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훈구는 전작 작품(폰팔이,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로켓캔디) 에서 보인 연출 형식은 메타적 놀이성을 무기로 연극적 재현과 극적 환상을 뒤집는 사이에서 발화된다. 이러한 강훈구 연출의 강점은 연극임을 분명히 하는 메타적 극중극과 설정, 시공간을 특정하지 않는 놀이적인 형식과 구조, 무대 공간에서 밀집되는 극적인 구조와, 놀이성으로 스트리밍되듯 장면으로 이어지는 캐릭터들의 가변과 오브제 놀이성이 장점이다. 배우들은 정형화된 무대와 정제된 연기패턴을 이탈하며 생동하는 날것의 인물로 분한다. 공놀이클럽의 강훈구 연출은 <소년소녀 진화론>(2018)으로 데뷔한 뒤 이듬해 독특한 형식과 무대를 보여준 <폰팔이>(2019)로도 연출적인 존재감을 알릴 수 없었던 강훈구는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2024)으로 월간 한국연극 베스트 7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한 '2024년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선정과 <이상한 어린이 연극 오감도>(2024)로 동아연극상 새개념 연극상을 수상하며 데뷔 7년 만에 한국연극 제도권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다. <말린 고추와 복숭아향 립스틱> 이후부터 강훈구식 충전으로 무대를 완충시켜 달아오르고 있는 <클뤼타임 네스트라> 이야기다.
작품이 시선을 끄는 것은 현재의 극중인물들과 아가멤논 극중인물들과 동일화시켜 강훈구 특유의 놀이성으로 전환되는 메타연극 형식 통해 '극작과 연극의 이해' 기초 편을 보는 것 같다. 딸을 잃은 아가멤논을 향한 클뤼타임네스트라의 복수와 저주, 불륜의 서사를 현재화하는 강훈구적 놀이성이 탁월한 작품이다. <클뤼타임네스트라>(작, 강훈구 연희예술극장, 공놀이클럽)는 그리스 비극 작가 아이스퀼로스(기원전 525~456)의 '오레스테이아'의 3부작(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신들, 자비로운 여신들)중 트로이전쟁의 승리를 위해 딸 이피니아를 신탁의 제물로 바친 남편 아가멤논을 향해 잔혹한 살해의 복수를 하는 클뤼타임 네스트라의 플롯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원작과 달라진 것은, 아가멤논 가문은 사립(私立) 가문의 절대권력을 상상할 수 있는 대한민국 외곽의 예술 사립고등학교로 바뀌었고 클뤼타임네스트라의 복수와 불륜의 극적 시간은 극작을 전공하는 전태주(김기주 분)가 해설자와 극중인물로 분해 고교 청소년 연극제에 출품하기 위해 전태주의 희곡으로 재구성되는 '희대의 악녀 클뤼타임네스트라'라는 점이다. 극중인물 전태주의 희곡은 예술고등학교와 아가멤논의 시대 배경을 중첩시키고 고전의 비극으로 점층(漸層)되어 가는 극적인 장면들은 방백(傍白) 장치를 통해 무대 안 무대로 전개되어 가며 전태주의 작가적 상상으로 플롯화 되고 있는 연극임을 환기하는 이중구조를 취하고 있다. 관객들은 예술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장면들을 바라보면서도 아가멤논과 클뤼타임네트라의 장면을 동일시해 보는 것과 같다.
![클뤼타임 네스트라. 강훈구 공놀이클럽 제공.](https://www.imaeil.com/photos/2025/02/06/2025020621554976970_l.jpg)
◆아가멤논 가문(家門)과 연극하는 사립예술고등학교 가문의 공간구조
연희예술극장 무대 공간은 입구와 내부가 갤러리 공간처럼 되어있다. 80석 규모의 가변형 객석과 마주하는 무대는 1층을 연결하는 복층 형태의 구조처럼 보인다. 특수한 장치나 설정이 없다. 2층(복층)으로 통하는 계단 좌측과 주변은 스탠딩 거울과 클뤼타임네스트라를 상징하는 날카로운 도끼 모양의 소품 칼날이 보이고 의상들이 널려져 있다. 배우들의 등 퇴장도 1층 공간 후면과 2층과 후면 뒤쪽 등 개방적인 동선으로 이동된다. 2층 공간설정은 예술 사립고등학교로 전환되고 1, 2층은 전태주를 통해 아가멤논이 <클뤼타임네스트라>로 재구성되어가는 극중극과 현재 공간으로 중첩되거나 연결되는 구조이다. 공간의 설정만 있을 뿐 특별한 연극적 무대화가 없어 연희예술극장 내부 공간 전체가 무대가 되는 셈이다.
