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문환의 세계사] 로마 공화정의 시작

내편부터 쳐내는 엄정함이 진정한 법치주의 정신

로마의 시조 아이네이아스와 카르타고 여왕 디도의 사랑. 로마 모자이크. 350년경 제작. 영국 톤턴 소머셋 박물관
로마의 시조 아이네이아스와 카르타고 여왕 디도의 사랑. 로마 모자이크. 350년경 제작. 영국 톤턴 소머셋 박물관

민주 공화주의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법을 적용할 때 건강하게 유지된다. 로마 공화정 초기 역사로 돌아가 진정한 법치주의 정신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트로이 출신 아이네이아스 로마의 조상이 되다

영국 수도 런던의 패딩턴 역에서 기차를 타고 남서부로 1시간 40분여 달리면 톤턴(Taunton)이 나온다. 인구 6만6000여 명의 아담한 도시가 관심받는 이유는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톤 강변의 소머셋 박물관 소장 유물 덕분이다. 로마 유적지에서 발굴된 350년경 모자이크는 완전 무장 차림의 건장한 로마 군인과 알몸의 여인이 포옹하는 에로틱한 장면을 담았다.

남자는 로마제국의 시조로 숭배되는 아이네이아스. 미의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의 아들로 트로이 왕국 프리아모스 왕의 사위, 우리말로 부마도위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트로이를 탈출해 지중해를 떠돌다 카르타고에 도착해 여왕 디도와 깊은 사랑에 빠진다. 모자이크에 표현된 육감적 몸매의 알몸 여인이 카르타고 여왕 디도다.

아이네이아스는 뜨거웠던 사랑을 뒤로 하고 카르타고를 떠나 이탈리아반도로 간다. 라티움 땅에 정착해 로마인의 시조가 된다는 게 B.C1세기 로마제국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적은 로마 민족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줄거리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동생 레무스 쌍둥이 형제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는 모습. 4세기 로마 모자이크. 영국 리즈 박물관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동생 레무스 쌍둥이 형제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는 모습. 4세기 로마 모자이크. 영국 리즈 박물관

◆로마 건국 시조 로물루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

이번에는 런던 북부 킹스 크로스 역에서 기차를 타고 잉글랜드 북쪽 지방으로 2시간 30분여 달린다. 영국 북부 리즈(Leeds)에 다다른다. 인구 53만 명의 대도시 리즈 박물관에 역시 4세기 희귀한 로마 모자이크 유물이 탐방객을 맞아준다. 「루파(Lupa. 늑대)」 혹은 「루파 로마나(Lupa Romana, 로마의 늑대)」. 사연은 이렇다.

아이네이아스의 후손 가운데 레아 실비아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베스타 신전 여신관인데, 그녀의 미모를 탐한 전쟁의 신 마르스(아레스)가 잠자는 그녀를 범하고... 실비아는 쌍둥이가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를 낳는다. 처녀성을 간직해야 하는 여신관이 아기를 낳았으니... 기를 수가 없어 티베르 강물에 띄워 보낸다. 강기슭에 닿은 아기들을 늑대가 데려다 젖을 먹여 키웠다.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동생 레무스 쌍둥이 형제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는 모습. 플랑드르 바로크 미술 대가 루벤스 그림. 1620년.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동생 레무스 쌍둥이 형제가 늑대의 젖을 먹고 자라는 모습. 플랑드르 바로크 미술 대가 루벤스 그림. 1620년.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이탈리아 수도 로마로 가면 카피톨리니 언덕에 카피톨리니 박물관이 자리한다. 이곳에 플랑드르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벤스가 1620년 그린 「루파(Lupa. 늑대)」 가 찬란히 빛난다. 바로크 미술 특유의 강한 명암 대비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으로 밝게 묘사된 쌍둥이 형제의 입체감이 잘 드러난다. 부드럽게 빛나는 루벤스의 붓 터치로 되살아난 로물루스는 18살에 B.C753년 로마를 건국한다.

