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30 '필사' 열풍…나에게 건네는 질문 300개, 철학 필사 어때요

[책] 철학자의 공책
최진석 지음/궁리 펴냄

기자는 직접 카페에서 책
'철학자의 공책' 책 표지

"글을 기다리는 종이는 온몸을 펴놓은 피부다. 쓰기는 피부가 된 자신을 긁는 일이다. 자신에게 고랑을 내는 일이다" (저자의 말)

최근 출판업계에서는 '필사'가 화두로 떠올랐다. 2030세대 사이에서 독서하는 행위를 멋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뜻의 '텍스트 힙(Text Hip)' 열풍이 불면서, 나아가 직접 책의 구절을 따라 쓰기 시작한 것.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Z세대 사이에서 필사책 판매량은 전년 대비 692% 상승했다. 마찬가지로 예스24에서도 필사 관련 도서 판매량이 전년 대비 165.9% 늘었다고 설명했다. 준비물도 필사용으로 나온 책 한 권과 개인이 느끼기에 필기감이 좋은 볼펜 하나면 충분하다. 책들은 대체로 왼쪽엔 저자의 문장들이, 오른쪽엔 이를 따라 쓸 수 있게 빈 공간을 마련했으며 필사하기 쉽게 180도 완전히 펼쳐지는 제본으로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출판사 베스트셀러 10위 내 단골손님을 차지했던 유선경 작가의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노트'를 필두로 필사 책은 단순히 시, 소설의 구절을 베껴 쓰는 것을 넘어 그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니체, 쇼펜하우어와 같은 철학자들의 문장부터 아이유와 데이식스 등 가수들의 노랫말을 한데 모은 필사집도 등장했다. 실제로, 4인조 밴드 '데이식스'(DAY6)의 노래 가사를 모은 'DAY6 가사 필사집'(삼호ETM)은 예약 판매 시작과 동시에 예술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엔 헌법 전체를 조문 순서대로 제시하고 따라 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헌법 필사'(더휴먼)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구매 비중의 과반(53.3%)이 20~30대일 정도로 젊은 층의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필사 열풍'에 발맞춰 철학자 최진석의 '나'를 지켜온 문장들을 모은 필사 책 '철학자의 공책'이 출간됐다. 눈앞에 당면한 현실을 살아내는 데만 급급해 지쳐있을 때, 파도처럼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모를 때, 어떤 일에 과도하게 마음을 쏟을 때, 나 자신을 잃어갈 때. 우리는 잠시 멈춰 자기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요의 시간을 마주하고 사유하게 하는 '철학'과, 홀로 글을 옮겨 쓰며 그 의미를 곱씹어보게 해주는 '필사'는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는 데서 닮아있는 듯하다.

저자 최진석은 서강대 철학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베이징대에서 '성현영의 '장자소' 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건명원 초대 원장을 지냈으며 20여 년간 강연과 '인간이 그리는 무늬', '탁월한 사유의 시선',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등의 저술 활동을 통해 인문학과 철학적 통찰의 힘을 세상에 부단히 알려온 철학자다. 현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본 가운데 기본은 나 자신을 궁금해하는 일이라고 전하는 '기본학교' 교장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기자는 직접 카페에서 책 '철학자의 공책' 위에 필사를 해봤다.

책에는 저자의 대표 저서와 강연, 인터뷰 등에서 골라낸 300편의 구절을 담았다. 이를 질문, 관찰, 독립, 대화, 철학, 야망, 통찰, 소명, 예술, 행동, 시선, 기본 12가지 주제에 맞게 왼쪽 면에 분류했고, 책의 오른쪽 면은 저자의 문장을 읽고 따라 쓰고 음미하면서 동적인 책 읽기의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구성했다. 때로는 정신을 깨우는 죽비소리 같은 날카롭거나, 때로는 시적인 여백을 머금은 짧은 글귀들로 독자들의 삶을 관통하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떻게 살다 가고 싶은가?" 철학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온 저자의 질문이 독자들에게 닿길 바란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 저마다의 응답으로 채워지길 바란다. 여기, 글을 기다리는 공책이 있다. 316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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