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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칼럼-김태진] '국민소환제', 민주당이 시범 도입하자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역사를 잊은 민족에 미래는 없다"와 길항(拮抗)하는 문구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다. 흑역사 반복의 치욕을 겪지 말자는 전자의 다짐이 무색하게 오욕의 전철을 밟는 무한궤도가 숱하다는 것이다. 평행 이론처럼 반복되는 역사를 피하고, 막으려 법률 등 여러 장치를 둬도 그렇다.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고 바로잡아 나간다는 건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되지 못한다. 외려 권력을 잡기 위해 법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바꾸는 것도 부지기수다. "악마도 자기 목적을 위해서라면 성경 구절을 들먹이기 마련"이라고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지적하지 않았나.

역사 교과서에 실린 '민주적' 정치 제도 중 하나는 고대 아테네의 '도편추방제'다. 기원전 487년 시행된 것인데 독재 가능성이 보이는 자를 아테네 시민들이 지목하면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박탈하고 추방하는 제도였다. 6천 명 이상의 지목으로 추방되는 거라서 여러 정치가가 대상이 되진 않았으나 페르시아 전쟁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 '정의로운 자'라는 별칭이 있던 아리스테이데스 등이 쫓겨나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제도는 70년 동안 존속되다 없어졌는데 정적 제거 수단으로 악용된 탓이었다.

2천500년의 시간을 넘은 역사가 반복될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국민의 주권 의지가 일상적으로 국정에 반영되도록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하겠다"며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선출직 공무원을 임기 중에 국민투표로 파면(罷免)할 수 있는 제도다. 임기 중이라도 검증을 거쳐 솎아 내는 권한을 '국민'에게 주겠다는 것이다.

국민 주권주의의 효능감을 높이려는 시도로 읽힌다. 그러나 제안 취지를 곱씹자니 지속될 제도일지 의뭉스럽다. 제안 취지에 있는 '광장 민심의 요구'라는 표현 탓이다. '광장 민심'이라는 것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정의하는 '국민 전반의 민심'과 동일한지부터 모호(模糊)하다. 민주당은 "2017년 국정농단 사태 이후 국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그 결과 대통령이 바뀌고 장관이 바뀌고 국회의원도 바뀌었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국민들의 인식"이라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광장 민심'은 곧 '촛불 민심'이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솟아오른다.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 도배된 '깨어 있는 시민들의' 화력을 익히 겪은 터다. 떼로 선동하면 중의(衆意)는 대의(大意)가 돼 법률을 위협하고 그에 우선할 수도 있음을 지켜봤다. 국민소환제가 정적 제거용 제도로 얼마든지 악용돼 '여론 재판'으로 흐를 우려가 높아지는 것이다.

2007년부터 지방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대상으로 한 '주민소환제'의 선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소환 대상이 돼 물러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지만 소환 대상이 되는 순간부터 온갖 정치적 중압감에 시달리는 게 수순이다. 운 좋게 직을 유지해도 재선 도전은커녕 건강을 잃기도 한다. 정치생명 유지에 진력하다 실제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제안컨대 당내 권리당원 영향력 확대 조치를 시행한 바 있는 민주당에서 시범 실시해 보면 어떨까. 국민소환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비례대표만 대상으로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솔선수범해 당내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한 뒤 제도를 확대하자면 국민들도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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