사비니 여인 강탈. 플랑드르 바로크 미술 대가 루벤스 그림. 1640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사비니 여인 강탈. 플랑드르 바로크 미술 대가 루벤스 그림. 1640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사비니 부족 여인들 강탈로 로마 남성 결혼

런던 트라팔가 광장으로 가보자. 드넓은 광장 북쪽 면에 웅장한 돔을 갖춘 네오 클라식 양식의 내셔널 갤러리에 세계적인 명화들이 미술 애호가들의 넋을 빼앗는다. 그중 역시 루벤스가 1640년 그린 「사비니 여인 납치」가 여인들을 빼앗는 날강도 같은 로마 남정네들을 묘사한다.

납치당하는 여인들을 밝게 묘사하는 키아로스쿠로 기법이 돋보인다. 무슨 사연인가.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울 당시 부랑아 남자들만 모였을 뿐 여인이 없었다. 그래서 근처 사비니 부족을 축제에 초대한 뒤, 여인들만 가로채고 성문을 잠가 버렸다. 로마인과 사비니 부족 사이에 전쟁이 터졌다. 결말은?

사비니 여인. 헤르실라가 남편 로물루스와 아버지 타티우스의 싸움을 말리며 중재하는 장면.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다비드 그림. 1799년. 루브르 박물관
사비니 여인. 헤르실라가 남편 로물루스와 아버지 타티우스의 싸움을 말리며 중재하는 장면.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다비드 그림. 1799년. 루브르 박물관

파리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면 프랑스 고전주의 미술의 대가 다비드가 1799년 그린 「사비니 여인들」에 상징적으로 전쟁 결과가 묘사된다. 그림 가운데 양팔을 벌려 두 남자의 싸움을 뜯어말리는 여인은 헤르실라. 강제로 로물루스의 아내가 된 사비니 여인이다. 그림 오른쪽 건장한 젊은 누드 남성은 로물루스. 왼쪽은 사비니족 왕이자 헤르실라의 아버지인 타티우스다.

엎질러진 물. 남편이 된 로물루스와 아버지의 싸움을 뜯어말리고, 두 민족이 힘을 합쳐 로마를 성장시킨다. 그림 속 아이들은 사비니 여인들이 낳은 아이들로 두 민족의 통합을 상징한다.

눈물 흘리는 루크레티아. 초기 로마 왕정 시대 로마 마지막 7대왕 타르퀴니우스의 아들에게 겁탈당한 뒤 자결한다. 이를 계기로 왕정이 공화정으로 전환된다. 로코코 미술가 안드레아 카살리 그림. 1761년작. 루브르 박물관
눈물 흘리는 루크레티아. 초기 로마 왕정 시대 로마 마지막 7대왕 타르퀴니우스의 아들에게 겁탈당한 뒤 자결한다. 이를 계기로 왕정이 공화정으로 전환된다. 로코코 미술가 안드레아 카살리 그림. 1761년작. 루브르 박물관

◆로마 초기 왕정제 종지부 계기 루크레티아 겁탈

파리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자. 이탈리아 출신의 18세기 말 로코코 미술 대가 안드레아 카살리가 1761년 그린 「눈물 흘리는 루크레티아」 가 탐방객의 가슴을 적신다. 로마 왕정은 독특하다. 세습이 아니라 왕이 죽으면 새로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초대왕 로물루스 이후 로마의 7번째 왕인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 시절 그의 아들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가 로마 귀족 여성 루크레티아를 겁탈한다.

그녀는 사실을 남편과 친정아버지에게 알리고 수치심에 자결한다. 로마인의 고결한 도덕성을 상징하는 이 사건은 르네상스 이후 여러 화가들의 작품 모티프였다. 타르퀴니우스 왕은 에트루리아 민족 출신이었다. 로마인들은 B.C509년 타르퀴니우스왕 일가를 내모는 민중 봉기를 일으킨다. 봉기 결과는?

