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2월 3일. 운명의 날이 왔습니다. 오늘은 전국 10대 도시서 사상 첫 실시되는 중학교 무시험 진학 추첨날. 지긋지긋한 '입시지옥'은 언니, 오빠들까지만. 이제 뺑뺑 돌리기만 하면 중학교엘 간다니, 아이들은 아침부터 재잘재잘 신이 났습니다. 대기소는 중앙국(초)교(현 2·28 기념공원), 추첨장은 인근 대구여중(현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시험도 아닌데 교문 앞엔 학부형 수백 명이 목을 빼고 섰습니다.
추첨 첫날은 여학생들만. 추첨기는 모두 25대. 양과 질이 똑같은 은행 알을 학교별 배정수(8천8백59명) 만큼 만들고, 알 마다 학교별 번호를 써 25대에 균등하게 넣었습니다. 추첨은 학생이 직접 추첨기를 오른쪽으로 두 번 돌려 섞은 다음, 왼쪽으로 한 번 돌리면 진학할 학교 번호가 적힌 알이 나오는 방식. 1명 당 시간은 길어야 1분. 추첨기 한대로 한 시간에 6~70명씩 처리해, 추첨은 오후 3시쯤 끝이 났습니다.
남학생 1만3천52명이 추첨하는 4일은 꼬마들이 소풍이라도 온 듯 날뛰는 바람에 교사들이 진땀을 뺐습니다. "어제보다 훨씬 많네. 역시 아들이 좋은 모양…." 추첨장 교문 앞엔 학부형 수천 명이 길을 메웠습니다. '뺑뺑이'를 돌리고 나오는 아이들은 하나 같이 밝은 표정. 이제 최대 관심은 운명의 학교. 속타는 시간이 흘러 이날 오후 4시, 경북도 교육위원회가 극비리에 보관해 온 번호별 학교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사! 난리가 났습니다. 도 교육위에는 소위 삼류학교에 걸린 학부형들의 욕설전화가 잇따라, 일부는 "차라리 시골로 가 지방학교에 가겠다"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남산동의 한 학부형은 당첨된 경명여중 위치를 묻는 전화에 직원이 "팔달교를 지나서 있다"고 잘못 말하자 전화통에다 대성통곡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동촌 해안동에서 평리중에 배정된 아이. 30리(12km) 등굣길이 까마득했습니다.
"하늘이 노오랗다. 땅이 빙빙 돈다." "혼자 이불을 덮어쓰고 울었다." "벌덕 일어나 손뼉치며 소리를 질렀다. 너무 기뻐 눈물이 날 정도였다." 아양국(초)교 어린이 글짓기에 드러난 동심은 온통 벌집 쑤신 듯 했습니다. 우등생이 삼류학교, 이름자도 못쓰는 아이가 일류학교 당첨도 다반사. 엇갈린 희비 속에 가는 곳마다 화젯거리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중학교 무시험 진학은 1971년부터 전국으로 확대 실시됐습니다. 서울은 컴퓨터로, 지방에선 여전히 수동식 '뺑뺑이'를 돌렸습니다. 먼거리 배정을 막기 위해 대구·포항·김천에는 학군제가 도입되고, 면 단위 등 경북 182개 단일 학군에서는 등록금만 예치하면 진학할 학교가 결정됐습니다. (매일신문 1970년 2월 4일~ 1971년 2월 12일 자)
입시지옥·일류병을 없애자며 도입한 이른바 중학교 평준화. 해방후 25년 동안 지속된 입시가 사라지자 무엇보다 아이들이 밝아졌습니다. 발표력이 좋아져 교실은 더 쾌활하고 더 명랑해졌습니다. 악착스레 과외를 시킬 필요도 없어 학비 걱정도 줄었습니다. 1968년 겨우 55.9%에 머물던 중학교 진학율이 1972년엔 71%, 1979년엔 92,9%…. 평준화의 공이 이렇게 컸지만, 또 다른 숙제를 남겼습니다.
사라졌던 중학 입시지옥은 고스란히 고입(高入)으로, 다시 대입(大入)으로, 이제는 인 서울로, 그러다 보니 초등때부터 선행학습으로…. 뺑뺑 돌아 다시 입시지옥에 내몰렸습니다. 저 문턱을 넘자니 아이를 낳고 기를 자신이 없습니다. 인구 소멸도 속내를 보면 다 교육 때문. 1968년 그때, 잘 살려면 배워야 한다며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라 했던 국민교육. 이제는 인구 소멸을 막을 역사적 과제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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