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을 참 많이도 받았다. 소설과 결혼했다, 문학은 종교이자 신이라 답하는 문우들도 있었지만 사실 난 그때마다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몰랐다. 절필하겠다고 객기로 펜을 놓은 몇 년을 제외하고서는 일상이 온통 글 생각으로 가득 찼었는데도 정말 나에게 문학이란 뭔지, 때때로 말문과 머릿속이 꽉 막히는 것이다.
과거 대입 시험을 친 후 문예창작학과에 가겠다는 말에 주변에서는 뜨악한 반응을 보냈었다. 지금처럼 전국에 문예창작학과가 많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그랬던지 당시 담임과 부모님은 아주 큰 문제에 부닥친 것처럼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두컴컴한 터널 같던 입시생에게 문학은 새까만 통로 끄트머리에서 강렬하게 쏘아대는 빛이었으므로 무작정 돌진할 수밖에 없었다.
문창과의 합격 통지서를 받고 보니 문득 '글쓰기를 배운다고?'라는 묘한 의문이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공식이나 문법을 파헤치는 학문도 아니고, 오래된 기록을 탐구하는 지식의 범위도 아닌 '문예창작'을 과연 어떻게 배운다는 걸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영역인데 과연 배우는 행위가 가능할까, 라는 짙은 의구심은 10년 동안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떼지 않고 내버려둔 넥칼라의 가격표 같은 거였다.
그러다 문예영재원에서 청소년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는 입장이 됐다. 반대의 상황이 돼도 똑같은 질문이 따라붙었다. '글쓰기를 가르친다고?' 갸우뚱거렸지만 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직업으로 선택한 일이었기에 나의 스승들이 그랬던 것처럼 학생들을 만나서 문장과 소설, 작가와 문학을 얘기했다.
시간은 또 지층처럼 쌓였다. 10여 년 가까이 흐르는 동안 미래에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을 만났고,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한때 나와 똑같았던 눈빛과 고민을 안고서 매주 만나는 그 아이들이 나를 향해 방긋방긋 웃으며 폴짝폴짝 뛰어오는데, 언제부턴가 그 모습이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벅차오르는 것이었다. 여느 아이들처럼 유행하는 음악이나 춤, 스포츠 등등 빠르고 외향적인 소통로 대신 느리고 조용한 문학으로서 세상과 사람에게 다가가고자 이 길을 선택한 아이들. 수줍어서 눈도 잘 못 쳐다보다가도 글을 이야기할 때 세상에서 가장 진지해지던 그 아이들의 까만 눈동자가, 눈물 날 만큼 선연한 그 느낌이 바로 '문학'이었던 것이다.
글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래프 같아서 성적처럼 얼마나 실력이 향상됐는지 알 수 없다. 그저 곡선이거나 직선일 그래프의 동선이 삐뚤빼뚤 어느 정도 상향됐을지 추측만 해볼 뿐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배울 때나 가르치는 지금이나 '문학'의 범주에서는 명쾌한 해답이 없다는 사실만 명백하다. 누군가 또 나에게 있어서 문학이 뭐냐고 물어도 여전히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그 아이들을 향해서 내가 먼저 방긋방긋 웃으며 두 팔 벌려 달려가 주겠다는 고백만 분명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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