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 내려보는 사람도 뒤를 보는 사람도 어차피 쿵짝이라네, 쿵짝쿵짝 쿵짜자 쿵짝 네박자 속에,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네, 한 구절 한고비 꺾어 넘을 때 우리네 사연을 담는, 울고 웃는 인생사 연극 같은 세상사 세상사 모두가 네박자 쿵짝'. 가수 송대관이 노래 '네박자'의 마침표를 찍고 영면(永眠)에 들었다.
송대관은 현철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1980년대 트로트 중흥을 견인했던 4인방의 한 사람으로 지난해 여름 현철의 타계에 이어 영욕의 가요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의 조부는 3·1운동에 나섰던 독립운동가였다. 6·25전쟁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했다. 1975년 '해뜰날'의 대유행과 함께 전성기를 누렸지만 치명적인 사기를 당하는 우여곡절도 겪었다.
1998년 오십이 넘어 발표한 노래 '네박자'에 그 나름의 인생관과 달관의 정서가 스며 있는 까닭일 것이다. 쉬운 박자와 노랫말로 삶의 애환을 노래한 '차표 한 장'도 그랬고, '고향이 남쪽이랬지'도 그랬다.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들이었다.
경상도 출신인 현철과 전라도 출신인 송대관이 떠나면서 이제 '트로트 4인방'은 태진아와 설운도 두 사람이 남았다. 특히 충청도 출신인 태진아와 송대관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경쟁하면서도 상생(相生)하는 관계였다. 두 사람이 명콤비를 이루는 무대 연출에 팬들은 '환상의 트로트 듀오'로 부르며 호응(呼應)을 했다. 그래서 송대관의 영면이 태진아에게는 더 각별한 슬픔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대중가요로 한 시대를 풍미(風靡)하던 '트로트 4인방'에서 두 사람이 떠나고 남은 가수들도 육십, 칠십 고개를 넘어섰다. 그래도 가수는 노래로 대중을 위로한다. 특히 상처와 유린(蹂躪)으로 얼룩진 우리 근현대사의 피폐한 현실을 견뎌 내게 한 트로트의 저력을 결코 폄훼(貶毁)할 수 없다. 그래서 가수는 떠나도 노래는 남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어차피 빈손으로 떠나면서 오명(汚名)이나 남기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국민의 편을 갈라 원수로 만들고 국격을 한없이 추락시키고 있는 사람들의 인생은 몇 박자일까. 그들은 마침표도 남다를까.
조향래 객원논설위원 joen04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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