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계엄 사태 이후 분열된 정국 속에서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염원이 커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중대선거구제로 선거구제를 개편하고, 비례대표제를 강화해 현재의 양당 체제를 극복하고 다당제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총선, 1천213만표가 '사표'로 버려졌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는 지금의 거대 양당 체제를 공고히 하는 원인으로 오랫동안 지적됐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선거구 크기에 따라 ▷소선거구제 ▷중선거구제(1개 선거구에서 2~4명 선출) ▷대선거구제(5명 이상을 선출)로 나뉜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는 하나의 선거구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1명을 뽑는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골자로 하고 있다. 여기에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당선자 수를 결정하는 비례대표제가 혼합된 형태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에선 다른 후보들보다 1표라도 더 많으면 당선되므로, 사표(死票·낙선한 후보자 표)가 대거 발생하게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통계에 따라 지난해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254개 지역구 사표 현황을 분석했다. 그 결과 전체 유효표 2천923만표 가운데 41.9%에 달하는 1천213만2천표가 사표로 버려졌다.
선거구별 사표 비율을 보면 57.6%의 경기 화성시을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으며, 경북 경산시가 56.6%로 뒤를 이었다. 이어 ▷경기 고양시갑(54.7%) ▷울산 동구(54.1%)▷경남 창원시성산구(53.6%) 순이었다.
대구에선 전체 유효표(128만8천표) 중 29.8%(38만4천표)의 사표가 나왔다. 세부적으로, 중구·남구가 42.1%로 가장 높은 사표 비율을 기록했고, 수성구갑(34.4%)과 달서구병(32.9%)이 뒤를 이었다.
◆'승자독식'…명확한 소선거구제의 한계
대규모 사표의 발생으로 선거의 대표성과 비례성이 떨어지고, 결국 민의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승자독식 방식은 거대 양당 체제의 강화로 이어진다.
전체 의석 가운데 1, 2당이 차지한 비율은 1988년 제13대 국회에서 65.2%였다. 이 비율이 90%를 넘은 적이 2000년대 이후에만 5번(제16·17·19·21·22대)에 달하는 등 거대 양당 체제는 갈수록 심해졌다.
이에 따라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현석 명지대 법학과 교수는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이려면, 결국 중대선거구제로의 선거구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지역주의 완화, 군소 정당의 의회 진입 효과를 기대하려면 5인 선거구제로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3인 선거구제부터 시작하는 방안도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한 정당에서 2명 이상을 후보로 내게 되는데, 이때 후보끼리 갈등이 생기고 정당 내 계파 정치가 심해질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을 방안도 함께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도 일부 존재한다.
김형철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중선거구제에서 다수대표제로 선거가 이뤄지면 인물 중심의 선거가 될 수밖에 없고, 거대 정당 후보들이 한 선거구를 가져가거나 거대 양당끼리 나눠 차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낮은 비례대표 의석 비율… "비례대표 확대 필요"
선거구제 개편과 함께 비례대표제 강화 역시 필수 불가결 과제로 손꼽힌다.
지난해 제22대 총선에서 각 정당 지역구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 50.6% ▷국민의힘 45.1% ▷무소속 1.4% ▷진보당 1.0% 등이었다. 이에 비해 민주당의 의석 비율은 63.4%로 득표율보다 12.8%포인트(p) 높고, 반면 국민의힘의 의석 비율은 득표율보다 9.7%p 낮았다.
비례대표 의석에서도 군소 정당들은 기를 펴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2020년 1월 소수 정당의 국회 진출을 위해 '공직선거법'이 개정됐다. 이에 따라 같은 해 4월 치러진 제21대 총선부터 기존 병립형 비례대표제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비례대표·지역구 의석 및 정당 득표율과의 연동률 50%)로 변경됐다.
하지만 공직선거법 개정 취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난다.
국회의원 중 비례대표 비율은 제11·12대 33.3→제13대 25.1→제14대 20.7%로 떨어지다 제15대에서 20%대가 무너졌다. 이후 10% 중후반대로 유지돼 오다 21대 선거부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됐지만, 21·22대 비례대표 비율은 각각 15.7%, 15.3%로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마저도 거대 양당이 위성정당을 창당한 탓에, 소수 정당의 비례대표 의석은 소수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을 2대 1이나 1대 1 수준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국회의원 정수를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국회의원 정수는 제헌 국회 때 200석으로 시작해 증감을 반복했다. 제8~11대 사이 204→219→231→276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제13대부터 299명으로 확대됐고, 제19대에서 300명으로 소폭 늘어난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역구 의석에 인구 감소분을 반영해 지역구 의석을 줄인 만큼 비례대표 의석으로 이월시켜 비례대표 비율을 늘려야 한다"며 "전체 의원석을 총 400석으로 늘리고, 지역구와 비례를 각각 200석씩 비율을 1대 1로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적대적 양당제와 작별을…협치의 다당제로
사회 이슈가 다양해지면서 여러 정당의 의견을 수렴하는 '다당제'가 바람직한 정당구도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으로 복수정당제를 보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양당제 국가로 분류된다. 거대 양당에 표가 몰리는 지금의 국회의원 선거 방식으로는 다당제가 확립되기 어렵다.
양당제에선 국민이 택할 수 있는 대안의 폭이 좁고, 상대 정당의 패배가 자기 정당의 승리로 직결된다. 결국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극단적 대치만 남고 타협의 정치는 실종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다당제 국가인 독일의 경우 단순다수대표제와 비례대표제를 적절한 비율로 혼합해 여러 정당이 지나치게 난립하지 않으면서도, 적정 수의 정당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일은 연방의회 의원 선거에서 법정 의원 정수(598명)를 반으로 나눠 단순다수제 방식으로 선거구당 1명씩 299명을 선출하고, 나머지 299명은 16개 주에서 정당 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통해 뽑는다.
지난해 9월 기준 독일의 제20대 의회 정당별 의석수를 보면, 733석(법정 의원 정수 598명에 초과·보정 의석 포함) 중 ▷독일사회민주당 207석(28.2%) ▷독일기독교민주연합 196석(26.7%) ▷동맹90‧녹색당 117석(16.0%) ▷자유민주당 91석(12.4%) ▷독일을 위한 대안 77석(10.5%) ▷기타 정당 45석(6.1%) 등으로 분포돼 있다. 거대 양당의 의석 비율이 94.3%에 달하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방식의 차이는 있어도 다당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제의 여소야대 정국에선 대립할 수밖에 없다. 다당제로 3개 이상의 정당이 서로 경쟁하는 상황이라면 연합이 가능하겠지만, 지금처럼 양당제가 계속된다면 이러한 경색이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 다당제를 정착시키기 위해선 비례대표제를 대폭 확대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회장은 "현재 정당법에선 소수 정당을 창당하고, 창당하더라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중대선거구제로의 개편에 앞서 정당법을 일부 개정해 다당제가 정착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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