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으로 가는 물길
배는 검푸른 물살을 가르며 순항한다. 갑판에 서서 멀어지는 육지의 불빛을 바라본다. 1월, 시릴 것만 같던 한겨울 바닷바람이 이리도 순하니 뜻밖이다. 시간은 자정을 넘겼지만 선뜻 객실로 가지 못한다. 바닷바람에서 어떤 막연한 그리움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순하고 여린 바람이 나를 갑판에 오래 묶어둔 게다.
청정한 세상이 그립다. 청정한 세상이 품은 집이 그립다. 세상은 고단하다. 거리를 배회하는 뒤집힌 말들이 때로는 숨 쉬는 것조차 버겁게 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동쪽 망망대해를 떠돌다 보면 혼령처럼 섬이 나타나고, 그 섬 어딘가엔 아는 사람만 안다는 그런 집이 있다고. 단 한 순간이라도 좋으니 그런 집에 기대어 세상을 다시 살고 싶다.
결항에 결항을 거듭하다 모처럼 바닷길이 열렸다. 서둘러 배에 올랐다. 다행이다. 나는 겨레의 동쪽, 붉은 기운의 해가 힘차게 떠오르는 섬으로 얼른 갈 수 있기를 기대했다.
멀리 왔을까. 육지의 불빛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 멀어졌다 한들 서운할 것도 없는 세상의 불빛이다. 멀어지니 오히려 안도하게 된다. 이제 동쪽 섬, 울릉도가 어디쯤 있을까를 생각할 차례다. 한밤중 바다의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듯하다. 사위가 보이지 않으니 더 그렇다. 그러나 초조하지는 않다. 어떤 집이든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발품을 팔아 무던히 걷거나, 고단히 고개를 넘어야 할 때도 있다. 때로는 이렇게 바다도 건너야 한다.
◆울릉도라는 거룩한 섬
울릉도의 아침은 수평선에서 시작된다. 수평선을 딛고 솟아오른 해는 물결마다 금빛을 입히며 섬의 아침을 연다. 붉은 기운으로 시작된 여명의 근원이 이내 바다를 불사른다. 일렁이던 바다가 힘을 내어 파도를 일으킨다. 사동리 몽돌밭에 부딪는 파도는 섬의 찬란한 음성 같다. 감격이다. 눈이 멀 것 같은 감격이 심장 한복판에 박인다. 아! 원초적인 생명의 움직임 앞에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런 태고의 빛나는 아침을 도시에서는 볼 수 없다.
울릉도는 한반도의 남다른 섬이다. 조선조 전기 울릉도는 왜구의 거점이 된다는 이유로 섬을 비우고 주기적인 순찰을 한다는 쇄환정책(1417년, 태종 17년)을 시행했다. 섬에 살고 있는 백성은 모두 본토로 이주시킨 후 약 460여 년간 아무도 살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했다. 이후 1882년(고종 19년) 검찰사(檢察使) 이규원(李奎遠)이 고종의 명을 받들어 울릉도를 검찰하고 이듬해 개척령을 반포하여 백성들을 다시 살도록 했다.
나는 지금 그 역사적인 섬에 와, 북쪽 천부로 향한다. 같은 울릉도라지만 바람이 잔잔한 도동과 저동에 비해 천부의 겨울은 유난스럽다. 드센 바람, 날뛰는 바다, 방파제를 때리는 거대한 파도를 목격하며 울릉도의 북쪽 바다를 실감한다.
곧장 나리동으로 오른다.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 나리분지가 있는 곳이다. 울릉도는 약 1만 년 전 화산으로 생겨난 섬이다. 나리분지는 화산 폭발의 중심 화구가 함몰되면서 만들어진 곳으로 개척 당시 이주한 백성이 개간한 땅이다. 그러니 화산 분화구인 나리동으로 가는 길은 매우 가파르고 험준하다. 점점 거세지는 눈발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길이 얼기라도 한다면 낭패다. 가파른 길을 오르고 굽어 돌기를 여러 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인다.
◆투막집, 그 낮고 고요한 말씀
눈부시다. 온통 순백이다. 눈은 대지를 덮은 하얀 이불 같다. 분지를 사방으로 감싼 험준한 봉오리들이 눈과 얽히어 깊고 선명한 굴곡을 드러낸다. 하늘은 개이고 흐리기를 반복하고 눈발은 흩날린다. 잔가지마다 눈을 얹고 명상하듯 서 있는 나무와 터 잡고 웅크린 집들. 이 믿기지 않는 광경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어찌 이 풍경을 사랑하지 않을까. 거룩한 풍경에 홀려 더 깊숙한 곳까지 끌려간다.
