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소연 기자의 한페이지] '대구 아파트 관리비 열사' 이종열 씨…"'내 집'에서 '내 권리' 찾는 세상 만들고 싶어"

지난 2021년 대구 수성구서 아파트 관리 비용 과다 청구한 사건…이 씨, 앞장서 문제제기 해
지난해 대구지법 '부당이득금 반환' 판결…입주민들 5천만원 돌려받아
"불법적인 일을 보면 그냥 못 넘어가는 편…최소한의 법을 지키는 개개인이 많아지길"
눈뜨고 코베이지 않으려면…"아파트 관리규약 찾아보며 스스로 권리 지켜야" 조언

대구 수성구 소재 아파트의 입주위원회 위원장부터 입주민 대표까지 맡으며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온 이종열(56) 씨. 한소연 기자
대구 수성구 소재 아파트의 입주위원회 위원장부터 입주민 대표까지 맡으며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온 이종열(56) 씨. 한소연 기자

대출을 받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마련한 '내 집'이 부실시공, 관리비 뻥튀기 등 사건사고의 온상이 되면 어떨까.

대구 수성구 소재 아파트의 입주위원회 위원장부터 입주민대표까지 맡으며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온 이종열(56) 씨. 케이알로지스㈜ 대표이기도 한 그는 지난 2021년 관리비를 약 5천만원이나 부풀린 아파트 위탁 관리업체의 위법 행위를 대구에서 처음으로 고발하면서 불법적인 관행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지난달 13일 수성구 모처에서 만난 이 씨는 만나자마자 아파트 관리규약집, 계약서 등 두툼한 문서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종이에 빼곡하게 붙여진 인덱스 필름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지난한 사투가 물씬 느껴졌다.

-아파트 위탁관리 업체의 불법적인 관행을 대구에서 처음으로 문제제기 하셨다. 대구 아파트 관리비 열사라는 별명도 있던데.

▶2021년 입주를 시작한 대구 수성구 아파트였다. 위탁 관리업체 A사가 관리직원, 경비원, 미화원의 연차수당, 퇴직적립금, 복리후생비, 국민연금 명목으로 5천967만원을 받아갔다. 그런데 관리업체가 실제 사용한 비용은 914만원에 불과했다. 2022년 A사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주도해서 제기하게 됐고 2년이 지난 2024년에 이득금을 반환하라는 법원 판결이 났다.

-관리비 비리를 캐낸 그 전말에 대해 듣고 싶다.

▶아파트 입주 8개월 차에 아파트 입주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었다. 당시 시공사에서 선정한 관리 업체가 아파트 관리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입주위원회로서 유심히 보니 아파트 청소도 그렇고 관리를 제대로 안 하더라. 아파트 관리 규약에 따르면 입주자대표회는 입주율이 50%가 넘으면 만들 수 있고, 구성이 되면 이 관리 업체를 바꿀 수 있다.

입주 9개월 차에 새로운 업체와 계약하기로 결정하면서 기존 관리 업체가 했던 모든 일에 대해 감사를 해봤다. 이때 이 업체가 부당 이득을 취한 금전이 거의 6천만원이었다. 이 사실을 회의에 공개하고 소송을 시작하게 된 거다.

-관리비가 청구되면 입주민들은 아무 의심 없이 그대로 내지 않나.

▶아파트 관리 업체들은 보통 시공사에서 자체적으로 선정하기 때문에 입주민들은 그 업체에 관해 잘 모른다. 관리비는 관리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여러 비용을 정산한 후 아파트에 청구한다. 어떤 기준으로 그런 비용을 책정했는지도 안 알려준다. 입주민들은 내라는 대로 내지, 그렇게 부풀릴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이다.

문제가 된 업체도 직원들의 연차수당, 퇴직급여충당금, 복리후생비, 국민연금 명목으로 비용을 청구했다. 근데 조사해보니 근무연수가 적어 연차가 많이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이들의 연차를 최대치로 책정해 연차수당을 챙겼던 거다. 실제로 그런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입주민들은 그냥 내는 거다.

대구 수성구 소재 아파트의 입주위원회 위원장부터 입주민 대표까지 맡으며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온 이종열(56) 씨. 한소연 기자
대구 수성구 소재 아파트의 입주위원회 위원장부터 입주민 대표까지 맡으며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온 이종열(56) 씨. 한소연 기자

-대구지법의 판결로 관리비를 뻥튀기 하는 위탁 관리업체의 불법적인 관행이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북구, 달성군 아파트에서도 비슷한 소송이 있다던데.

