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초 방문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는 수일 동안 노상에서 숙식을 해결한 사람들로 붐볐다. 국물이 스며든 컵라면, 어묵이 든 종이컵, 김밥을 감쌌던 포일 등 길 위에서 간밤을 보낸 사람들의 흔적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며칠간 제대로 된 식사, 수면, 세신을 하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취재차 건넨 질문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취재진의 질문에 집회 참가자들은 관저 앞 집회 현장에서 밤을 새우며 철야 농성을 이어 가며 각자가 얼마나 절실하고,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나와 수십 일을 현장에서 보내게 됐는지에 대한 하소연에만 급급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이 같은 대응은 이해가 됐다. 대통령 관저 인근에는 지친 몸을 회복할 만한 시설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상가 건물조차 없었다. 따뜻한 차라도 한잔 할 수 있는 카페는 10분 이상 걸어야 했다. 어렵게 찾은 카페마저도 경찰과 취재진, 집회 참가자들로 포화 상태였다. 관저 인근 통행로를 일률적으로 통제하는 탓에 자유로운 통행은 불가능했다. 건너편으로 가는데 횡단보도만 쉽게 건너면 되는 길을 한참을 되돌아가야 하기도 했다.
한참을 줄 서서 이용할 수 있는 경찰이 설치한 간이 화장실, 잠깐 들어가 쉴 수 있는 상가 건물조차 없는 상황, 오로지 노상에서 식사를 비롯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에서 현장에 나온 이들은 각자 이곳에 오기까지 포기한 일상을 기억하고 있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삶의 큰 부분을 포기하고 왜 여기까지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힘주어 말했다. 그들이 거리에서 여러 밤을 지새운 후 가장 선명히 기억하는 건 '내가 무엇을 포기했는가'였다. 포기한 일상이 소중할수록 현장에 나온 의미는 더해졌다. 각자의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것들이 있으며, 포기하고 거리에 나올 만큼 이 시국을 위중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발언을 이어 갔다.
며칠 전 딸이 첫째 아이를 낳아 할머니가 됐다는 60대 여성, 한 시간에 80만원을 벌 수 있는데 생업을 포기하고 왔다는 50대 남성, 뉴스를 보다 도저히 잠에 들 수가 없어 가족 회의를 소집하고 현장으로 나왔다는 60대 가장, 집에서 유튜브로만 현장 상황을 지켜보다가 도저히 편히 누워만 있는 자신의 모습을 견디지 못해 대구에서 상경했다는 30대 청년도 있었다.
저마다의 사연과 생활을 뒤로한 채 나온 이들의 표정은 결연했다. 탄핵 찬·반을 불문하고 현장에 나온 이들은 가정, 직장, 취미, 휴일 등 본인의 삶에서 포기한 것을 강조하며 뜻하는 바를 관철하고자 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헌정사상 처음 발부됐다. 국민들이 느꼈을 충격의 강도만큼 현장에 나온 사람들이 포기한 삶의 정도도 커 보였다. 그들은 포기한 것들을 두루 살펴줄 수 있는 정부를 바라고 있었다.
앞으로 대통령에 대한 수사 향방은 미지수지만 체포영장 집행 전 수십 일간 현장에 나온 국민들은 자신들이 포기한 일상을 기억할 것이다. '구국'이라는 일념으로 저마다의 방법으로 현장을 찾은 국민들의 고단함과 사정을 어루만져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2025년 1월은 탄핵을 반대한 이도, 찬성한 이도 각자의 생계를 뒤로하고 거리로 나올 만큼 절박했던 겨울로 기억할 것이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추위에 은박지로 몸을 감싸면서 거리로 나온, 누군가에겐 가장 뜨거웠을지 모르는 삶의 경험을 국가는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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