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립준비청년들이 좀 더 따뜻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책] 비밀에 기대어
허진아 지음 / 파지트 펴냄

[책] 비밀에 기대어
[책] 비밀에 기대어

열여덟 어른. 자립준비청년을 일컫는 또 다른 말이다.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 등에서 생활하다 만 18세가 돼 보호가 종료되면 시설을 떠나 홀로서기를 해야만 한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성인이 될 때까지 보육원에서 성장했고, 18살에 시설을 떠나 자립을 해야 했고, 온갖 시행착오 끝에 이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19년 동안 생활했던 보육원을 떠나며 짐을 챙기자 캐리어 하나를 못 채울 정도로 자기만의 물건이 없다는데 허탈감을 느꼈야 했다. 보육원을 떠나 서울로 올라갈 때 기차표 발권은 기차역 창구가 아닌 온라인으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집을 계약하는 과정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개념을 익혔다. 도시가스는 전입 전출을 신청해야 한다는 것, 도시가스비, 전기료, 관리비가 모두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다. 생활속에서 자연스럽게 알아갈 수 있는 것들이 이들에게 당연한게 하나도 없었다. 아마 세상에 혼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바람개비서포터즈' 활동을 하게 된다. 전국 자립준비청년 자조(自助) 모임으로 실제 자립을 경험한 선배가 자립을 앞둔 후배에게 바람이 되어주는 활동이다. 저자는 대학 3학년떄부터 서포터즈로 활동해 왔다고 한다.

저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보육원에서 무용을 배웠고, 적성을 찾았다고 생각해 엄마 선생님에게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지만 불가능이었다. '만18세가 되면 바로 자립을 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보육원 학생들은 바로 취업이 가능한 특성화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이들에겐 최우선 과제다.

출처-클립아트코리아
출처-클립아트코리아

하지만 보육원을 방문한 후원자들은 생각없이 이런 말을 내뱉곤 한다. "보육원의 아이들이 저희집 애들보다 훨씬 잘 지내는데요?", "여기가 천국이네요". 이들이 어떤 상실감을 견디며 어떤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야 하는지 알지 못한채 한 단면만 보고 쉽게 내뱉는 말들은 상처가 된다.

사실 이런 편견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영화 '악인전'에는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가 등장한다. 그의 이런 행동에 대해 영화에서는 단순히 그가 고아이기 때문이라는 설명 뿐이다. '고아'라는 캐릭터를 범죄자나 형편이 어려운 주인공의 서사로 소비하는 것이 미디어 시장을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장래희망을 적는 칸에 허진이 작가는 언제나 '결혼'을 적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자신의 꿈을 이뤘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 자립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아이를 보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이 문득문득 떠올라 그 시절로부터 또 자립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동안 나는 가정을 이루면 자립은 끝이라고 생각해왔다. 많은 것이 해결될 테니까. 하지만 부모가 되니 '또 다른 자립'을 마주하고 있다. 처음 있는 낯선 경험에 적응하고 잘해 나가는 것뿐 아니라 나의 아이를 돌보면서 마주하는 결핍과 기억들로부터 해방되는 일은 모두 나에게 새로 주어진 자립의 과제였다."

이 책은 보육원 아이들을 너무 이해나 배려, 동정심을 받아야할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그저 우리 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구성원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따뜻한 연대의 힘을 보태 주길 바랄 뿐이다.

"아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어느 정도로, 어떻게 필요한지는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자립준비청년으로서의 경험을 담은 이 책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자립준비청년에 대해 알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들의 깊은 사정을 알게 되었다면 부디 마음으로라도 함께 해주길 바랄 뿐이다." 223쪽, 1만6천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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