▶시공사가 위탁 관리업체를 선정하고 맡기는 방식은 아주 오래됐으니 이 일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이 소송으로 판결이 나고 언론에서 다뤄진 후 최근 경산에서 비슷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입주자 측에서 의문을 제기하니 관리업체 측에서 일언반구 없이 수 천만원을 반환했다고 한다. 왜 그랬겠나. 이 이야기가 언론에 많이 실려서 단 몇 명이라도 이 기사를 보고 자신이 내는 아파트 관리비 내역을 점검해보길 바라는 것이 내 바람이다.

-판결을 받은 후 지금은 어떤 상태인가.

▶최근에 부당 취득금 5천여 만원에 소송 비용 등 다 해서 6천여만원을 돌려받았다.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이걸 어떻게 정산할지, 가장 좋은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의심이 들어도 법적인 분쟁까지 결심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나 역시 생업이 따로 있다. 아파트 관리비 관련한 분쟁은 사실 온전히 내 개인만의 일도 아니고 가욋일인데 본업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고 있다. 그렇지만 내 나름의 신념이 있다. 살면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잔돈으로 큰 이익 보는 사람들, 부당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다. 불법적인 일을 보면 그냥 못 넘어가는 편이기도 하다. 젊었을 때 음주운전으로 의심되는 차량을 우연히 목격하고 쫓아가 잡은 적도 있고, 불의를 못 참아서 싸움까지 번질 뻔한 적도 있다.

-가족들이나 아파트 입주민의 반응도 궁금하다.

▶가족들은 분쟁의 세세한 내용까진 모른다. 2021년부터 시작된 분쟁이고 초반에 문제 제기를 했을 때 그 관리 업체 관계자가 포함된 입주민 단톡방에서 집단적으로 마녀사냥을 당하기도 했다. 우울증도 생겼다. 그런데 가족들은 그래도 옳은 일을 하는 것이니 끝까지 해보라고 응원해준다.

아파트는 사실 개인주의가 강하다. 권리가 침해 당하는지도 모르고, 돈이 허투루 나가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소송이 있었는지 모르는 분들이 다수일 거다. 그래도 입주위원장을 맡았을 때 부위원들 같은 오랜 인연들이 응원하고 힘을 준다. 그들이 있었으니 견디면서 싸울 수 있었다.

대구 수성구 소재 아파트의 입주위원회 위원장부터 입주민 대표까지 맡으며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온 이종열(56) 씨. 한소연 기자
대구 수성구 소재 아파트의 입주위원회 위원장부터 입주민 대표까지 맡으며 좋은 아파트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온 이종열(56) 씨. 한소연 기자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뭐가 있을까.

▶지방자치단체마다 아파트 관리규약이 있다. 이런 4대 보험, 퇴직금, 연차 수당을 아파트에서 요구할 때 관리 업체에서는 즉시 자료를 제출하도록 아파트 관리규약을 고친다면 좀더 투명하게 계약이 이뤄질 수 있다. 지금은 그런 조항이 없다.

최근에는 아파트 관리업체 변경 시 입찰 공고문에 아파트 입주자 대표 회의하고 소송 중인 업체는 명시를 하도록 조항을 넣었다. 이런 경우가 없던 걸로 알고 있다.

-눈뜨고 코 베이지 않도록,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있나.

▶본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관리 규약이 다 있다. 이 관리 규약이나 관리법에 대해서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 잘 모르면 당한다. 이런 공동주택 관리규약은 대구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다 열람할 수 있다. 또 규약은 아파트마다 조금씩 다르다. 입주민 누구나 요구를 하면 아파트에서는 그 관리규약을 보여줘야 한다.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입주민들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지켜 보는 게 최선의, 또 최후의 방법이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모습이 인상깊다. 정의로운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법을 안 지키면서 사는 사람이 곳곳에 많다. 오늘 인터뷰를 위해 오는 길에 대구 수성구 복개도로에 신고도 안 하고 공사하는 포크레인이 있었다. 그것도 바로 신고했다. 신고도 안 된 포크레인이 공사하다가 사람이 다치거나 차가 상하면 그 책임은 아무도 안 질 거다. 피해보는 사람만 억울한 것 아닌가. 이처럼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건 결국 최소한의 법을 지키며 사는 개개인이 만든다.

-앞으로 바라는 게 있다면.

▶거짓이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입주민이 관리비 명세서를 보고 '좀 이상한데?'라는 생각이 안 들도록 투명하고 청렴하게 진행되면 좋겠다. 그리고 이 인터뷰로 자신의 권리를 찾아나서는 주도적인 사람들이 늘어나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늘어야 어디선가 부적법한 방식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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