희곡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고등학교 극작과 3학년 전태주(김기준 분)는 등장부터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연극임을 환기한다. 등장인물 소개도 손톤와일드의 <우리 읍내> 식이다. 태주를 쫓아다니는 다현(오예현 분)은 무용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아가멤논의 왕권 가계도를 연상하게 하는 예술고등학교 설립자의 가문이다. 연기과 선생님으로 분한 기영(신현실)은 다현이 엄마로 이사장의 조카이다. 사주팔자와 점술을 맹신하며 20년 전 학교가 생기자마자 선생님이 되었고, 학과장이다. 이쯤 되면 설정 분위기가 굿에 중독된 정치판을 연상하게 되어 강훈구의 클뤼타임네스트라의 복수극은 한국사회 현실과 연장선에 있음을 알게된다.
남동생 이기문(김준우)은 사회성 짙은 연극으로 한국 사회의 실체를 폭로하는 연극을 만들어 평단 주목을 받는 연극연출자이다. 차기작은 아이스킬로스의 비극< 나의 아가 아가멤논>을 준비하며 남편을 죽이는 희대의 악녀 클뤼타임네스트라 역할은 아내이자 예술고등학교 기간제교사인 극중인물 윤승원(김설 분)으로 설정된다. 두 사람의 심리적인 갈등과 복수는 아들의 교통사고(죽음)로 공연이 취소가 된 이후의 시간부터다. 이 정도 설정으로는 아가멤논 비극의 구조와 예술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무관한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이스킬로스의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아가멤논의 비극은 트로이전쟁 승리를 위해 딸을 희생의 제물로 바친 것에서부터 복수의 칼날이 가문의 저주로 이어지는 것처럼, 전태주의 클뤼타임네스트라도 기문과 승원의 딸이 우연한 교통사고로 죽은 시점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가멤논의 가문과 유사하다. 강훈구 연출은 이러한 극의 설정에 더해 전태주를 등장시켜 <아가멤논> 주인공을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아가멤논이 아닌 남편을 죽이는 클뤼타임네스트라로 설정하고 태주를 통해 작가적 관점으로 재구성되는 극중극 형식 구조를 취하고 있다.
![클뤼타임 네스트라. 강훈구 공놀이클럽 제공.](https://www.imaeil.com/photos/2025/02/06/2025020621555010081_l.jpg)
◆ 고전 비극과 정치, 탄핵정국과 분열의 정치
작품은 아가멤돈과 클뤼타임네스트라의 비극성을 현재 시점으로 재구성되어 무대화되기보다 클뤼타임네스트라가 남편을 죽일 수밖에 없는 복수의 서사 플롯과 현재 시간을 동일화시켜 좌우 이념대립의 분열과 탄핵정국의 정치 현상을 조롱한다. 극중인물에 내재되어 있는 주인공의 욕망은 결핍에서 비롯되고 결핍으로 파열되어 가는 갈등과 내면의 분열은 '행동'으로 점화되는 것이 연극(희곡)의 구조라는 전태주를 통해 반복적으로 드러내며 클뤼타임네스트라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가멤논의 서사보다 남편을 죽일 수밖에 없는 운명의 클뤼타임네스트라가 태주의 희곡으로 재구성되어 가는 매력적인 인물로 설정하고 있다.
신탁과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 저주와 몰락, 전쟁과 죽음, 왕권의 찬탈과 복수, 살인과 패륜적인 불륜이라는 고전의 플롯을 차용하기 보다는 극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태주를 통해 재구성되어 가는 클뤼타임네스트라의 복수의 시간은 남편을 죽일 수 없는 주인공으로 바뀐다. 이런 점에서 현재 극중인물들과 아가멤논 극중인물들과 동일화시켜 강훈구 특유의 놀이성으로 전환되는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에서 클뤼타임네스트라 시선으로 재구성되는 장면들로 들추어지는 것은 한국 사회와 동일한 현상들이다. 아가멤논의 가문은 사립의 족벌(族閥) 가문들이 운영하는 예술고등학교로 바뀌었고, 트로이전쟁은 양보와 타협이 부재하고 '내로남불' 정치와 12, 3 계엄 사태로 촉발된 탄핵정국으로 분열된 전쟁 같은 현상들이다.
