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뭐가 그렇게 하기 싫은 게 많은지 몰라도(책은 무슨 동력으로 썼는지 궁금하고) 누구나 다 아는 얘기, 이를테면 내 자신은 소중하니까 나를 위해서 살겠다고 굳이 재확인시켜주려는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독자가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당신의 머릿속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뭔데? 라는 반발이 일어날 정도다. 물론 사소한 일상의 힘과 위대함을 외면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오랜 고민과 공부와 통찰 없이 머리에서 번뜩이는 감성에만 기대어 활자놀음을 즐기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는 뜻일 뿐. 요컨대 감정만 가득하고 감동이 없는 노래라는 얘기다.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이고, 그 안에서 내 방식으로 놀아볼 테니 당신의 경험을 투영시켜 재단하지 말아달라는 강한 의지 같은 거? 젊은 세대가 쓴 일상에세이에 손이 가지 않는 건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표지의 저자 얼굴이 우울해 보인다. 음울해 보인다는 게 더 맞을 거 같다. 필시 요절을 꿈꾸는 젊은이 같다. 경험상 이런 작가의 글은 당연히 깊고 무겁고 진지하다. 애써 침울한 터널로 독자를 끌고 들어간다. 아니나 다를까 제목도 '문명의 우울'이다. 교토대학 법학부 출신(오시마 나기사 감독도 같은 학교 법학부이다.)으로 스물네 살에 아쿠타가와 상을 최연소 수상한 히라노 게이치로.
소니가 개발한 로봇강아지 아이보에 대한 이야기로 펼친 글은 휴대전화의 연애학으로 맺는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든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예리하고 섬세하게 헤집은 작가의 통찰이 시작부터 남다르다. 말하자면 우리가 가공식품을 먹는 것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생존을 위한 비극적인 조건이 끼어드는 것을 막으려 노력하는 것"(13쪽)이라는 분석과 '인데도'와 '이니까' 즉 어떤 장르는 장점과 결점을 '인데도'와 '이니까'로 철저하게 보호받으면서 과대평가 되었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만화인데도 장점이 많고 만화이니까 단점을 이해해줘야 한다는 식.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 유사한 일이 얼마나 많던가.
신앙과 과학에 대한 아이러니를 짚어낸 시각도 탁월하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 믿는 시대에 영적 존재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도 사진에는 찍힐 수 있다는 기묘한 착각을 질타하는 작가는, 차라리 유령이나 요괴를 직접 보았다는 주장이 더 진실하다며 쐬기를 박는다. 또한 작가의 엉뚱하고 기발하며 신박한 생각에 무릎을 친 대목. "시험 삼아 고전 작품의 걸작이라 불리는 연애소설 속에 휴대전화를 한번 집어넣어보자. 거의 모든 작품이 괴멸되지 않을까?"(118쪽) 그렇지, 고전멜로드라마 양식의 핵심은 '사건의 지연'이었으니까. 시간의 지연을 통해 긴장을 극대화한 멜로드라마의 관습을 박살내기에 휴대전화만큼 좋은 게 또 있을라고.
히라노 게이치로는 말한다. "인간형 로봇은 정밀도가 높아질수록 인간의 모습과 비슷해질 것"(69쪽)이라고. 결국 고도로 발전한 로봇은 인간이 여전히 노예를 소유하려는 케케묵은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불쾌한 사실을 폭로하게 될 거라고도 예견하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징후를 보였다는 점에서 섬뜩하다.
'문명의 우울'은 25년 전 젊은 천재작가가 쓴 일본사회에 대한 단순한 진단이 아니다. 시간을 거슬러도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상존하는 본질적 문제들이고 지금 여기에 발 딛은 우리의 이야기로 치환시켜도 무방하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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