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면도로·경사로 결빙에 속수무책…대구 폭설 '안전 사각지대' 속출

큰 도로는 제설 빨리 하는데 골목·인도 제때 치우지 않아
주민 직접 나서지만 역부족
겨울 재난 대응 체계 없으면 해마다 같은 문제 반복 경고

눈이 내린 지난 7일 대구 도심 이면 도로에서 한 주민이 눈을 녹이기 위해 뜨거운 물을 붓고 있다. 정두나 기자
눈이 내린 지난 7일 대구 도심 이면 도로에서 한 주민이 눈을 녹이기 위해 뜨거운 물을 붓고 있다. 정두나 기자

대구에 내린 폭설로 빙판길 사고가 잇따르면서 강설 대책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행정당국이 제설작업을 벌였지만, 주택가 도로와 산간 지역은 사각지대로 방치돼 곳곳에서 시민 불편이 속출했다. 전문가들은 전담 조직 신설 등 겨울철 재난 대응 체계를 마련하지 않으면 매년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2월 강설에 미끄럼 사고 속출…사각지대가 곳곳에

7일 오후 3시 30분쯤 대구 남구 대덕초등학교 후문 골목길. 앞산순환도로로 향하는 이곳은 초등학교 주변으로 이어진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양쪽으로 주·정차 차량 10여 대가 늘어서 있어, 도로 폭은 3~5m 남짓에 불과했다.

학교 주변을 둘러싼 옹벽 탓에 그늘이 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어 사고 위험이 큰 곳으로 손꼽힌다. 이날도 골목길에 주차된 차량에 고드름이 얼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바닥에 모래를 옅게 뿌렸지만 단단하게 눌러 붙은 얼음이 남아 있었다.

이날 눈이 내리던 오전 7시 9분쯤 대덕초 후문 내리막길에선 차량 3대가 엉켜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신고를 받고 소방당국은 "출동했을 때에는 도로에 눈이 전혀 치워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다.

주민 김판용(71) 씨는 눈이 얼어붙은 인도를 지팡이로 쓸면서 걸어야 했다. 김 씨는 "차들이 자주 다니는 큰 도로는 제설작업을 빨리 하는데, 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은 제때 눈을 치우지 않는다"며 "고가도로 옆이라 응달지고 찬바람이 많이 불어 빙판길이 되기 십상이다. 골목뿐만 아니라 보행로 위 눈도 치워지지 않아서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곳처럼 경사가 극심한 골목길이나 산길 등 대구 곳곳이 폭설로 인한 안전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당국의 조치가 부족한 탓에 주민들이 직접 제설에 나섰지만, 역부족인 곳도 적지 않았다.

대구시에 따르면 7일 오후 1시까지 접수된 결빙 사고는 모두 31건으로 이중 상당수가 주택가 이면도로와 경사로, 팔공산과 앞산 등 산간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날 오후 4시쯤 동구 팔공산순환도로는 제설 작업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살얼음이 도로 바닥에 눌러붙어 있어 차량은 시속 10㎞ 미만의 속도로 힘겹게 운행을 이어갔다. 팔공산 자락의 주민들은 행정복지센터로부터 염화칼슘을 받아 직접 제설을 진행하기도 했다. 도로 폭이 좁아 제설 차량 진입이 불가능한 곳이 많아 주민이 손수 나선 것이다.

팔공산 주민 김순자(81) 씨는 "버스가 눈길에 마을로 올라오지 못해 아픈데도 병원을 찾지 못한 이웃들이 한둘이 아니다"며 "도로가 너무 미끄러워서 등산화와 지팡이를 쓰지 않으면 집 밖을 나설 수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동구 신무동의 통장 박영수(70) 씨는 "오늘 25㎏짜리 염화칼슘 포대를 아침부터 20포 정도나 썼는데도 길이 녹을 기미가 안 보인다"며 "마을 주민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어서 제설 작업을 하기도 어렵다. 도로 가장자리는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눈이 완전히 녹으려면 일주일은 지나야 할 것"이라고 했다.

빙판길 정두나 기자
빙판길 정두나 기자

◆제설 배포에 불과한 대책…전담 인력 미비

그동안 폭설 사례가 드물었던 대구도 최근 이상기후 탓에 도로 결빙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폭설도 대규모 재난에 준하는 수준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대구에서 결빙이 발생한 일수는 30일로, 지난 5년(2020~2024년) 중 가장 많았다. 2, 3월의 결빙 발생 일수(최근 5년간)도 연평균 10~20일로 결빙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재 대구시는 도로 결빙에 대비해 사고 우려 지역에 제설제를 미리 살포하고 있다. 기상청 적설량 예보에 따라 단계별로 재난안전대책본부를 구성하고 구·군과 함께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도로 결빙과 강설에 대한 별도의 전담 인력은 없다.

대구시 도로과는 결빙에 대비해 강설 1㎝ 발생 예보 시 ▷3시간 전 비상 연락 체계 가동▷2시간 전 제설장비 장착 및 자재 탑재 ▷1시간 전 취약 지구 제설제 사전 살포 등의 순서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강설 이후에 도심 곳곳에서 제설이 이뤄지지 않는 등 안전 사각지대가 여전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대구시가 겨울철 결빙에 대해 대규모 자연 재난에 준하는 조직·체계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부적으로 ▷블랙아이스와 상습 결빙 구간의 실시간 모니터링 확대 ▷접근이 어렵고 노면 결빙이 잦은 제설 취약 구간 집중 관리 강화 ▷제설 장비 추가 배치와 염수 자동 분사 시스템 확대 ▷시민 참여형 제설 시스템 구축 ▷주요 보행 구간 염화칼슘 바동 살포기 운영 등이다.

윤대식 영남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는 "미국 내륙지방 등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의 경우 도시 책임자의 중요 과업 중 하나가 폭설 대응이고 전담 인력과 체계도 잘 갖춰져 있다. 대구의 경우 부서에 관계 없이 인력이 총동원 되는데 전담 부서와 전문 인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이상 기후 현상이 잦아진 상황에서 기습적인 폭설에 대비해 주민 공동체까지 전달하는 조직적인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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