분단의 고착화와 그 상처를 버려진 기찻길에 은유한 통한의 노래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웅변적 문구의 대중가요적 변주이다.
21세기의 철도를 탯줄로 탄생한 '안동역에서'는 영호남 가요인들이 합심해서 만들어 낸 국민 서정가요이다. 가수 진성이 전북 부안 태생이고, 작사가 김병걸은 경북 안동 사람이다. 게다가 작곡가 최강산은 포항 출신이다. 전라도 사람 진성은 안동역을 부르며 출세를 하고, 안동은 전라도 가수 덕분에 애향가를 얻었다. 동서 간의 화합도 이루지 못하면서 남북을 잇는 기찻길이 가능하겠는가.
육중한 차체를 짊어지고 일정한 궤도 위를 달리는 열차는 숙명적인 인생행로를 떠올린다. 그 열차의 시작과 마무리는 다름 아닌 역(驛)이다. 눈물이 어린 호남선과 울분이 서린 경부선이 서로 다른 기적 소리를 내는데, 휴전선에서 중단된 다음 역 이정표는 어떻게 세울 것인가. 종점이 아닌 휴전선 중단점에서 속절없이 핏빛으로 산화한 겨레의 피멍을 어떻게 닦아 낼 것인가.
한편으로 철도는 편리한 일상의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이다. 물류 이동의 혈관 기능을 하는 것은 물론 낭만적 세계 여행의 정서적 통로가 되었다. 휴전선에 멈추어 선 철마가 다시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녹슨 기찻길에 윤기가 감도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한반도가 지구촌의 절반을 연결하는 철도 노선의 위대한 시작점이자 화려한 마침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을사년(乙巳年) 개막과 더불어 동해안 철도가 연결되었다는 소식이다. 2009년 착공에 들어간 경북 포항과 강원 삼척 간 동해중부선 166.3㎞ 구간이 15년 8개월 만에 개통된 것이다. 2021년 말 개통한 동해남부선(부산~울산~포항)과의 연결로 한반도의 척추가 보다 온전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강릉~고성 제진 구간 동해북부선(110.9km)이 3년 후에나 연결될 예정이다.
그래도 절반에 불과하다. 동해안 철도가 완전한 모습을 갖추고 환동해권 시대를 열어 가려면 남북통일을 기다려야 한다. 동해안 철도가 북녘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이어지면 한반도와 러시아 그리고 유럽을 종횡으로 잇는 위대한 철도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동해안 철도가 유라시아 횡단철도의 출발점이자 도착역이 되는 날, 그 장대한 여정을 알리는 철마의 기적 소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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