나리마을을 벗어나 나무가 빼곡히 서 있는 풍경 속으로 간다. 어떤 불순한 생각도 침투하지 못할 이 거룩한 풍경을 따라 걷고 걷는다. 두껍게 쌓인 눈 속으로 발이 푹푹 빠져 걷는 게 쉽지 않으나 집으로 가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멀고 가까운 어느 날, 낯모르는 누군가 이 길을 걷고 걸었을 걸음 위에 눈이 쌓이고 또 누군가의 걸음이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다. 그들과 함께 이 길을 걷는 게다.
눈길은 적막하다. 어떠한 기척도 없다. 그 흔한 산짐승도, 사람도 없다. 자연 속의 자연을 자연히 누리는 것은 나를 위한 깊은 명상이다. 걷고 걷는다. 멈추지 않는다. 이젠 목적한 곳이 기억나지 않는다. 무아의 지경으로 그저 무심히 걷는 게다.
'어서 오시게, 애썼네.' 이명처럼 들리는 말씀에 사방을 살피니 험준한 산봉우리 아래 눈을 흠뻑 뒤집어쓴 집 한 채가 나를 반긴다. 육지의 초가집을 닮은 투막집이다. 울릉도 환경에 맞게 나리동 억새를 엮어 둘러친 억새 투막집(중요민속문화재 제257호)이다. 눈은 투막집 지붕 위에도 두텁게 쌓였다. 그러나 집은 그 무게마저도 숙명처럼 감내하며 숨 쉬고 있다. 주변은 온통 설국이다. 어디가 밭이고 집인지 경계마저 모호해진 깊은 골짜기에 홀로 자리를 지킨다. 투박한 억새 벽은 시간이 만들어 낸 자연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
◆경외와 감사로 지은 투막집
나리동 억새 투막집은 1945년경에 지어진 울릉도의 재래식 집이다.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일자형 구조의 가옥이다. 비, 눈, 바람으로부터 가옥과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억새를 엮은 우데기를 외벽으로 둘러쳤다. 울릉도에서만 볼 수 있는 외벽이다. 자연에 순응하며 생존을 이어간 울릉도 개척민들의 지혜를 여실히 보여주는 게 우데기다.
이 집은 단지 머무르는 공간이 아니다. 척박한 자연과 맞서며, 때로는 순응하며 삶을 일구었던 울릉도민들의 인내가 깃든 터전이다. 투막집은 나리분지의 겨울을 버텨내기 위한 거처요, 울릉도의 문화와 역사를 품은 공간이다. 오늘날에도 이 집은 울릉도 개척사의 증거로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운다.
집 안으로 발길을 들인다. 나무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흐린 빛은 투막집을 은은하게 비추며 세월의 깊이를 더한다. 내부는 마치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든 또 다른 생명체 같다. 억새와 나무로 이뤄진 벽과 지붕은 단순하지만, 그 속에는 겨울을 견디고자 했던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이 담겼다. 집에 집을 덧씌워 추운 겨울바람을 막아내며 온기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였다. 이곳에서 겨울을 난 사람은 단순한 생존이 아닌 자연에 대한 경외와 삶에 대한 감사로 마음을 채웠을 것이다.
얼어붙은 세상 속에서도 따스함을 찾으려 했던 그들의 마음이 읽힌다. 비록 투박한 억새와 나무로 지은 집이지만, 결코 가난한 삶은 아니었으리라. 기나긴 겨울밤, 이 작은 공간으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속삭이는 용기였을 게다.
우린 살아내야만 한다. 억새로 지어진 울릉도의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투막집은 변방의 볼품없는 집이 아니다. 누군가는 웃고 울고, 누군가는 나고 자라고 죽으며 삶을 이은 집이다. 척박한 땅과 거센 바람 속에서 피워낸 삶의 흔적은 거대한 역사만큼이나 묵직하다. 울릉도를 견디고 살아낸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집이다. 말을 가려야 한다. 여기가 변방이니 고립된 섬이니 함부로 말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의 삶은 그 어떤 집에서도 치열하고 아름다운 게 아닌가.
양진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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