루키우스 유니우스 부르투스. 로마 공화정 건설 아버지. 얼굴은 B.C4-B.C1세기. 가슴 부분은 16세기.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루키우스 유니우스 부르투스. 로마 공화정 건설 아버지. 얼굴은 B.C4-B.C1세기. 가슴 부분은 16세기. 로마 카피톨리니 박물관

◆부르투스, B.C 509년 로마 공화정 수립

다시 로마의 카피톨리니 박물관으로 가보자. 로마 민중 봉기의 주역 루키우스 유니우스 부르투스(Lucius Junius Brutus) 조각이 근엄한 자태로 탐방객을 맞아준다. 부르투스 얼굴 조각은 B.C4-B.C1세기 로마 공화정 시절 유물이지만, 가슴 부분은 16세기 제작됐다. 1564년, 추기경 로돌포 피오 다 카르피가 기증한 진귀한 유물이다.

봉기를 성공시킨 부르투스는 왕이 되라는 요구를 물리치고, 로마를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환시킨다. 그리스 아테네에 이어 인류 역사 두 번째 공화국인 로마 공화정의 출발이다. 부르투스는 왕 대신 대통령 격인 집정관(Consul) 직을 맡았고, 이것도 독재 방지를 위해 2인 집정관 체제를 만들었다.

부르투스와 병사들. 부르투스가 공화정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죄를 저지른 자신의 두 아들을 처형한 사건을 묘사한다.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다비드 그림. 1789년. 루브르 박물관
부르투스와 병사들. 부르투스가 공화정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죄를 저지른 자신의 두 아들을 처형한 사건을 묘사한다. 프랑스 고전주의 화가 다비드 그림. 1789년. 루브르 박물관

◆부르투스, 로마 법치주의 위해 두 아들 사형

이제 루브로 박물관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겨 다비드가 1789년 그린 「부르투스와 병사들」 작품에 시선을 고정하자. 어렵게 만든 공화정과 엄중한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부르투스가 어떤 일을 했는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사연을 알아보기 위해 로마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 활약한 그리스 출신 로마 역사가 겸 도덕 철학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을 펼쳐보자.

90년~120년 경 쓰인 책이다. 부르투스 중심의 로마인 봉기로 쫓겨난 타르퀴니우스 왕가는 왕정 복귀를 시도한다. 이때 부르투스의 두 아들이 타르퀴니우스 왕의 복귀 모략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졌다. 반역자를 처벌하는 공화정 법치주의인가? 아들의 생명인가? 부르투스의 선택은?

브루투스는 공화정의 법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두아들을 사형시킨다. 처형당한 아들들을 병사들이 데리고 들어오고, 부르투스는 아버지로서 고통스럽게 이를 바라본다. 아내와 딸들은 오열한다. 다비드는 이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앉은 부르투스의 의연한 모습에 이후 B.C27년까지 500년 가까이 이어진 로마 공화정의 법치정신이 잘 묻어난다.

◆위기의 대한민국 법치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 가운데 3명이 우리법연구회(후신 국제법 연구회 포함) 출신이다. 나머지 5명 가운데 4명은 아니고, 1명은 불분명하다. 법원 내 다른 공부 모임과 달리 우리법연구회는 명단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도 투명하게 관리하지 못하면서 국민을 판결할 수 있는가?

군대 내 비밀 모임 하나회 장교들은 척결 대상이었다. 법원 내 비밀 모임 우리법연구회 판사들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판결 4대4. 업무 시작 2시간 만에 탄핵된 방통위원장 건을 6개월간 방치하다 대통령 탄핵 심리에 앞서 느닷없이 4대4 판결. 상식적인 국민은 정의로운 법치가 아닌 진영 편들기로 본다. 판사복 입고 정치적 진영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에게 로마 공화정의 아버지 부르투스의 공화주의 정신을 들려주고 싶다.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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