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을 보았다. 쨍한 얼음판 위에서 안중근은 절규한다. '한산'에서 왜군 포로가 묻는다. "대체 이 전쟁은 무엇이요?" 이순신이 답한다. "의와 불의의 싸움이다." 그랬다. 중근은 일본군 포로를 풀어 준다. 그리고 그 일본군 장교는 되돌아와 조선 의병을 몰살한다.
하얼빈은 동해를 휘휘 돌아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에서 치고 올라간 의병 중근의 동양평화론과, 대륙 침략의 야욕을 품고 시모노세키를 출발, 대련 장춘을 타고 올라간 이토의 대동아공영이 맞부딪힌 장소였다. 세 발의 총성으로 중근은 이토를 쓰러뜨린다. 평화가 전쟁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토는 메이지유신과 일본제국주의의 몸통이었다. 미국 흑선의 침략 앞에 일본 열도는 마잇따(항복)를 선언한다. 영미제국주의를 따라 제국을 꿈꾸던 이토는 서구 과학기술을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러나 그가 원했던 화학보다 영국과 독일의 법체계에 매료되었다.
법만 잘 주무르면 나라도 왕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토는 돌아와서 제국헌법의 기초를 놓고 제국을 움직일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제국대학을 세운다. 그리고 법학부 엘리트를 배출하여 법치를 내세운 제국과 식민지 지배의 구조를 완성한다.
반면 조선은 나라를 걸어 잠그고 미국의 제너럴셔먼호의 침략에 끝까지 저항한다. 그 틈을 타고 영미제국주의를 등에 업은 일본은 청을 무찌르고 러시아의 항복까지 받아 낸다. 어리석은 조선의 왕과 부패한 조정 대신은 동학의 민중 봉기와 개화파의 정변을 외세를 끌어들여 탄압하였고, 결국 을사년에 국권을 일본에게 내준다.
그러나 그때부터 본격적인 의병이 일어났다. 이토가 가장 두려워했던, 이해할 수 없는 조선의 민중 저항이었다. 탄압을 받을수록 그 숫자는 늘어났고, 일제의 총칼 앞에 의병은 국외로 망명하여 독립군이 되었다.
여순 감옥에 갇힌 중근을 괴롭힌 것은 추위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옥장 구리하라가 의도적으로 넣어 주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를 비롯한 친일 매체였다. 조선을 위해 불철주야 헌신하던 이토 공작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흉악범의 소행에 모든 조선인이 비탄에 빠져 있다는 보도였다.
총리 이완용은 특별 사절단을 만들어 대련으로 배를 띄웠고, 이토의 영정 앞에 엎드려 눈물로 사죄했다. 순종은 문충공이라는 시호와 사죄비 10만냥을 전달하였고, 장례 기간 국민에게 음주가무를 금했다. 전국에서 몰려든 친일 조문객과 동원된 학생들을 앞에 두고 이완용은 비 내리는 장춘단 공원에서 '문충공 이등박문 각하께 올리는 조사'를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낭독하였다.
중근이 처단하기 더 힘들었던 것은 이토의 육신이 아니었다. 청나라와 러시아, 일본과 미국이라는 사대주의의 배를 갈아타며 끊임없이 자신의 냄새나는 과거의 흔적을 지우고 썩은 영혼과 기름진 배를 채우며 살아가는 족속들이었다.
3·1운동의 노도와 같은 함성, 그리고 서울역 앞에서 신임 사이토 총독을 향해 수류탄을 던졌던 강우규의 의거에 놀란 일본은 더 교묘한 문화 통치를 시작했다. 신문 방송을 허용하며 조선인 순사를 고용하고 교회를 길들이며 경성제국대학을 세웠다. 친일 경찰들은 독립투사들을 영장 없이 잡아 고문했고, 제국대학 법학부에서 배출된 판검사들은 총독부의 마름이 되어 불령선인의 죄를 씌워 죽였다.
그러나 총독부와 내통하는 부패한 매국노와 밀정은 무죄 방면하였다. 이토의 몸은 죽었으되 그가 만든 시스템은 여전히 작동하였고, 그 악습은 해방공간에서도 이어졌다. 친일 경찰이 독립운동가를 잡아들였고, 백색테러를 통해 독립 영웅들을 암살하고 폭력배들을 동원하여 친일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를 무력화시켰다. 그 악습은 군부독재 시절에도 법 기술자들에 의한 불의한 기소와 재판, 사법 살인으로, 계엄령과 백골단의 폭력으로 계속되었다.
120년이 흐르고 다시 을사년이 돌아왔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산업화와 민주화를 다 이룬 문화 선진 강국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런데 그 나라가 계엄 내란으로 갑자기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 놓이게 된 것이다. 헌법기관에 무단 침입한 폭력배들, 폭력을 사주하는 사이비 목사와 신도들, 내란을 동조하는 매국적 정치세력들에 의해 사법 질서, 헌정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내란 수괴 대통령은 어렵게 체포 구속되었지만, 헌재를 겁박하는 내란 세력은 더 거세지고 있다. 탄핵을 외치는 2030 청년들과 불법으로 폭력을 주도하는 또 다른 2030 세력들이 부딪히고 있다. 누가 우리의 미래 세대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이 싸움은 평화와 전쟁의 대결이요, 의와 불의의 충돌이다. 아직도 중근과 이토는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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