사립예술고등학교의 절대왕권 가계도를 이어받으며 해외 유학으로 돌아와 연극학과 전임교수가 된 뒤에도 불륜의 은밀함을 즐기는 기문(김준우 분)이 여성 편력으로 보여준 행동들은 아가멤논을 연상하게 하고, 승원과 결혼한 뒤에도 연극을 가르치는 기간제교사 승원(김설 분)은 <나의 아가 아가멤논>이 대표작품이 된 연극 배우로 아이기스토스와의 불륜은 연극이 재구성되면서 전태주와 러브라인으로 점화되고 전쟁 승리를 위해 제물이 된 이피게네이아의 죽음은 승원과 기문의 딸이 교통사고로 죽는다는 설정이다. 현시대의 예술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극중인물들과 이들이 살아가는 현상은 아이스킬로스 아가멤논의 시대와 차이가 없는 현상들이다. 달라진 것은, 전쟁, 죽음, 희생과 복수, 막장 드라마 같은 불륜과 아가멤논과 클뤼타임네스트라의 비극적인 이야기들은 현재도 넘치기 때문이고 극적이고 비극적인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클뤼타임 네스트라. 강훈구 공놀이클럽 제공.](https://www.imaeil.com/photos/2025/02/06/2025020621555042826_l.jpg)
◆ 죽일 수 없는 복수, 갈등과 분열, 이타적 내면의 통합
무대는 전태주에 의해 재구성되는 클뤼타임 네스트라 극중인물로 분해 연극제에 출품하기 위한 작품이 극중극 형식으로 전환되는 장면 구조가 진행된다. 교통사고로 죽은 딸로 극심한 우울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승원은 고교생 전태주와 애정행각을 보이고 딸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채 불륜의 시간을 즐기는 기문을 향해 승원은 클뤼타임 네스트라의 장면처럼 도끼를 든다. 원작과는 다르게 남편을 죽일 수 없는 승원(클뤼타임네스트라)의 복수에 기문은 죽은 척하는 연기를 보여주고 "내 인생을 망친 것은 나였어.(중략) 사랑하지도 않는데 결혼해서 미안해. 사랑하는 척 연기해서 미안해"라고 말하고 기문을 향해 "괜찮아. 나의 아가. 나의 아가, 아가멤논. 울지마. 연극은 끝났어. 남편을 죽이는 연극 다 끝났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며 두 사람은 극단적인 복수와 살해를 비켜 삶에 비극적인 운명과 시간 속에서 마찰(摩擦)하는 사건과 갈등을 자기반성적인 용소로 화해해 연민함으로써 타인의 내면과 삶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이 장면에서 강훈구 연출이 메타연극의 놀이성으로 극중극 구조로 점화 되어가는 클뤼타임네스트라 복수극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주인공의 욕망과 결핍이 사건과 갈등으로 점화되어 행동하게 되는 드라마(희곡, 연극) 구조의 본질을 고전 아가멤논 서사로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그 이면으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자기반성적 태도이다. 장면을 돌아가 보면, 전태주가 반복적인 대사로 발화되는 주인공의 캐릭터는 인간 욕망의 욕구는 결핍에서 확산되어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마치 아가멤논의 시대처럼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부조리하고, 모순적 정치, 인간의 복수와 전쟁, 사회적 참사와 죽음의 사회(세계)적인 현상들에서 시민들의 주체적인 참여와 행동만이 이타적(利他的)인 세상이 될 수 있으며 자기반성적 희생과 화해를 통해 사회는 분열과 갈등, 죽음과 복수, 극단적인 이념전쟁의 정치로 점화되는 국민 희생의 시대가 종식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강훈구 연출의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이런 점에서 탄핵정국, 양극화된 난투극 정치와 좌, 우 분열의 시대에서 실종되어 버린 화해의 통합을 아가멤논을 죽일 수 없는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자기반성적 태도에서 하나 된 대한민국을 상상하게 되는 이유이다. 이런 점에서 연희예술극장 내부 복층 구조의 공간을 날것 그대로 활용해 아가멤논의 시간과 현시대의 시간을 동일 시간으로 중첩시키며 놀이적 공간으로 활용한 <클뤼타임네스트라>는 메타 연극적 놀이를 통한 이중 극 중 구조를 통해 현재의 대한민국의 시간과 아가멤논의 시대가 다를 바가 없음을 상기하게 만들고 치료 방법도 기문과 승원의 마지막 상황과 관계를 통해 그 해법은 '내로남불'의 모순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자기반성적 성찰임을 슬쩍 끼워 넣는다. 이번 공연에서 이러한 점이 부각 될 수 있도록 윤활유가 된 것은 강훈구의 놀이성을 연기로 발화하는 김기주, 김설, 김준우, 신현실, 오예현 배우들의 역할이 강훈구 놀이성에 규칙을 만들고 연극 게임의 질서를 안전하게 만들고 있다.
![클뤼타임 네스트라. 강훈구 공놀이클럽 제공.](https://www.imaeil.com/photos/2025/02/06/2025020621555139726_l.jpg)
김건표 대경대학교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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