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가는 신선을 그린 이인상의 부채그림 '해선원섭도'다. 짧은 선들을 중첩한 독특한 붓질로 묘사한 파도 위의 신선은 셋이다. 제일 앞의 지팡이를 쥔 신선은 커다란 나뭇잎 위에 서서 행렬을 이끌고 있고, 가운데 신선은 한 손에 복숭아를 들고 다른 손으로 사슴을 데리고 있다. 그 뒤를 두루마리와 표주박을 매단 장대를 멘 선동(仙童)이 따른다. 이미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신선에 복숭아와 사슴, 그리고 석수만년(石壽萬年)의 바위까지 그려 넣어 누군가의 장수를 삼중사중으로 축원했다. 각별한 지인이 손에 쥘 부채에 그린 그림이었을 듯하다. 가로 길이가 70센티미터에 달하는 대선(大扇)이었다.
'해선원섭도'는 지상의 신선들이 서왕모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그녀가 살고 있는 곤륜산 요지(瑤池)를 향해 바다를 건너가는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 군선도해도(群仙渡海圖) 유형인 축수도(祝壽圖)다. 화면 오른쪽에 선면의 둥근 테두리에 글머리를 맞추며 곧게 써 내려간 글은 다음과 같다.
세혼탁이불자오혜(世溷濁而不自悟兮)/ 세상이 혼탁함을 깨닫지 못함이여
증득상지재조막(曾得喪之在朝暯)/ 득실이 조석지간에 있네
애팔황지고유은혜(欸八荒之固有垠兮)/ 세상의 유한함을 탄식함이여
여태초이위린(與太初而爲鄰)/ 태초를 이웃으로 삼을 뿐이네
능호(凌壺) 초창(草牕) 우사만지(偶寫漫識)/
능호관 초가집 창가에서 우연히 그리고 생각나는 대로 쓰다
제화는 중국 초나라 충신 굴원의 초사 '원유(遠游)'를 이끌어 지은 글이다.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는 심정, 인생의 유한함에 대한 탄식은 장수를 비는 이 그림의 내용과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태초를 이웃으로 삼는다고 한 것은 신선을 그린 뜻과 어울린다. '능호'는 서울 남산에 있던 이인상의 집이자 호인 능호관(凌壺觀)이다. 셋집을 전전하던 이인상을 위해 친구들이 사줬다.
인장은 '연문(淵文)'으로 '못 연(淵)'자를 연못 모양을 상형한 고문(古文)으로 새겼다. 전서를 잘 썼던 이인상의 문자학에 대한 관심과 지식을 알려주는 인장이다. '석농화원'에 따르면 연문은 이인상의 다른 호이다. 원령(元靈)과 다른 자(字)라는 견해도 있다.
이인상 특유의 머뭇거리며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엷은 필선과 옅은 색조의 담채, 고담(枯淡)한 마른 먹색이면서도 신선의 모습과 물건의 형태가 뚜렷해 축수라는 주제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옷 색깔의 푸른색과 기물에 칠한 붉은색, 나뭇잎의 녹색 등이 화면에 은근한 활기를 주며 그림의 분위기를 상서롭게 한다. 친구를 위한 부채그림에 정성을 쏟았던 이인상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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